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그놈을 찾아라> 그놈은 정말 들키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구보씨 2009. 12. 24. 19:37

 

장르 : 뮤지컬

기간 : 2009년 7월 22일 ~ 2009년 8월 23일

장소 : 예술극장 나무와 물

시간 : 화수일 16:30 / 목금토 16:30, 19:30 / 월 쉼

주최 : 극단 진동(http://cafe.daum.net/jeendong)

후원 : (사)전국국어교사모임, 바이러스, 우리교육, 품 청소년문화공동체, 한국교사연극협회

기획 : 극단 진동, 코르코르디움

 

 

 

청소년 전문극단 진동

청소년 대상 문화예술 풍토란 게 콩쿠르 성적 위주의 요령을 배우는 학원 교육이 아니면 “대량 복제된 이미지와 자극에 매몰되어 긴 안목으로 자기를 연마하고 미래를 준비하는 능력을 감퇴시키고 청소년들에게 교육과 문화는 이율배반적인 영역으로 존재하는”(김찬호, 교육의 상상력) 대중문화가 주를 이루고 있다.

 

‘…현재의 청소년들을 에워싸고 있는 교육 환경에. 정해진 틀 속에서 똑같은 것만을 강요하는 이 땅의 교육현실은 끊임없이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거나 기계와 같은 인간을 재생시켜낼 뿐이다. 이런 꽉 막힌 현실에서 청소년 극단은 아이들에게 자신들이 처한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게 하고 그 속에서 새로운 내일을 건설할 수 있는 힘이 되어주고자 한다.’

 

‘진동’ 홈페이지에 실린 소개 글에서도 드러나지만 91년부터 학교나 쉼터 등에서 아이들과 함께 연극 캠프 등 활동 내력을 보면 청소년 문제에 천착하는 극단 진동의 지향점을 읽을 수 있다. 하여, 연극을 교육의 장으로 확장하고, 청소년의 시각으로 본 학교의 문제를 공연을 통해 미시적으로 접근하겠다는 의지에 박수를 보낸다.

 

다만 입시 과열 등 학교와 학원을 둘러싼 문제는 한국사회의 승자독식 서열주의를 같이 고민하지 않고서는 좀처럼 풀기 힘든 문제이다. 대학서열이 부익부빈익빈으로 바로 승계되는 독과점의 한국 사회에서 아이들에게 선택권이 과연 있는가 말이다. 이건 줄 세우기에 대한 비판에 앞서, 아이들 자신의 삶을 위해서가 아닌 앞선 세대가 잡고 놓지 않는 기득권의 강요이자 답습이다.

 

 

올 여름에 다시 찾아온 진동의 뮤지컬

극단 진동은 작년 여름 <교복 속 이야기>(2008.07~08)에 이어 올 여름에도 학교를 배경으로 학생들이 주인공인 <그놈을 찾아라(이하 그놈)>(2009.07~08)를 무대에 올렸다. 두 편 모두 소극장용 창작 뮤지컬로 여름방학을 맞이한 청소년들을 타깃 관객층으로 삼은 듯이 보인다.

 

<그놈>은 <교복 속 이야기>보다 발전한 모습을 보여준다. 뮤지컬 넘버 ‘우리의 영웅’과 ‘너와 나를 찾아라’의 완성도도 높았고, 난이도 있는 힙합을 군무로 선보인다. 조명이나 영상물 등도 한결 세련되고 자연스럽다. <교복 속 이야기>에서 낯이 익은 윤계열을 비롯한 배우들의 연기도 자신감이 넘친다. 하지만 홍보 카피처럼 ‘대학로 새로운 패러다임’,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는 뮤지컬’인지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청소년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교사, 청소년 단체 상근자들을 깨워야 합니다. (…) 너희가 아는 세상이 틀린 세상일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지요. 청소년학과, 아동학과, 상담, 사회복지학을 공부하는 대학생들, 이들 중에는 청소년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겠다고 나서는 이도 있는데 정작 우리 사회가 왜 희생을 필요로 하는지는 몰라요. 그 젊은이들을 깨우는 겁니다. 너희가 서 있는 세상을 다시 보라고.” (인권 웹진 2009년 7․8월호)

 

<그놈>의 후원 명단에 오른 청소년문화공동체 ‘품’ 심상기 대표의 당부는 청소년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청소년 문화의 실질적 변화를 위해서는 청소년을 둘러싼 주변의 변화가 동반되어야 한다.

 

‘품’의 청년아카데미가 교육으로 이 문제를 푼다면 ‘진동’의 작품은 청소년 문제에 대한 문제를 어른들에게 도발적으로 제기하고 자극할 수 있어야 한다. 허나 아쉽게도 <그놈>을 ‘청소년 운동’ 차원으로 보도록 한 건 홈페이지 소개나 팸플릿 문구였지, 공연 자체는 아니었다.

