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두이 배우를 떠올리면 여전히 부초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박중훈, 김혜수 배우의 영화 데뷔작 <깜보>(1986)에서 그 이미지가 고스란히 남아있나 싶습니다. <고래사냥>(1984)에서 안성기 배우가 열열한 민우 역을 맡았다면 그의 연기 인생이 조금을 달라졌을까요? 제가 보기에는 장두이 배우야말로 남루하면서 자유로운 보헤미안 역할이 딱이지 싶습니다.
연극계에서는 학생들도 가르치고, 책도 내는 등 활발하게 활동한다고 들었습니다. 이후 가끔 티비나 영화로 뵈었는데요. 무대 위에서는 <등대>로 처음 만나뵜습니다. 중극장 규모에서 2인극이라... 엄청난 내공이 필요하지만 30대 청년 역할을 하기에는 다소 들어보기는 하셨는데요. 덕택에 친구(?)같은 부자지간이 잘 표현되기도 했습니다.
보헤미안에게 등대라, 정반대 조합인듯 하나 잘 어울렸습니다. 그에게는 무대가 바로 세계...라는 다소 상투적인 얘기를 하자면, 그렇습니다. 아! 이 작품의 한 축을 맡으신 이봉규 배우는 언제 뵈도 '청춘' '열혈'이 떠오르는 배우십니다. 요즘도 종종 뵐 수 있지요.
[2012.08.07]
제목 : 등대
기간 : 2009/09/08 ~ 2009/09/16
장소 :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출연 : 장두이, 이봉규
작가 : 양수근
연출 : 김도훈
주최 : 극단 뿌리
주관 : 대학로예술극장
바깥세상과 격리된 최남단의 작은 바위섬 하늘도, 무인도인 이 섬에는 등대가 1기 서 있다. 그리고 30년 동안 등대를 밝힌 등대지기 한석중(이봉규 분)이 있다. 그 긴 세월동안 외톨이로 산 박일우, 그에게 하늘도는 또 다른 내면의 자아이자 반영이다. 2인극치고 중극장 규모 공연은 좀 무리가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무대 위에 재현한 하늘도의 풍경은 꽤 사실적으로 공을 들여서 꾸며 무대를 꽉 채웠다. 선착장, 발전실을 비롯해 실물처럼 재현한 등대는 물론이고, 30년 세월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작은 소품들까지도 홀아비 박일우의 황량한 30년 세월의 흔적을 그럴싸하게 담았다.
이제 섬에 업무 인수인계를 하기 위해 항로표지관리원 박일우(장두이 분)가 도착한다. 내년이면 하늘도는 무인관리시스템으로 바뀌고, 자연히 한석중 소장은 은퇴를 할 예정이다. 그러나 30년을 오롯이 섬에 틀어박혀 지낸 한석중 소장에게는 용납할 수 없는 결정이다. 그러니 그런 소식을 가지고 섬에 온 박일우가 밉기도 할 법하다.
성정마저도 거친 바다 위에서 버틴 고집불통 늙은이가 심술을 부리니, 막 새 직장에서 일을 시작한 신참은 견디기가 영 힘들다. 하지만 사람이 혼자 살 수만 있는가. 아플 때고 그렇지만 놀 때도 마찬가지고 대화를 나눌 상대가 필요하기도 한 법이다. 한석중과 박일우는 갑작스레 내리는 비에 옷을 홀딱 벗고 서로 등을 밀기도 하고, 섬에서 담근 술을 나눠 마시면서, 또 독특하게 2인 야구를 하면서, 같이 노래하고 춤을 추면서 점점 가까워진다.
야구를 하는 장면은 갑갑하게 갇힌 폐쇄 혹은 주변부 속성으로 섬이, 야구장이 그렇듯 중심부로 탈바꿈하는 계기가 된다. 또한 던지고 받기 혹은 던지고 치기 등 혼자서 할 수 없는 종목으로서 연극에서 화합을 상징한다. 동시에 던지고 치는 과정은 팽팽한 대결 구도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저마다 섬처럼 떠다니고 있었다’는 이인평 시인의 ‘안개의 섬’ 시구절처럼 “등대지기 공무원 경쟁률이 꽤 높았다”는 박일우의 지나가는 말에서 섬보다 오히려 더 깊은 외로움에 괴로워하는 도시인들의 심정을 짐작해 볼 수 있다. 한석중과 박일우는 이제 ‘그’, ‘그들’이라는 3인칭이 아닌, 서로 욕을 주고받고 싸울지언정 ‘나’와 ‘너’라는 2인칭의 밀접한 관계망을 형성한다.
김춘수 시인의 ‘꽃’이 그렇듯 이제 비로소 내 존재를 상대방을 통해서 확인하는 내내, 이들은 행복하고 즐겁다. 한밤중에도 40킬로 이상 떨어진 거리에서 볼 수 있다는 등대는 박일우를 부르기 위한 한석중의 애타는 마음을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 둘의 관계는 애초에 비극이다. 등대가 외롭게 서 있듯 한 사람을 떠나야하고, 또 한 사람은 남아야한다. 섬에서 30년을 산 한석중도, 이제 막 섬에 발을 들인 박일우도 세상은 도무지 되돌아가기 싫은 곳이다. 그리고 아비와 아들의 관계에서 그렇듯 한 가정에서 아비의 자리는 아들과 같이 차지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태생적으로 결국 아들은 아비를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기 마련이다.
