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댄 퍼잡스키 개인전_The News After The News] 벌금을 내거나 입장료를 내거나

구보씨 2011. 9. 29. 12:53


드로잉 화가 댄 퍼잡스키(Dan Perjovschi, 1961~ )의 국내 첫 개인전 <The News After The News(토탈미술관 모그인터렉티브 공동 주최)>가 좋았던 이유는, 비오는 라 버스에서 내려 한참을 걸어 올라가야 하는 평창동 언덕길 때문도 아니고, 앞서 걸어간 짧은 치마 입은 아가씨 때문도 아니며(힘을 내보려고 했으나 발이 느려서 곧 그녀와 까마득하게 멀어졌다), 아기자기한 평창미술관 구조 때문도 아니다. 아니, 미술관 구조는 머릿속 충만한 아이디어로 놓고 따지면 고(故) 잡스와 필적하는 퍼잡스키에게 딱 상상력을 발휘하기 좋은 구조라 마음에 들었다. 




이번 전시회가 좋았던 이유는 알아먹기 쉬운 영어단어로 글로벌(?)한 전시회로 구성했다는 점 외에 주최 측이 작가에게  세 달 이상 매주 한국의 소식을 보내서 작가가 전시 개막하기 일주일 전에 한국에 와서 부지런히 벽화를 완성했다는 데에 있다. 한국을 겨눈 그의 풍자가 피식피식 웃음을 선사하기도 했지만 G20 포스터에 쥐그림을 낙서했다고 벌금 200만원을 선고하는 이 나라에서 부러 낙서를 해달라고 공을 들이는 나라라니, 참 아이러니한 나라라는 걸 다시 한 번 증명한 셈이기 때문이다. 퍼잡스키가 겨누는 풍자도 결국 자본과 권력이 빚은 파장인데, 이런 아이러니를 퍼잡스키가 동물적 감각으로 포착하고 탐구 대상으로 끌렸구나 싶다. 






한국의 분단 상황, 높은 집값, 도시 난개발, 등록금 문제, 음식 문화에 한진중공업 사태까지 외국인의 시선으로 본 한국의 군상을 슥슥 그린 단순한 선으로 풀었는데, 재치가 넘친다.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들일 줄 여유 있는 사회가 새삼스럽다. 트위터, 말 그대로 잡담을 나누는 곳에 와서 트위터가 뭔지도 모르면서, 장담하건대, 단속하는 경찰도 법안을 만든 몇몇도 트위터를 제대로 쓸 줄 알면 법으로 제약한다는 게 얼마나 웃긴 일인지 모를 것이다. 암튼 ‘트위터 낙선운동’ 선거법 위반 판결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01404.html기사가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우고 떴다. 이런 우리나라 풍토에서 퍼잡스키처럼 풍자화가가 나오기 힘들다고 보면 이번 전시회 관람을 잘 한 셈이다. 답답한 사실은 그가 루마니아 지독한 독재를 겪으면서도 작품 활동을 해왔다는 점이다.  




전시가 끝난 뒤 페인트로 싹 다 지워버린다는 점 역시 작가가 낙서에 가진 의미망을 생각해볼 여지가 충분하다. 미국 그라피티 아트(graffiti art) 화가 키스 해링(Keith Haring, 1958~1990)이 유명해진 뒤 문이고 벽이고 죄다 뜯어다가 팔아먹었다는 일화가 씁쓸했던 참이다. 여배우 코푼 휴지도 경매에서 팔리는 지경이니 말해서 무엇할까 싶긴 하다. 그래서 티켓 뒷면에 작게 인쇄한 그의 작품은 한국 전시에 맞춘 드로잉이라 간직할 만하다.

 

이번 전시 주제를 두고 이전 작업과 아예 다른 맥락에서 진행되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몇몇 드로잉은 전시된 작품에서도 계속 반복되는가 하면 벽이나 창문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오십줄이니 낙서를 하기에는 아이디어 고갈일 수도 보이지만, 한편으로 어느 사회에서나 보이는 몇몇 공통 군상을 추렸다고 볼 수도 있다. 전시회 제목이 설명하듯 그의 작품은 주제, 소재 등 뉴스(신문)를 기반으로 작업한다. 민주화 사회에 도달할수록 자본과 권력 안에 포섭된 기존 언론에 대한 혐오가 짙은 요 사이, 메타 블러그나 SNS가 새로운 미디어 추세인 듯 보면 그의 방식은 어쩔 수 없는 한계에 봉착할 수 있지 않을까 의심이 들기도 한다. 