 

 

무대 위에서 거듭나기 위해

<그놈> 속에서 학생들과 갈등을 빚는 주체는 교장을 위시한 종교 사학재단이다. 교장의 보수적인 종교 신념은 새로운 세대인 아이들과의 갈등의 핵심으로 등장한다. 그런데 ‘학원에서 공부하고 학교에서 잔다’는 요즘 아이들에게 학교가 과연 정학, 내신 불이익 등의 위험을 감수하고 서태지 분장을 하고 입학식에서 전복을 꾀할만한가.

 

‘전통과 명예의 명문 사학, 미션 스쿨’이라는 설정에 따른 교장의 행태에 다소 과장이 있긴 하나 왕따, 성적, 연애 등 청소년들의 내적 갈등을 다룬 <교복 속 이야기>에서 학교 현장이라는 사회구조적 틀거리를 문제 삼은 점은 분명 진일보한 지점이다.

 

그런데 학생 캐릭터가 보이지 않는다. 캐릭터가 없으니 오로지 교장과 담임이라 부당한 교권과 ‘학생들’과의 대치만 성립될 뿐이다. 그러다 보니 갈등 자체가 좀처럼 와 닿질 않는다. 모범생 준호와 이른바 날라리인 미선이가 등장하지만 이 둘이 만나고 서로 끌리는 과정도 빠르게 몽타주로 처리하다보니, 이별을 종용하는 준호 엄마나 미선이를 퇴학시키는 교장의 행동이 급작스럽게 보인다.

 

게다가 유일한 학생 캐릭터들인 이 둘의 이후 행적이 묘연하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의 소원대로 학교가 바뀌었다고 해도 미선이는 여전히 퇴학 상태이며, 준호 어머니가 바뀌지 않은 한 준호에 대한 입시 압박이 달라질지 의문이다.

 

 

UCC가 정말 학교를 바꿀 수 있다면

입학식 이후, 물꼬가 트이듯 아이들은 누구라도 ‘서태지’가 되어 학교의 강압에 저항한다. 이 아이들이 학교의 비리(아이들이 어떻게 알았을까 싶기도 하고, 실제 상황이라면 분명히 전교조의 사주 논란이 있을만한)를 폭로하는 UCC를 올리고 곧, 사회적 이슈가 된다. 이후 달라진 학교에서 아이들의 희망 찬 합창과 군무가 이어진다. 그런데 80분 내내 열심히 춤추며 노래하며 구슬땀을 흘리는 공연에서 실제 아이들의 행복이 좀처럼 오버랩이 되지 않는다.

 

우선 ‘보수적 학풍 = 비리’라는 등식이 일치하지 않는다. 입시위주의 학교 정책과 학교 비리는 당연히 별개의 문제로 봐야 한다. 그리고 과연 UCC가 학교를 바꿀 실마리가 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학교 비리를 밝혔다는 이유로 해직을 당한 교사가 법적 대응으로 복직을 하였으나 다시 해직을 당했다는 ‘징계 또 징계…학교 비리 폭로 교사의 잔인한 여름'(프레시안 09.08.06)이 우리의 현실이다.

 

확실한 비리 증거를 디밀어도 복지부동인 학교가, 아이들이 풍자 섞인 UCC를 올렸다고 달라진다? 사학법 개정 때에도 봤지만 기득권을 손에 쥔 사립재단의 ’똥싸 뭉개기‘가 얼마나 지독한가를 생각하면 소박한 희망이다.

 

대한민국 사회는 UCC도 통제하고 검열하는 세상이다. 비리 문제 등 민감한 내용의 UCC는 학교 측 삭제 요구 이전에 포털에서 자진 삭제하거나 않으면 다행이다. 또 만들고 올린 주체는 징계를 받거나 고소를 당할 우려도 있고, 무엇보다 학부모들 혹은 아이들 사이의 내분으로 번질 우려가 있는 것이다.

 

 

그래도 세상을 바꾼다

이러나저러나 극단 진동이 한결 세련된 작품을 들고 대학로로 돌아온 것만은 확실하다. 열악한 공연계 전반에다 200곳이 넘는 극장이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는 대학로에서 진동이 계속 작품을 발표해야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연극은 무대와 객석의 가까운 거리만큼이나 현실과 가장 맞닿은 장르이자, 늘 가슴을 들뜨게 하는 힘을 가졌다. 청소년들이 무대 위에 서건, 객석에 앉았건 닫힌 소통과 연대감으로 오감이 열리는 경험을 하길 바란다. 그리고 그 역할을 진동이 제대로 해주길 바란다.

 

“<늘근도둑 이야기>나 <지하철 1호선>이 그렇듯 시대에 맞게 청소년들을 둘러싼 다양한 문제점과 희망과 진솔한 이야기를 향해 안테나를 길게 드리워서 계속 발전해 나가는 작품이 되길 희망한다. 결국, 누구나 한 번은 <교복 속 이야기>의 주인공일 수밖에 없다.”

 

작년에 <교복 속 이야기>를 보고 적어놓은 글귀다. 누구나 한 번쯤 <그놈을 찾아라>의 익명의 아이들이고 보면 이 기대는 여전히 유효하다.

 

사진 출처 - 극단 진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