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원 외

[Naif_제6회 피지컬 씨어터 페스티벌] 나이프하게 세상 사는 법

구보씨 2011. 7. 9. 16:07

제목 : Naif

기간 : 2011.07.09 ~ 10

배우 : 광대_ Toti Toronell, 악사_ Albert Dondarza

연출 : Toti Toronell

조명, 음향 : Nino Costa

매니저 : David Berga

제작 : Toti Toronell(스페인)

런닝타임 : 60분


 

naif

[형용사] 1. 순진한, 천진난만한, 2. 고지식한, 속기 잘하는, 어리석은

[명사] 1. 순진한 사람, 잘 속는 사람, 바보 2. 소박파(派)

 

naif[nɑ:i:f]와 knife[naɪf]는 발음이 비슷하다. 장단 차이가 있다지만 둔한 내 귀에는 그게 그거다. 비교해서 들어보면 쓰임새처럼 칼이 단단하고 냉정한 느낌을 주는데, 속성으로 보아 서로 반대에 있을 법한 두 단어가 발음이 같다는 게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그저 무식한 탓이나 내가 아는 나이프란 오로지 knife뿐이라 굳게 믿고 살았으니, 세상을 어찌 살았나 짐작이 가지 않는가.

 

뉴욕타임스는 7월 7일 판에서 “한국인들이 과중한 업무와 스트레스, 불안 등으로 신경쇠약에 걸리기 직전처럼 느끼고 있다”라고 썼다. 프로작(우울증 치료제)을 비타민처럼 먹어대는 미국 사회처럼 되지 않은 게 다행이지 웬 어깃장인가 싶지만, (반쯤 미쳐 산다는 걸 누가 봐도 알 수 있는데, 콕 집은 재수 없는 기사는) 맞는 지적이다. “한국인들이 치료를 기피하는 경향은 문화적 특성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하고 정신과에 가면 낙인이 찍힐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갖고 있다”는 견해도 일부분 동감하나, 한국인들이 정신병원을 가지 않고 견디는 이유는 그보다는 의료보험체계 문제와 압축성장을 하면서 이골이 난 게 근본적인 이유일 게다. 




독일 철학자이자 사회학자 게오르크 짐멜(Georg Simmel, 1858~1918)은 인간이란 자극과 반응의 존재라고 정의를 내렸다. 산업자본주의 사회에서 대도시인들은 무차별 자극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심장으로 반응하는 게 아니라 본질적으로 머리로 반응”하도록 적응하면서 살아왔다는 게다. 지독한 자극을 소가 닭 보듯 하지 않으면 어찌 견딜 수 있겠나, 하는 게 20세기 초에 내린 그의 주장인데, 200년 걸린 성장을 40년으로 압축 성장한 한국 사회를 본다면 무관심의 득도에 오른 경우라고 좋아했을 게다.

 

멀리 스페인에서 온 제작, 연출, 배우 또띠 토로넬의 순수한 나이프 연기는 애어른 구분 없이 극장에 웃음을 피운다. 확실히 한국 사람들이, 짐멜 분석처럼 감성이 무디기는 하나, 얼음이 녹으려면 시간이 걸리는 법이다. 또띠 씨 아내인지 연인인지 극장 입구에서 엽서크기홍보물을 나눠주던 여인이 낭랑하게 웃는 목소리가 가장 듣기 좋았다.

 

찰리채플린의 시선이 소외받은 자들에게 따뜻하게 향한다면, 또띠의 시선은 쓰레기 황폐화된 지구를 향한다. 주제를 다루는 방식이 쓰레기를 줄이자는 식의 직설은 아니고, 오히려 늘 쓰고 벌이는 1회용품을 재활용하는 재치로 풀어낸다. 비닐봉지, 신문이 그렇고, 악사가 다루는 톱 연주나 주위에 놓인 소품을 봐도 그렇다. 



 

뚱뚱한 몸집이 둔할까 싶지만 “광대, 마임, 연출, 저글링, 마술, 공중 팽이돌이, 아크로바틱, 공중그네 등” 다양한 실력을 섭렵했다는 걸 충분히 알 수 있고, 무대 조명의 소품 사용이나 애니메이션으로 되살린 자신과 호흡을 맞추는 장면 등 연출력도 뛰어나다. 이 양반이 또 미국 드라마 ‘마이 네임 이즈 얼(My Name Is Earl, NBC)’의 살짝 모자라고 짓궂지만 착한 동생 앤디 히키 역 에단 서플리를 딱 빼박았는데, 이 드라마가 카르마(Karma, 업보業報)를 다루고 있어 통하는 구석이 많다. (본인이 스페인어가 전혀 안 되는 관계로 상관관계를 따로 물어보지는 못했다.)

 

공연이 끝나고 출입구에 서서 나가는 눈이 작고 평평한 이민족 관객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고 인사를 했는데, 직접 악수를 해보니 시큼하게 땀 냄새가 풀풀 풍긴다. 최선을 다한 모습도 좋고, 굿! 쌩큐! 무차스 그라시아스!를 연발하는 관객들을 보고 신나서 통통 뛰는 모습도 보기 좋다. 광대는 끝나서도 광대이고, 문득 좋아서 하는 일을 한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또 느낀다. 잘 안되서 그렇지, 일까지는 아니어도 취미든 뭐든 좋아하는 걸 한다면 정신쇠약 쯤 얼마든지 극복 가능하다. 특정 분야에서 남들을 젖히고 일등으로 사는 뾰족한 knife보다는 naif한 삶이 행복하다. 어린 시절에 다 배운 건데 말이다.* 




사진출처 - www.produccionstrap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