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연극을 막 보기 시작했을 때였습니다. 박근형의 얘기를 귀동냥을 들었던 때여서, <청춘예찬>을 꼭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지요. 제가 본 <청춘예찬>은 뭐랄까, 박근형 연출 버전은 아닙니다. 더 이상 박근형도 없고, 스타가 된 초창기 배우들도 나오지도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언론 홍보나 주목도 받지 못하는. 단지 청춘예찬을 올릴 당시 가난했던 극단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그 속내를 모르나 제가 받은 인상은 그랬습니다. 하지만 아마 속사정이 밖으로 보이는 사정과 그리 다르지 않겠지요.
처음 극장을 보고는 극장이 아닌 줄 알았습니다. 지금은 혜화동1번지나 극단 성북동비둘기의 연극실험실 일상지하를 비롯해 몇몇 극장에서 익숙한 편이지만요. 박해일이나 고수희가 나이도 같은 역할을 맡은 영민역 손인용, 간질역 김해진 배우(위 사진)는 최고였습니다. 미아리 동승무대 극장을 간 지 오래되었습니다. 홈페이지(http://dongsoongstage.cyworld.com/) 에 가보니 여전히 열심히 작품을 올리고 있네요. 2012년 5월, 얼마 전에 끝난 작품은 가격도 소박하게 5000원이구요. 다음 공연때는 잊지 않고 찾아가겠습니다. [2012.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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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뉴스에서는 죽은 아이들 얘기가 넘쳐납니다. 청춘이 되지 못한 채로 세상을 떠난 아이들입니다. 이 땅의 청춘들 역시 세상이 만만치 않습니다. 정말 만만치 않습니다. 잘은 몰라도 비정규직이 당연시 되는 사회는 바뀌어야 합니다. 나이 들어도 청년처럼 살자, 고 다짐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허나 각오는 빛을 바래 허망해진 지 오래, 용기는 진작에 사라졌습니다. 한탄만 한다고 세상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같은 시간과 장소와 생각을 공유하는 연극은 늘 위로 혹은 희망 혹은 분노 혹은 감탄을 이끌어냈습니다.
올해도 극장을 찾는 제 발길이 멈추지 않길 바랍니다. 동숭무대의 청춘예찬은 연극을 막 보기 시작할 무렵 봤던 연극입니다. 연극 끝나고 동네 시장통 선술집에서 배우들을 만났던 날것 그대로의 연극 속내를 들여다 본 작품입니다. 오랜 만에 리뷰를 읽어보니 새롭습니다. 힘들지만 그렇게 연극을 올리던 그 배우들을 지금 무대에서 자주 보지 못하지만... 다시 한 번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많은 청춘들이 좌절하지 않을 수 있길, 세상이 바뀌길 희망합니다. [2016.02.06]
제목 : 청춘예찬
기간 : 2009/03/27 ~ 2009/05/31
장소 : 동승무대 스튜디오홀
출연 : 손인용, 김해진, 박성헌, 김성태, 장용석, 채정은, 김유리, 김진문, 채명기
작가 : 박근형
연출 : 임정혁
주최 : 극단 동승무대
줄거리
청년은 22살이다. 아직 고등학교 2학년이며 졸업을 할지 말지는 아직 고민 중이다. 청년은 재미없는 일은 하지 않는다. 그의 집에는 두 가지 일만 하는 아버지가 있다. 하루 종일 누워서 TV보기. 이혼한 아내에게 용돈 타러가기. 그의 어머니는 아버지가 홧김에 뿌린 염산 때문에 눈이 멀었고, 지금은 재가하여 안마사로 일한다. 청년은 어느 날 친구의 사촌누나 간질이 일하는 다방에 놀러 간다. 그녀와 술을 마시다가 함께 잔다. 청년은 함께 살자는 여인을 받아들인다. 방 한 칸에 세 사람. 아버지와 청년은 술잔을 기울인다. 청년의 무분별한 방황에 아버지는 화를 낸다. 술 마시고, 노래하고, 간질 발작을 일으키고, 흥분하고, 욕하고. 청년과 간질 사이에 아이가 생긴다. 아버지는 새로 태어날 아이를 위해 천정에 야광별을 붙인다.
미아리에 있는 극장 주변, 도로를 사이에 두고 재개발과 대치하고 있는 이곳. 백화점과 나이트클럽이 있다고 해도 미아리 골목길 풍경이 연극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허름한 4층 건물 지하, 신발을 벗고 얌전히 앉아 있으면 무대와 객석의 구분이 없다시피 한 좁은 극장, 조명이 객석을 넘나드는 이 곳에 불이 켜지면 이곳이 주인공 영민을 닮은 누군가의 집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동네 분위기가 그렇지만, 극중 비루한 아버지는 늦은 시간 지하철 4호선 당고개행 의자에 취한 채 널브러진 채로, 돈통을 든 맹인 어머니는 작품처럼 아버지의 잔술값을 벌기 위해 오후 내내 지하철안을 서성이는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극중 영민의 이야기가 내 오랜 친구 은철이가 사는 모습과 겹치는 부분이 많아 더 몰입해서 봤습니다.
근래 들어 연극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던 적이 언제가 싶었는데요. 스무평 남짓 작은 극장이라 내 우는 모습을 배우들도 보았겠지요. 창피하지만 극이 끝나기 전에 보내는 박수였다고 생각해줬으면 합니다. 버거운 인생이라도 견디고 버티어야 한다는 게 참, 쉽지 않습니다. 누구랄 것도 없이 그들의 삶을 향한 발버둥이, 희망이 보이지 않는 미로 속 혹은 희망 찾기를 포기한 삶이라는 측면에서 하루하루 견딘다는 일이 얼마나 어렵고 힘겨운 일인가 절절하게 와닿습니다.
10년이 넘은 이 연극이 여전히 유효합니다. 이제 극단을 떠난 박근형 작가/연출이나 스타가 된 초창기 배우들은 없으나, 그 자리를 여전히 우직한 배우들이 메꾸고 있습니다. 이 내용이 극과 현실이 혼동이 될 정도로 세상이 참 팍팍합니다. 그래도 작은 홑이불을 가족이라는 끈보다 악연에 가까운 그들이 나란히 덮고 자는 모습에서, 극중 친구를 내치지 않고 온기를 나누는 모습에서 희망을 봅니다. 박근형의 희곡이 가진 힘을 새삼 다시 확인하면서, 배우과 관객의 수가 거의 비슷한 와중에도 열과 성을 다하는 젊은 동숭무대 배우들과 제작진 모두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사진출처 - 극단 동승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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