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허참. 미디어법 통과 논란이라... 이때 이런 글을 썼더랬군요. 애국가 시청률과 견주는 요 사이 종편을 보면, 아니 본 적이 없으니 얘기를 듣다보면 괜한 걱정을 했지 싶습니다. 2009년 가을만 해도 YTN을 포함해 방송 4사 직원들이 파업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말입니다. 막연히 암만 그래도 그 정도까지 가겠어? 라는 일말의 상상을 현실로 만들어준 재밌는 세상이라니, 갈수록 더한다는 게 이런 건가 싶습니다. 이러나저러나 세월은 가고 있고, 곧 좋은 세상이 오겠지 하는 바람을 주는 게 또한 선거가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두고봐야 합니다. 전 당최 누굴 믿지 못하겠다는... 염장질을 해대는 통진당을 보면 또 착잡하지만 말입니다. 아무려나 작품이 작품이다보니 남들 다 아는, 또 다 하는 소리를 엄한 데에서 했네요. 요사이 지쳐서들 그런지, 이런 작품이 드물기도 합니다.
사족으로 올림픽보다가 말입니다. 펜싱이 아무리 칼 쓰는 경기라지만 영화 무협활극에서나 볼법한, 심지어 슬로우모션으로 처리했다고 한들 길고 지루한 1초! 정말 영화로 만들어도 유치하다고 안 믿을 상황이 벌어졌지 뭡니까? 무대 위에서 빛을 발한 슬로우 액션극 [됴화만발] 흙먼지 날리는 상여를 타고 영화를 겨누는 무협활극 http://blog.daum.net/gruru/1928은 작품이니 박수라도를 쳐주지... 누가 서양인들은 올림픽 메달에 연연하지 않는다고들 하셨나요. 아흐아흐. (정말 얘기가 청산리에서 광화문으로 가다가 삼천포로 빠졌습니다ㅜㅜ.) [212.07.31]
제목 : 청산리에서 광화문까지
기간 : 2009/09/16 ~ 2009/09/27
장소 : 대학로극장
출연 : 정재진, 배상돈, 이용규, 배수백, 박효주, 황명삼, 정충현, 문준석, 최의석
작/연출 : 이우천
주최/주관 : 극단 대학로극장
"국민 66%가 미디어법 처리에 문제 제기" (2009년) 9월 29일 오늘 자, 언론에 실린 미디어법 강행처리 관련 대리투표 논란 기사이다. 투료를 했니, 안했니, 대리투표네, 아니네 등등 속내를 들여다보면 유치원생 장난 혹은 블랙코미디 같은데, 사안이 자못 심각하다. 미디어법을 두고 벌어지는 논란의 중심에는 조중동의 방송 진출 여부인데, 속내는 한나라당의 정권 연임과 이를 저지하려는 야당의 치열한 각축전 양상이다. 늘 보는 방송이 그게 그거지 싶지만, 정치권의 해석은 전혀 딴판인 게다.
안 그래도, YTN이나 KBS를 두고 벌이지는 양태가 가관인데, 특히 요즘 KBS와 MBC의 9시 뉴스 편성을 비교해 보면 대략 그 이유가 짐작이 된다. 문제는 사람들이 대리투표가 볼썽사납다는 건 알겠으나, 그 난리를 치게 된 배경, 즉 미디어법이라는 게 뭐고 뭐가 문제인지, 잘 와 닿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을 서서히 끓이면 개구리는 도망치지 않고 그대로 죽는다고 한다. 사람이라고 다를 바 없다. <청산리에서 광화문까지>는, 수십 년 전에도 그 신문이 자전거를 돌렸나 모르겠지만, 자전거 하나에 넘어가 수십 년 동안 한 신문만 고집하는 형제…의 비극을 다룬 코미디다.
누구보다 신념을 가지고, 평생 독립투사였던 아버지의 강령에 따라 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사는 삼형제가 있다. 그들의 삶은 마치, 수도원 5년차 이상 신부들을 연상케 한다. 여자를 멀리하는데다, 아버지의 가르침에 따라 순진하고 착하다. 무엇보다 가족 강녕을 신의 계시처럼 따른다. 문제는 신부님들과 다르게 이들의 목적이 천상에 있는 게 아니라 지상에 있다는 것이다. TV도 안보고, 오로지 한 가지 신문만 주구장창 보는 삼형제, 특정 언론사가 언론을 독점하는 사회의 축약이다. 모든 비극은 여기에서 시작한다. 시체를 수거해 731부대 등에 팔아서 독립자금을 마련한 아버지의 유지에 따라 삼형제 역시 시체수거업에 종사한다.
