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커피와 담배Coffee And Cigarettes
기간 : 2011.10.27 ~ 2011.10.29
장소 :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지하 실험무대
출연 : 김민하, 김태윤, 이형훈, 천도협, 유혜현, 황보란, 강희제, 이정석, 장윤지
원작 : 짐 자무시Jim Jarmusch
각색, 연출 : 윤용재
제작 :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짐 자무쉬 감독의 영화를 연극으로 만난다니, 마음이 혹한다. 공연을 보면서 영화를 부러 챙겨보지는 않지만 <천국보다 낯선Stranger Than Paradise, 1984>을 보고 이런 시나리오나 희곡 혹은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던 적이 있다. 실제로 단편 시나리오를 쓰긴 했는데, 남들은 잘 이해하지 못했고, 친구들과 잠시 얘기만 오갔다가 흐지부지 됐다. 툭하면 장마에 잠기는 반 지하에서 살 때 난 <천국보다 낯선> 포스터를 벽지가 물에 붙었다가 말라 얼룩덜룩한 천정에 붙여놓고는 자기 전에 들여다보곤 했다. 자다가 포스터를 고정한 압핀이 벌어진 입 안으로 떨어지면 어쩌나 싶었지만, 그 시절 뭘 어떻게 살고 싶은지 도통 몰라 늘 불안했으면서도 단잠을 잘 수 있었던 건 일부분 포스터 때문이다. 그렇게 믿는다.
리뷰_이제 낯선 천국으로 떠나는 사람들 http://blog.daum.net/gruru/62
옴니버스 영화 <커피와 담배Coffee And Cigarettes, 2003> 역시 좋아하지만 담배를 피우지 않으니-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짓이라고 지금도 믿고 있다- 영화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담배 못지않은 중독성을 가진 커피를 떠올리면서 영화를 봤다. 하얀 담배 연기와 블랙 커피는 흑백영화로 보기에 참 알맞은 기호품이긴 했다. 총천연색으로 보든 흑백으로 보든, 그러니까 2010년에 피든, 1910년에 피든 담배는 늘 고소했고, 에스프레소 커피는 늘 진했다. 김탁환은 그리 좋아하는 작가가 아니지만, 곧 상영할 <노서아 가비>의 동명 원작으로 읽어 본 소설은 구한말 혼란기 사람들의 아픔을 달래준 커피의 마력을 잘 보여준다.
그래서 영화 <커피와 담배>는 언제 다시 봐도 된다. 지극히 사적인 대화가 오가는 자리에 담배와 커피는 필수가 아닐까, 소소한 이야기들은 빙긋 웃기에 좋다. 연극도 그럴까? 학교 지원 예산이 담배연기가 눈에 들어간 양 눈물 나게 적겠지만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예술사 졸업 공연 팸플릿부터 아이디어로 가득하다. 딱 담뱃갑 크기에, 티켓은 커피 쿠폰처럼 그 안에 꽂아 놨다. 가슴 앞주머니에 딱 맞는다. 단 3일 공연에 둘째 날 공연을 택해서 왔지만 하루 만에 담배냄새가 지하 실험무대 주변 로비에 착 깔렸다. 영화 속 애연가들로 가득한 카페에 온 기분이다.
연출가(맨 왼쪽 가장 위)와 올해 학교를 졸업하는 배우들
로비에는 공연을 만드는 과정을 담은 흑백 영상이 돌아가고, 극장 안으로 들어가면 극장 중앙 뒤편에서 캠코더로 공연을 찍고 있다. 원작 영화도 앵글 변화가 거의 없고, 롱테이크로 찍어서 연극적인데, 연극을 영상으로 찍어 영화로 비교하면서 봐도 재밌겠구나 싶다. 연극은 영화에서 소개한 11가지 에피소드를 충실하게 재현한다. 110분 러닝타임도 에피소드마다 테이블을 치우고 정돈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93분짜리 영화와 비슷하지 않을까. 영화에 충실하게 재현한 연극은 영화를 다시 떠올리는 재미를 준다.