다시 말해 그의 방식이 문제라기보다는 그의 인식을 두고 하는 얘기인데, 한국사회의 현실이라고 받은 영자신문이 과연 한국사회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한국 관련 소식이야 앞서 얘기한 SNS로 생생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데 서로 번거롭게 무슨 짓인가? 싶더란 말이다. 영자 신문을 보냈다는 얘기가 신문사 홈페이지 링크를 걸어줬다는 얘기는 아니일테고, 비싼 운송료를 들여가며 날짜 지난 신문을 보냈다는 얘기일텐데 좀 웃기는 일이다. 대신 그가 전시회 벽면에 띠를 둘러 다양한 사회, 사건사고 스틸컷 인물을 꼴라주한 작품을 보면 그 각각의 자체가 하나의 상품으로 얼핏 메뉴판처럼 보이는데, 여기에 한국 관련 인물들이 등장한다. 즉 낙서와 다른 용도로 활용했고, 물론 인정한다.  그가 그리는 수준의 드로잉은 웹상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연세가 있으시다보니 종이를 고집하는 특성상, 혹은 작품으로 남기려는 의도라면 '종이 신문' 자체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 



 

짐작해보면 작가의 젊은 시절이 잔인한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셰스쿠(Nicolae Ceausescu, 1918~1989) 정권 후반부과 겹친다는 점에서 당시 나팔수 언론에 대한 조롱이 섞였다고 볼 수 있다. 전시회 그의 초기 작품은 신문 위에 그린 낙서들이다. 신문같지 않은 신문이라도 글씨가 빼곡하니 그림을 그리려면 단순해질 수밖에 없다. 거리에만 나가면 날짜 지난 신문이야 널렸으니 캔버스로 딱이다. (한국 사회에서 퍼잡스키와 같은 작가가 나오기 힘든 다른 이유가 있다. 한국에서는 폐지를 두고 몸싸움을 벌이다가 중상을 입는 노인들이 속출한다. [SBS취재파일] 누가 이 여인들에게 돌을 던질 것인가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0994402&plink=OLDURL)



무론 언론 자유에 대한 열망이 엿보이는 건 당연하다. 즉, 그의 작업은 아이디어 외에 단순한 선과 제대로 알아보기 힘든 글씨는 누구라도 편히 즐길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동시에 그의 존재를 가늠하기 힘든 불특정다수로 숨어들려는 불안이 보인다. 증거를 남기지 않는 휘발성을 특징으로 삼게 된 계기가 당시 압제와 연관이 깊다고 본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를 두고 '드로잉 천재 작가’라고 기사 추켜세우거나 기사 제목으로 뽑는 짓은 그의 트라우마를 건드리는 일이다. 굳이 천재라고 하자면 그는 안티히이로이다. 하지만 메이저 무대 위에 나온 지금, 그의 작업은 상품이다. 난 그가 출국하기 전에 몰래 서울 시내 어디엔가에 지독한 욕이나 전시회 고상한 분위기에서 할 수 있는 얘기들, 그러니까 독재사회에서의 검열이 상품으로 검열이 되지 않은 본성 그대로의 낙서를 했기를 바란다. 하지만 유명해진 지금도 신문 작업을 한다면 상품 가치를 높히기 위한 데코레이션이라는 혐의를 지울 수 없다. 




그가 주로 사적 영역이 아닌 공적 영역에 집중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일 텐데, 루마니아의 사회 현실에 대한 불신은 물론 사적 영역을 숨기고 싶은 의도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싶다. 그의 무의식은 지금의 집단지성이라 불리는 트위터나 페이스북처럼 당시 대중의 의도를 예민하게 캐치해서 무작위로 배포했다(고 보인다, 라고 쓸 수밖에 없는 추측으로 가득 찬 이글은 딱 가십이다.). 다만 단순한 선이 말 그대로 낙서처럼 보이지만 한 컷 그림에 집약된 사상을 떠올리면, 그는 당시 발명 조짐도 보이지 않은 디지털기기 대신에 대부분의 시간을 책 속에 파묻힌 채로 살았을 것이다. 사유의 근간이 책이라는 진리 만큼은 변함이 없다. 


 '낙서'를 하기위해서라도 책을 읽자는 뭐.. 이런 결론을 짓고 돌아왔다. 호당 얼마, 를  따지고 몇 억, 몇 십억 짜리 그림에 관심을 쏟는 한국사회에서 작품 가격이 없는 이번 전시회 기획 자체가 또 다른 일침이다. 물론 이런 의도로 주최 측에서 전시를 진행했을 리는 없겠지만 말이다.*  전시 http://www.danperjovschi.kr/



사진출처 - 댄 퍼잡스키 행사 관련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