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두 메데아
일시 : 2009년 12월 16일(수) 늦은 8시
장소 : 학전블루 소극장
원작 : 유리피데스
각색 연출 : 임형택
배우 : 이 경, 구시연, 이도엽, 최규화, 이수연, 이다일, 김민정, 조연주
주최 : 극단 서울공장
주관 : 문화기획 연
막장 드라마 열풍을 보면 ‘그리스신화 최고의 악녀 메데아, 질투에 미쳐 자식까지 죽인 살인광 메데아’의 모습이 언뜻언뜻 보인다. 하지만 메데아는 토한 것을 다시 빨아먹듯이 식상한 질투의 화신으로 수천 년 동안 끊임없이 반복될 처지인가.
2009 오프 대학로 페스티벌 페미니즘 연극제 참가작 극단 레지스탕스의 <메데아>, 늘 실험적인 작품으로 마음을 설레게 하는 극단 성북동 비둘기의 정기공연 <메디아>, 그리고 2007 카이로국제실험연극제 최우수 연출상에 빛나는 극단 서울공장의 <두 메데아>까지, 내가 올해에만 본 메데아(혹은 메데이아) 공연들은 기존 신화를 두고 다른 식으로 변주를 한다.
<두 메데아>는 메데아의 남/녀와 부모/자식, 두 가지 관점에서 아예 두 명의 메데아를 등장시켜 메데아의 양면성을 대치시켜서 보여준다. 그렇다면 과연 남녀 간의 사랑은 부모자식간의 사랑과 대치되는가.
두 메데아로 나뉜 자아 분리는 적어도 원작 격인 신화에서는 남편이자 아버지인 이아손에게 가장 고통을 주는 복수는, 약혼자인 글라우케의 죽음도, 글리우케의 아버지 테베아의 왕 크레온의 죽음으로 물 건너간 왕권 쟁취도 아닌, 자신과 사이에 낳은 아이들의 죽음이라고 전제가 성립되어야 가능하다.
그런데 정말 그러한가. 우리는 믿고 싶지 않지만 주변에서 부모가 자식을, 자식이 부모를 죽이거나 혹은 괴롭히거나, 적어도 냉정하게 갈라서는 경우를 종종 본다.
그렇다고 <두 메데아>의 작품이 2009년과 동떨어진 작품인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이 작품이 보여주는 무대는 신화를 신화에 가까운 독특한 무대 형식으로 보여준다.
연극성이란 신전에서 벌이는 제의(祭儀)에서 비롯된 바, <두 메데아>는 악녀 메데아에 대한 새로운 해석보다는, 당시 무대의 구현을 실제처럼 실재를 불러오는 역할을 담당한다. 그리고 그 방식은 지극히 한국적 혹은 적어도 동양적이다.
무대 가운데를 비워두고 작은 연못이 두 곳이 있다. 망각의 강을 상징하듯 그 강 위에는 작은 잔이 있고, 배우들이 등장하면서 잔 위 초에 불을 붙인다.
촛불은 신을 부르는 제의에 꼭 필요한 소품이기도 하지만, 무대 양쪽에서 무대 한 가운데를 밝히는 역할과 동시에 그 뒤에 앉은 악사들과 무대와의 구분 즉, 저승과 이승, 신들과 인간들의 구분이다.
신화를 보면 이아손이 황금양털을 얻으러 가는 과정까지의 복잡한 가계도와 이유가 등장하고, 마찬가지로 메데아의 가계도 신과의 연계가 되어 있다. 그러니까 이들은 위태롭게 물 위에 떠다니는 작은 촛불처럼 신들의 놀음 혹은 유희의 과정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리스신화를 보면, 메데아의 경우도 그렇지 않지만 오이디푸스를 비롯해 잔혹한 복수극 이면에는 늘 신들의 신탁이 있었고, 또 신들이 화해를 주선했다. 그렇다면 인간은, 적어도 메데아를 비롯한 이들은 신들의 꼭두각시 노름일 뿐인가.
<두 메데아>가 이런 의문을 극복하는 지점에 ‘강렬하고 구슬픈 우리의 소리 '구음'과 '정가'의 만남’이 있다. 폭주하는 질투의 화신인 메데아를 견제하면서 넉넉하게 받치는 어머니 메데아는 한국적인 모성애로 잘 그렸다.
그 정서는 앞서는 정서가 아니라 묵묵하게 말없이 가슴으로 주고받는 정일 텐데 그 모습이 잘 담겼다. 그리고 자칫 비중이 적어 보이는 어머니 메데아의 모습 이면에는 ‘한 여인의 마음속에서 격렬하게 엇갈리고 있는 고통과 슬픔, 분노와 사랑을 강렬하고 구슬픈 우리의 소리’로 더욱 선명하게 그리는 우리의 소리가 있어서 가능하기도 하다.
그 절묘한 매치가 이 작품을 아득하게 먼 그곳까지 우리를 끌어 당겼다가, 활시위를 놓듯이 현실로 되돌린다. 70분 공연이면 연극치고는 짧은 편인데 연극을 보고 나면, 오래된 시간을 더듬어 온 듯한 기분이 들고 만다. 배우와 악사를 겸하면서 극에 취한 듯 연기하는 배우들의 뛰어난 실력이 뒷받침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한국에서만 올해 네 편의 연극이, 수많은 막장 드라마가 올랐으니 서양에서의 공연 혹은 변주 사례가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지는 않을 것인데, 그들에게 익숙한 메데아를 가지고, 외국에서 호평을 받는 단서를 몇 가지 알 듯 했다.
며칠 남지 않은 2010년 1월, 국내 공연 팀으로는 처음으로 뉴욕 라마마 극장에서 3주간 정식초청을 받았다는데, 그 정서를 마음껏 살리고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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