하지만 영화는 에피소드마다 유명 배우들이 등장하는 데에 의미를 둔다. 짐작컨대 배우들 스케줄에 따라 영화를 찍으면서, 딱히 대본을 제시하기 보다는 그들이 평소 나누는 대화를 기초로 했을 법하다. 알아보지도 않고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영화 속 배우들이 연기하는 캐릭터는 '사촌(Cousins)'에서 1인 2역을 연기해 Central Ohio Film Critics(2005) 올해의 배우상 수상한 케이트 블란쳇 정도만 다를까, 나머지는 연기가 평소 모습과 별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연극은 예술사 2학년생들인 단역/조연을 빼면 남자 넷, 여자 둘 올해 졸업반 연기자들이 고루 나눠 에피소드를 이어간다. 아무래도 영화와 달리 재미가 반감될 수 있는 부분이다. 커피와 담배는 공통으로 즐기지만 각자 조금씩 다른 독특한 취향을 즐기듯이 에피소드마다 달라지는 그 감정선을 같은 배우가 이어가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재미가 덜하다는 건 아니고, 오로지 배우를 위한 작품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영화도 그렇지만 대부분 2인극으로 대사 위주의 내면 연기가 중심인 에피소드에서, 등장할 때마다 의상 교체와 약간의 분장으로 전혀 다른 역할을, 영화에서 인종도 생김새도 억양도 제각각인 스타들을 연기한다는 건 섣불리 도전하기 힘든 부분이다.
서빙과 정리를 열심히 했던 후배 배우들
하지만 짐 자무쉬의 팬이 아니더라도 연극은 재밌다. 극장은 의외로 담배냄새가 덜하다. 여러 종류의 담배에 코가 마비가 되었나 싶기도 하고, 소품으로 쓰인 커피가 향이 강하지는 않을 테지만 의외로 쾌적하다. 졸업생 배우들은 앞으로 프로 무대에서 단역이나 조연으로 첫 발을 내딛겠지만 , 존재감을 드러내기에 너끈한 연기를 한다. 몇몇 배우는 개성이 강해 앞으로 작품이 기대되기도 한다. 바라기는 에피소드 몇몇을 빼거나 압축해서 좀 더 각색을 해서 올렸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은 든다.
영화야 한 카페에서 찍지 않았고 그럴 이유도 없지만, 영화에 충실하게 위한 잦은 테이블 전환은 무대가 고정된 소극장에서 영화 속 제각각인 커피숍 전경을 표현하기에는 큰 효과를 내지 못한다. 그리고 작품의 핵심이랄 수 있는 커피와 담배를 ‘진짜’처럼 즐기는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다. 짧은 시간에 대사를 하고 연기를 하다 보니 피다만 장초와 식은 커피가 눈에 자꿈 밟힌다. 연습과정에서도 그렇고 지겹게 마시고 피웠을 테니 너무 무리한 요구겠지만 말이다.
담배와 (자판기) 커피는 내 대학 시절을 되돌아보면 고뇌의 상징인양 싶지만 잠시 짬을 낼 때마다 즐긴 습관이었으나, 연극을 올린 이들에게는 사회가 얼마나 각박하건 졸업할 때까지 4년을 고심했던 시절을 위한 오마주인지 모르겠다. 커피라는 게 원래 쓴 법인데, 액상과당과 크림으로 뒤덮은 변종을 마시는 건 좀 아니다 싶다. 앞으로도 담배 필터까지 새까맣게 타오르도록 오체투지하시길 바란다.*
사진출처 - 한국예술종합학교 외
'연극'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셜리 발렌타인_Enjoy SAC] 에그 앤 칩스처럼 마음이 배부른 (0) | 2011.11.02 |
|---|---|
| [일종의 알래스카A Kind of Alaska_한예종] 깊은 잠이 아닌 엷은 잠 (0) | 2011.11.01 |
| [길바닥에 나 앉다] 김지훈 우상파괴 삼부작 중 두 번째 (0) | 2011.10.23 |
| [엘레쯔의 노래] 연극을 올리는 이유, 보는 이유 (0) | 2011.10.18 |
| [방바닥 긁는 남자] 누룽지처럼 타들어가는 세상에 일침 (0) | 2011.10.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