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하워드 존슨의 살인] 나는 과연 폴 만큼 사랑할 수 있을까?

구보씨 2009. 9. 12. 16:41

한 때는 코미디를 제법 보기도 했습니다. <하워드 존슨의 살인>도 그 시절 추억인데요. 언제부터인지, 코미디 대신 골머리를 싸안는 작품을 찾게 되었는데요. TV코미디 프로는 기회가 될 때마다 미친듯이 봐대면서, 무슨 이중성인가 모르겠습니다. 좋은 코미디 연극만큼 위로가 되는 장르가 또 있나 싶습니다. 요즘 같아서는 흠... 코미디를 다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 작품은 한 무대를 두고 두 편의 연극이 올라가는 독특한 기획인데요. 그때는 신나게 웃었나 싶은데, 내용은 좀처럼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_-;.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겠는데요. 과거 가볍게라도 남긴 감상이 없었다면 정말루 까맣게 잊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봤으나 생소한 작품이 한두편이 아닌데요. 점점 퇴화하는 기억력 탓입니다. [2012.10.20]

 

제목 : 하워드 존슨의 살인

기간 : 2009/09/12 ~ 2010/02/28

장소 : 가자소극장

출연 : 최영도(폴 역), 장혜리(아를린 역), 박준혁(미첼 역)

작가 : 론 클라크, 샘 보브릭

연출 : 김애자

제작 : 벚꽃나무

가자소극장에서는 조심해야 할 점이 한 가지 있다. 그러니까 같은 무대, 비슷한 코미디 연극을 보고는 전혀 엉뚱한 얘기를 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같은 무대를 사용하지만, 요일마다 오후 5시와 오후 8시를 오가며 <룸넘버13>과 <하워드 존슨의 살인>이 올라간다는 게다. 그러니 오늘 저녁 8시에는 분명 <룸넘버13>을 했는데, 다음날 같은 시간에는 <하워드 존슨의 살인>이 올라오는 격이다. 

 

굳이 비중을 나누자면 <하워드 존슨의 살인>보다는 <라이어> 작가 레니 쿠니의 작품인 <룸넘버13> 쪽으로 살짝 기우는 듯하다. (출연 배우 역시 셋인 하워드 존슨보다 두 배 이상 많다). <하워드 존슨의 살인>도 <네바다로 간다> 등 좋은 작품을 쓰는 론 클라크 & 샘 보브릭의 작품이긴 하다.

 

아무려나 두 작품 모두 같은 무대에서 펼치는 실내 소품 코미디이자, 대본이 탄탄하니, 동전의 양면처럼 꼭 붙어서 오픈 런으로 순항 중이다. 코미디가 무대도 중요하나 배우의 역량에 좌지우지되는 만큼 한 무대를 두고 벌이는 두 편의 코미디는 관객의 흥미도 끌 수 있어 꽤 유용한 발상이다.

 

배우 셋이 90분 동안 스릴러 코미디를 펼치는데, 연기도 연기지만 캐릭터가 딱 들어맞는 캐스팅이지 싶다. 섹시하면서도 엉뚱한 아를린 역 장혜리는 말을 빨리 하느라 살짝 더듬는 부분마저도 중년으로 접어드는 억척스러움이 살짝 배어나오면서 배역에 잘 어울리고, 순수한 듯 약아빠진 듯 미워할 수만은 없는 늘씬한 제비 폴 역의 최영도도 능청스럽고 뻔뻔하게 잘 한다. 특히, 일밖에 모르는 앞뒤 꽉 막힌 미첼 역의 박준혁은 뽀글머리, 진한 눈썹에 아담하면서도 고집불통 40대 가장으로 딱 적격이다!

 

팜므파탈이라고 하기에는 살짝 아쉽지만, 남자들을 홀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아를린의 답답한 가정으로부터의 일탈로 시작된 수컷들의 물고 물어뜯는 자존심 싸움! 다행히 배우도 달랑 셋인데, 제목과 다르게 아무도 죽지 않고 끝날 수 있다니 참으로 다행스럽다. 정신없이 웃다보니, 과연 내가 미첼이라면 세컨드를 넘어 써드로 이어지는 아내의 자유분방함에 죽을 만큼 혹은 죽일 만큼(?) 사랑할 수 있을지는 영 자신이 없어진다는, 나름 무거운 과제를 던지고 있다는 생각도 퍼뜩 들었단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