마지막, 한석중의 다소 갑작스러운 자살 이후, 한석중이 30년 전에 떠나보낸 아들이 박일우,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설정은 이런 비극적 운명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 한석중과 박일우 사이의 혈연관계는 한석중이 내내 조각하는, 무대 중앙을 차지한 여인상을 비롯해 대사에서 어렵지 않게 짐작이 가능하다. 그런데다 마지막 사진 한 장을 보고 아버지의 존재를 알아차리는 느닷없는 반전은 1시간 10분 남짓의 짧은 공연 시간을 고려하면 여러모로 아쉬운 부분이다. 그러나 2인극임에도 전혀 무대 위가 허전하지 않은 이유는 장두이와 이봉규라는 두 배우의 힘일 것이다. 이 둘의 하모니를 볼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만족스러운 공연이다.*
◈ 연출 의도
Q> 이 작품을 통해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A> 인간에게 ‘외로움’이란 영원히 극복할 수 없는 명제이다. 인간은 왜 외로운 것인가, 그것은 소통의 문제이다. 소통이 잘 이루어지면 우리 인간에게는 외로움은 없을 것이다. 이 작품은 그런 외로움과 소통에 대한 것을 다루었다. 다만 그 방법에 있어 이 작품은 ‘가족’이란 걸 다루었고, 하지만 인간이 영원히 풀 수 없는 숙제이기에, 이 작품에서도 극복할 수가 없다. 이런 아이러니한 모습이 우리 인간의 모습이란걸 보여주고 싶다.
Q> ‘2인극’은 배우의 작품이라고 하는데, 연출가로서 욕심이 있다면..?
A> 2인극이 주는 매력은 누가 모라고 해도 ‘배우’이다. 관객으로서뿐 아니라, 연출가로서도 배우들이 무대에서 주는 집중력은 대단한 매력이다. 한명의 배우의 깊은 속내와 개성 모두를 느낄 수 있다는 건, 축복받은 것이다.
Q> 특별히 이 작품을 택한 이유는?
A> 요즘 관객들이 볼거리가 많은 작품들을 본다. 내가 아무래도 연극하는 사람이라 그런지, 정통연극을 다루고 싶었다. 인간의 근원적 명제인 ‘외로움’, ‘소외’등을 다룬 정통연극을 다루고 싶었고, 마침 그런 연극이 내게 찾아왔다.
Q> 이 작품의 두 주인공에 대해 설명하자면?
A> 보수와 진보의 충돌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등대소장은 ‘조직’과 상관없는 개인이고, 일우는 ‘조직체의 일원’이다. 개인과 조직간의 갈등이라고 할 수 있다. 둘이 충돌할 때 그 둘에게는 상처와 아픔뿐이다. 마치 요즘의 우리 모습을 보는 것 같다.
Q> 2인극이 소화하기엔 대극장이 넓을 텐데..
A> 배우를 믿을 수밖에 없다. 빈 공간까지 메꿔줄 것이다. 두 배우를 믿는다.
Q> 이 작품에서 특별히 신경 쓰이는 장면이 있다면?
A> 두 남자가 옷을 벗고, 빗속에서 춤추는 장면이 기대된다. 비를 어떻게 내릴 것인가. ‘섬’의 적막함을 사운드(음향)로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필요한건 원초적인 소리다. 그 소리가 문제다.
◈ 작가 의도
Q> 연극<등대>를 쓰게 된 계기는?
A> 등대는 실제 바닷길의 신호등 역할이지만 구원, 희망, 더 나아가 메시아적인 상징적 의미도 함께 내포하고 있다. 그렇다면 아주 먼 외로운 외딴 섬에서 홀로 오랫동안 등대를 지키는 한 인간이 있다면 어떨까? 그리고 새로운 인간이 출현하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에서부터 시작했다. 또 연극이 인간의 한 모습을 모방하는 이상, 우리가 살아가는 여러 형태들을 두 남자의 생활에서 압축적으로 그리고 싶었다. 풀어서 말하자면 진보와 보수, 젊음과 늙음에 대해. 우리 사회는 다원화 되어있지만 이데올로기 면에서는 아주 갇힌 사회이다. 자신의 주장만 옳다고 하는 그릇된 관행들을 두 남자가 서로를 조금씩 받아들이면서 나는 너에게, 너는 나에게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고 상대방을 이해하는 뭐 그런 것을 말하고 싶었다.
Q> 이 작품을 통해 관객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세지가 있다면?
A> 맨 마지막 '등대소장'이 하는 말이 관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어떤 것에 집중한다는 건 우리 부모가 자식에게, 또 직장 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연극인이든 다른 예술 장르든 통용되는 말이다. 배려, 소통, 이해, 사랑, 관심이 필요한 요즘의 사회이다.
Q> 연극<등대>에서 작가님이 가장 고민했던 장면이 있다면요??
A>두 남자의 목욕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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