일제 해방이후에도 여전히 청산되지 않은 일제 잔재, 삼형제의 목표는 일제 잔재를 뿌리뽑는 일이다. 그리고 그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광주민주화항쟁, 삼풍백화점 붕괴, 성수대교 붕괴 등 사회적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삼형제는 시체를 수거해서 성형외과에 넘겼다. 그렇게 번 돈은 주로 성조기와 가스통이 동원되는 시위에 후원 자금으로 쓰인다. 시위 내용은 중요하지 않다. 다만, 삼형제가 보는 ‘자전거 신문’에 따르면 그들 시위대는 구국의 투사이다.
하지만 아무리 격동의 현대사를 겪어왔다고 하나 이제 한국에서 대형 사건이 정기적으루다가 벌어지는 게 아니어서, 공급에 차질을 빚는다. 그래서 그들은 내키지는 않지만 부러 시체를 만들기도 한다. 시체를 구하려고 사람을 죽이는 뭔가 앞뒤가 바뀐 듯한 상황이지만 그들의 방식은 집안 고유의 숭고한 작업이다. 아이와 여자 제외, 오로지 강력범죄자만 대상으로 하지만 말이다. 장인정신으로 벌이는 살인, 그렇다. 삼형제는 성공률 100%를 자랑하는 킬러로 유명하다.
지역을 놓고 경쟁을 벌이는 조폭의 의뢰로 작업에 나선 둘째, 허나 가문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다. 여자를 작업한데다, 심지어 죽이지도 못했다. 나름 족보 있는 조폭은 삼형제를 사기단으로 보고 보복을 결심한다. 다행히 결과는 해피엔딩이다. 삼형제는 50명이 넘는 떡대들로 구성된 조폭을 깡그리 무찔러 사회에 혁혁한 봉사를 한 데다, 몇 년간 차질 없이, 양질의 살코기(?)을 공급할 수 있게 됐다. 게다가 신인 여배우 출신인 미모의 여자가 (아마도 삼형제를 합친 머리보다 더 똑똑하고 약은) 일원으로 합류했으니, 사업도 번창할 일만 남는 게다.
마지막에 드러난 진실은 참 허탈하다. 독립투사인줄 알았던 아버지는 일본군 소속이었고, 시체는 말 그대로 731부대 인체실험에 납품을 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광복 후 이승만 정권 때, 일본군 출신이 경찰로 둔갑을 했듯, 아버지 역시 본질을 숨기고 일제 청산에 나섰으리라 짐작된다. 삼형제의 행복한 결말은 정보의 독점, 왜곡, 점유의 지속이다. "이대로도 좋다면 굳이 진실을 알 필요가 없는 것"이 사람의 속성이기도 하다. 실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남의 근육과 뼈를 붙혀서라도 서구 지향의 얼짱, 몸짱이 되려는 '외모지상주의' 역시 정보의 속성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다시 말해, 개인적인 신념과 그에 따른 성공 혹은 안락함이 진실과 얼마나 많은 거리를 두고 있는가에 대한 고찰이다. “왜곡과 날조가 갖는 폐해의 비참함을 풍자”하고자 했던 작가이자 연출 이우천의 의도가 투사가 되었다. 다소 풍자극 치고는 속내가 직접 날을 세워서 튀어나오기는 하지만, 그 심정마저도 이해 못할 건 아니다.
우리가 낄낄 때고 삼형제의 우둔함을 비웃지만, 극장 밖을 나서면 우리야말로 그 꼬락서니가 아닌지 곰곰이 따져보게 된다. 극단 대학로극장의 창단 20주년 기념작으로 올라간 <청산리에서 광화문까지>는 중년 배우들의 어수룩한듯 펼치는 연기도 능청맞다. 두목 역의 노익장을 보여준 정재진, 김주명을 비롯해 삼형제 배상돈, 이용규, 배수백 등에게는 무대에서 단련된 노련함과 천연덕스러움이 단연 돋보인다. 여자 역의 박효주 역시 막 기운차게 도약하는 배우이고 보면 극단 대학로극장의 소극장 공연이 작게만 보이지는 않았다. 이런 목소리가 필요한 시기가 지금이 아닌가 말이다.*
사진출처 - 극단 대학로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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