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

<바다가 죽어서 남긴 시신> 혹은 시선

구보씨 2010. 4. 16. 14:18

제목 : 바다가 죽어서 남긴 시신_arko partner 2010

기간 : 2010.4.3 ~ 2010.4.4

제작 : 류석훈의 댄스컴퍼니 더 바디

기획 : 춤벗

안무 & 대본 : 류석훈

연출 : 이윤경

출연 : 유서연, 김하나, 이정인, 강진주, 서아름, 윤혜영, 장태현, 조아름

 

 

 

류석훈의 댄스컴퍼니 더 바디의 <바다가 죽어서 남긴 시신>을 보고 난 뒤, 난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바다가 죽어서 남긴 ‘시신’ 대신 ‘시선’이라는 말이 자꾸만 헛돌았다. 이 작품이 어딘가 응시하고 있는 부분, 메마르고 간결한 무대는 작품 포스터 컷의 메마른 호수, 혹은 소금만 드러난 바다의 뼈대인 듯 했다.


무대 위에서 무용수들이 움직이는 동선을 따라 흘린 땀방울은 그대로 뜨거운 조명 아래에서 소금기로 남는다. 자, 그렇다면 이들이 하고자 하는 얘기는 무엇인가. 시신이든 시선이든 난 마치 생선을 잡기 위해 바다에 뛰어든 어부처럼, 그러니까 돈을 벌기 위해 바다에 뛰어든 선원처럼 뭔가 이유를 찾아 눈을 두리번거린다.


하지만, 육지에서 인간이 전부가 아니듯이 바다에서 생선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무용에 당최 익숙하지 않은 탓이고, 감상을 하기에 갖춘 지식과 경험과 무엇보다 감수성이 부족한 탓이겠으나 망망대해에 작살 하나를 들고 내던져진 기분이었다.


설명과 소개가 없는 넌버벌 퍼포먼스인 무용은 불편한 장르이지만 그래서 강하게 끌리곤 한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지점과 이해하는 지점에 대해 불안할지는 몰라도 누구도 가르쳐 줄 수도 없고, 가르침을 받아서 이해해서 될 문제도 아닌 한 말이다.


종종 봐왔던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은 무용을 올리기에 참으로 적합한 곳이다. 근래에 들어 연극 못지않게 무용이 많이 올라가는 와중인데, 개인적으로는 어느 한쪽으로 쏠리는 일이 없길 바란다. (아울러 좀 더 실험작을 위한 공간이 마련되길 바라는 마음 역시도.)


<바다가 죽어서 남긴 시신>의 무대는 좁지 않은 극장을 더욱 한껏 넓게 펼친다. 보통 봐왔듯이 무대 좌우를 막으로 가려서 제한하는 일 없이 조명을 옆에서 배치하고 좀 더 깊숙한 곳에서부터 연기를 펼친다. 그러니까 객석 중앙에서는 보이지 않는 부분일 수 있는 부분이다.


배우들은 젊다. 어려보이기도 하는데, 의도한 바가 아닌지 모르지만, 비슷비슷한 전형적인 무용수들의 얇고 긴 몸이라기보다는 키가 크고 작고 마르고 통통하고 단발이거나 땋았거나 수염을 길렀거나 아니거나. 각각 개성이 있지만, 허나 일반적으로 볼 때 평범한 몸매의 무용수들이다. 그걸 탓하자는 게 아니다.

 

이들이 펼치는 무용은 물론 짜인 틀에 따라 펼쳐진다. 바다라는 이미지에 함몰될 필요는 없겠으나, 그들의 몸짓은 자유로운 물고기처럼 해류를 타고 흐른다. 물고기가 흘리는 땀, 소금은 어쩌면 그들의 땀이 피와 오줌이 소금이 되어 거대한 바다를 유지하는 지도 모르겠다.


 하얀 막으로 삼면을 채운 미니멀한 세트는 빛을 받아들이는 바다처럼 조명에 따라 다양하게 변주한다. 단연, 안무가 류석훈이 등장하는 시점부터 긴장이 고조되는 부분이 있다. 마지막 무대 위 갈라진 틈새를 따라, 즉 길을 따라 걷다가 무대로 쏟아내는 초록색 형광 결정체는 강한 인상을 주지만, 자칫 그 강렬함에 그 사이 보여준 무대가 잊힐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대중성을 앞세울 필요는 없겠지만, ‘무용은 어렵다는 고정 관념을 무너뜨리는 창의적인 작품들을 선보이며 대중들에게 다가가고 있다’라고 무용단을 소개하고 있다. 그 진행하는 내내 쉽지 않은 여정을 관객들도 따라온 만큼 마지막 마무리가 강한 인상을 남기기기보다는 천천히 내려갔을 때 좀 더 많은 생각과 질문을 던질 여지를 주지 않을까 한다.


낯설은 경험은 늘 썩어가는 일상에 대한 한 움큼 소금이다. 류석훈, 이윤경 부부의 <바다가 죽어서 남긴 시신>은 충분히 그 역할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