연극

[일종의 알래스카A Kind of Alaska_한예종] 깊은 잠이 아닌 엷은 잠

구보씨 2011. 11. 1. 11:44

제목 : 일종의 알래스카A Kind of Alaska

기간 : 2011.12.01(목) ~ 2011.12.03(토)

장소 : 한국예술종합학교 상자무대2

출연 : 박아람, 김형욱, 목규리

원작 : 해롤드 핀터

연출 : 김수연

제작 :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한예종 공연을 선호하는 이유 중 한 가지는 기성 무대에서 보기 드문 작품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관객 입장에서는 그러하나 제작자 입장에서는 한편으로 기성 연극 레퍼토리와 변별점을 두려는 의도이리라고 본다. 해롤트 핀터의 <일종의 알래스카>가 그렇다. ‘2008 핀터 페스티벌’과 타계 이후 추모 공연이 있었지만 부조리를 다루는 그의 작품이 대중성을 갖춘 작품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일종의 알래스카> 역시 같은 이유로 기대와 우려를 안고 본 작품이다.

 

앞으로 확장하는 방식으로 꾸민 무대는 결을 드러낸 판자와 켜켜이 세월이 내린 듯 실로 꾸민 벽이 인상적이었다. 1시간 남짓 짧은 공연 시간을 생각하면 29년 동안 잠을 자고 깨어나는 데보라의 인생을 상징으로 삼아 드러냈다.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대신 무대를 좁히고 침대를 놓다보니 답답해 보인다. 동선의 여지가 적어서 데보라, 혼비, 몰린 세 인물이 등장했을 때 주로 서서 대사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극 설정에 따른 부분이기는 하지만 29년 만의 해후 이후 복잡한 감정을 표현하려면 좀 더 무대에 여지가 있어야 배우나 관객이 여유를 가지고 작품을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2000년 타우 극장TAU Theater 공연 사진을 보면 29년 동안 침대에 옥죄면서 산 데보라의 인생을 박스 형태로 분리를 했다. 감옥 혹은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아온 경계를 드러냈다.

 



작가가 뿜는 아우라 혹은 수식어에 따라 다소 묵직한 연극이리라는 부담을 배우들이 많이 느낀 듯하다. 연출의 문제로도 보이는데, 29년 만에 깨어나 소녀와 중년 여성을 동시에 연기해야 하는 데보라와 혼비 사이 오가는 대화나 연기에서 무슨 감정인지 좀처럼 잡아채기가 어렵다. (데보라 역 박아람은 누가봐도 예쁜 소녀에 가깝다. 연출의 의도인지 모르겠지만 박제된 삶을 드러내는 데에는 좋은 캐스팅이나 역으로 세월의 흔적이 잘 드러나지 않아 데보라가 처한 아이러니한 상황이 크게 와닿지 않는다. 몰린 역 목규리도 비슷하다.)

 

기면증을 앓는 40대 중반의 여성과 그녀를 내내 돌보면 같이 세월을 보낸 의사, 옆에서 지켜본 동생 몰린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좀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으리라 본다. 리플릿에 적은 ‘부조리의 리얼리티를 인식’이라는 작가의 의도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현실 인식부터 확실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소소한 부분이지만 혼비의 단이 짧은 바지나 오래 묵어 보이기보다 깨끗한 데보라의 잠옷도 눈에 들어온다. 침대 역시 오래 묵은 흔적이 드러났으면 한다. 사실주의 연출을 할 요량이 아니었다면 더 많은 고민이 필요한 지점이다.*


사진출처 - 한예종 연극원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