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원 외

[드로잉쇼_2008] 외계인 미술복제 사기극을 감사기록, 아니 감시기록

구보씨 2008. 7. 11. 16:54

과연 나는 무슨 생각으로 요런 걸 리뷰라고 남겼을까, 참 부끄럽습니다. 나름 넌버벌퍼포먼스라는 걸 처음 보고는 흥에 취해서 남긴 글이라고 가물가물 생각이 나는듯도 합니다. <드로잉쇼>를 보면서 "와! 이런 공연이 다 있구나!" 깜짝 놀라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던 기억이 납니다. 자리도 구석자리라 좋은 위치가 가 아니었는데도 말이죠. 그 중독성 넘치는 페인트 냄새가 아직도 코를 간질이는 듯...

두 번째 버전인 <드로잉쇼 히어로>로 얼마 전에야 봤더랬습니다. 오리지널 버전이 너무 좋아서 찾아갔었는데요. 따로 후기를 남기지는 않았는데, 잠깐 소회를 적자면 세계 공통의 히어로들을 수작업으로 불러오는 실력이 역시 아주 일품입니다. 오랫동안 오픈런으로 진행한 작품이라 한국인 관광객은 적었지만, 아시아 쪽 관광객들이 나란히 앉아서 재밌게 보던 훈훈한 극장 분위기가 떠오릅니다. 


<드로잉쇼 히어로>는 한층 업그레이드된 실력을 선보이지만, 1편만한 후속작이 드물다고들 하는데요. 완성도를 떠나 처음 봤을 때 워낙 재밌게 봐서 2편 감흥은 첫 만남과는 좀 달랐습니다. 첫사랑과 나머지 사랑과의 차이랄까요. 하지만 처음 보신다면 저처럼 만족하실 수도 있구요. 남녀노소 가족끼리 보기 좋은 작품입니다.






오보! 아니, 오버! 이들은 북방계 몽골족처럼 생겼는데, 북방알타이어 계통이 아닌 의외로 'LOOK?'이라는 영어 단어 한가지만 쓸 줄 아는 남성형 외계인 5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현재 미술복제 사기극(?)을 펼치고 있다. 아니, 사기극이라기 보다는 미술작품을 통해 인간의 삶을 이해하는 과정이라고 보는 게 맞겠다. 


이들의 실제 침략 과정을 살펴보면 외계인 답게 인간의 전 역사에 걸쳐 완성한 작품들을 1시간 30분 안에 초(?)능력으로 복제하고 있다. 각각의 작품을 완성하는 데에는 최대 6분(다비드의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 상)이 걸리지 않았다. 이를 토대로 볼 때, 파수병 격인 그들이 지구의 모든 역사, 문화, 예술, 사회습성 등을 온전히 이해하고 작전을 세워 침략하기까지는 대략 9월 30일(공연기간) 정도까지 걸리지 않을까 추측되며, 이후 이들의 복사 취향으로 행적을 유추해보면 미국 브로드웨이, 영국 에딘버러 등지가 예상된다.(이는 삽입 음악과 그림 타입, 인간어로 영어 구사 등을 볼 때 거의 확실하다. )

우연히도 그들의 취향이란 게 우리가 익히 알 만한 작품들이라서 반갑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수백억을 호가하는 작품들이라, 외계인들도 돈의 가치에는 민감한 듯이 보였다. 그글이 그리는 주제는 다양하여 도시의 밤, 산 속의 계곡, 꽃, 남대문, 이순신 동상 등등 전방위적이었는데, 그들의 행동 중에서 그들이 의외로 평화를 원한다는 메시지를 찾을 수 있었다. 남대문이 불타올랐을 때에는 이순신 동상이 눈물을 흘렸으며, 알프스를 넘어 전쟁터로 향하는 나폴레옹 옆으로는 피카소의 게르니카와 아프리카 내전의 희생양인 아이들의 비참한 모습이 엿보여 호전적인(?) 전사형 외모와 다르게 평화를 원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들이 지구에서 에너지원을 유일하게 바나나에서 취득했는데, 가설에 불과하나 바나나 껍질을 태우면 마약성분이 나온다는 설 등이 인간에게도 전설로 내려오고 있음을 감안한다면 그들이 약에 취한 채로 뭔가 무속의 힘을 빌리는 게 아닌가 하는 짐작을 하게 한다. 

그들의 기록기는 의외로 지구의 캠코더와 비슷했는데, 심지어 사용법과 상표까지도 거의 동일해보였다. 역시 극비로 전해지는 말처럼 캠코더가 외계인의 물건이라는 게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그들의 더러운 가면 뒤에 숨겨진 실제 얼굴이다. 흔히 폭력의 상징인 깍두기 머리를 그대로 딴 사각형의 철제상자 형태로 작은 구멍이 오로지 하나가 뚫려 있어, 앞통수와 뒤통수를 구분할 수 있을 뿐이었다. 지독한 미니멀리즘의 극치로 그들이 추구하는 미래상을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지구에서 우후죽순격으로 올라가는 사각빌딩이 그들의 침략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아마 그 형태를 모욕으로 생각하거나, 자신들의 침략할 적격지로 여긴듯 했다.

그래서,마지막 결론이다.무서운 것은 그들의 비밀기지에서 본 5개체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 중의 일부는 현재 기자, 평론가, 관객 등등으로 위장하여 <드로잉 쇼>라는 이름으로 홍보를 하기 시작해 지구인을 외계인화 하고 있으며, 한국에서 그 영향은 가히 폭발적이다. 이는 죽음을 무릅쓰고 지난 9월 17일(수) 저녁 8시경에 염탐을 한 결과이다. 이만 오보! 아니 오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