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 : 연극
기간 : 2009년 9월 8일 ~ 2009년 9월 20일
작품 : 장 주네
연출 : 박진신
배우 : 한일규, 배소현, 최희진
장소 : 대학로 청아소극장
시간 : 월~금 저녁 8시 /토, 일 오후 4시, 오후 7시
기획 : 극단 푸른달(http://club.cyworld.com/pureundal)
파팽 자매, 장 주네, 극단 푸른달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무대로 올리는 경우에서 종종 보는데, 원작의 무게 짓눌리는 공연을 볼 때가 있다. 인지도 높은 작품에는 홍보, 작품 이해 등 확실히 따라붙는 유리한 점이 있지만, 이는 양날의 검처럼 소화하지 못한 음식이 배탈을 일으키듯 무대 자체를 코미디로 만들기도 한다.
장 주네의 대표 희곡 <하녀들>은 1933년 2월 주인 모녀의 눈알을 맨손으로 뽑아 죽인 하녀들, 파팽 자매의 엽기적인 살인사건을 모태로 한 작품이다. 파팽자매 사건은 수많은 작품 속에서 간간히 그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러니까 익히 알려진 사건, 익히 알려진 희곡이다. 사생아로 태어나 절도, 탈영, 남창, 투옥을 일삼은 장 주네의 파토스가 넘치는 이 강력한 작품은 올 초에 대한민국 대표 작가이자 연출가 이윤택이 이끄는 연희단거리패가 올 초에 두 달이 넘도록 힘을 주어 올린 바 있다.
그러니까 소규모 극단인 푸른달이 신인이나 다름없는 배우들을 이끌고 장 주네의 <하녀들>을 올린다고 했을 때, 자칫 원작에 짓눌린 혹은 허겁지겁 따라가기 바쁜 실망스러운 작품이 나오지 않을까 싶더란 말이다. 한 가지 기대를 했다면 극단 푸른달을 이끄는 대표이자 배우인 박진신이 연출을 맡았다는 데에 있다. 그의 마임 모놀로그 공연은 작고 춥고 어두운 소극장을, 작은 호롱불 아래에서 조근조근 이야기를 나누듯, 아늑하고 따듯하고 밝은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그에 대한 믿음이다. 하지만 정극인 <하녀들>을?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이제 연극은 끝났지만, 봐야만 했다. 전율이 인다는 표현이 진부하다는 것도 알고, 다소 과장이 섞였다는 것도 아는데 이 연극을 보고 나와서 딱 든 생각이다.
마임, 그리고 마담과 하녀들
공연 시간은 1시간 30분 남짓이지만 마치 3시간짜리 공연을 보고 나온 듯 했다. 지루했다는 의미가 아니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조명은 커졌고 무대 위에는 배우들이 있다. 공연 내내 전체 조명은 딱 한 번 꺼진다, 연극이 끝났을 때. 다시 말해 객석에 앉을 때부터 일어설 때까지 쉼 없이, 집요하게 집중을 요구한다.
마담(한일규 분)을 향한 하녀들, 언니 쏠랑쥬(배소현 분)와 동생 끌레르(최희진 분) 자매의 애정과 질투와 증오를 용광로에서 달군 쇳물처럼 쏟아내는 <하녀들>은 편하게 웃고 즐길 수 있는 극이 아니다. 그렇다면 등퇴장 한 번 없이 배우들을 혹사시키면서까지 관객들을 긴장으로 몰고 가는 이유는 뭘까.
배우들은 각각 한 대사 안에서 노년, 중년, 청년, 유년기를 빠르게 오간다. 극의 시간의 흐름, 사건 진행 심지어 배우들 사이 일정한 규칙이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박진신의 <하녀들>의 세계에서는 자연스러운 이런 시도는 감정의 진폭과 상관없이 일상을 지배하는 불안정한 심리 상태를 보여주는 동시에, 운명의 굴레를 상기시킨다.
끌레르가 자살을 선택하는 바, 청년기 이후를 살지도 알지도 못함에도 그녀의 중년, 노년은 천연덕스럽다. 이는 끌레르나 쏠랑쥬가 ‘하녀’로 상징되는 피지배에서 절대 벗어날 수 없다는 저주처럼 보인다. 하녀들에게 마치 신처럼 군림하는 거칠 것 없는 마담 역시, 절도죄로 잡혀간 보잘것없는 양야치 무슈에 대한 맹목적인 태도는 자신을 향한 하녀들의 입장과 다르지 않다. 짐작컨대, 마담은 애인에게 가진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다.
자매가 마담을 죽이고, 도망을 친다고 한들 고아로 자라 평생 마담에게 하녀로 길들여진 그녀들의 비루한 처지가 달라질까. 마임이 눈에 보이지 않는 벽을 짚고 펼치는 연기이듯 자매를 둘러싼 세상은 마담으로 대체 되었다고 벗어날 수 있는 틀이 결코 아니다. 선택은 이제 절망으로 바뀐다. 견디거나 죽거나. 배우들의 급작스런 대사 톤, 연기 톤의 변신이 자연스러울 수 있는 부분은 마임이스트인 연출 박진신의 힘이다. 배우들의 몸짓에서는 박진신의 연기가 언뜻언뜻 오버랩되어 드러난다.
현실이 고스란히, 지독한 작품
위에서 잠깐 말했지만, 공연과의 현실의 접점을 찾는 방법으로 공연 시작 이전부터의 관객들과의 시간의 겹침, 혹은 호흡은 이제는 어느 정도 낯익은 연출 방식이다. 하지만 그 공연 시간 내내 뼈대만 드러낸 듯한 세 개의 사각틀(이 틀은 문, 거울, 지붕, 통로 등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한다. 이 역시 마임과 어우러졌을 때 최대의 효과를 발휘한다)을 가지고 과장된 억양, 뒤틀린 표정, 감정의 심한 낙차 등 마치 코미디에서나 볼 만한 연기를 펼치는 내내 이질적인 두 가지 선택이 빚은 상승효과는 엄청나다.
“하녀들이 더 깊은 절망의 늪으로 빠져들게 만들고 그 곳에서 헤어 나올 수 없을 때 카타르시스를” 주겠다는, 어찌 보면 연극의 정의를 우직하게 옮겨 붙인 듯한, 연출의 말이다. 다만 의도대로 이해를 시키는 작업이 쉽지 않을 뿐인데, 박진신과 극단 푸른달의 <하녀들>은 분명 기대 이상의 성과를 이끌어냈다.
“지배자의 모든 것은 공기, 사물, 감정마저도 지배하고, 피지배자에게 있어 시간이 흐른 후 오는 것은 희망 뒤의 절망 뿐이다”라는 박진신의 말은 극장을 나왔을 때부터 본격적으로 머릿속을 휘젓는다. 끌레르와 쏠랑쥬는 용산 철거민 참사, 비정규직으로 내몰린 수많은 파업 현장, 쌍용자동차 파업 사태 사이에서 죽었거나 견디는 이들의 사연으로 쉽사리 치환된다. 그리고 무대와 객석의 몇 미터 남짓의 사이처럼 그 이야기가 결코 멀지도 않고 남의 얘기가 아니라는 점을 상기시키는 지독한, 아주 지독한 작품이다.*
사진 출처 - 극단 푸른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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