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예휘'를 처음 알려준 작품입니다. 이후 예휘의 팬이 되었지요. 꾸준히 공연을 올리지만 점점 힘들어하는 극단을 보면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연극하는 극단들 사정이 엇비슷하지만요. 요 몇 년 사이 극단 식구들이 많이 바뀌었는데요. 어려운 극단 사정에 그 이유가 있다는 걸 아니, 한 편 한 편 볼 때마다 더 애틋한 마음이 틉니다. 언제 또 작품을 볼 수 있을까 싶지만 늘 응원하는 팬들이 있다는 걸 이분들이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제목 : 장 루이 바로, 소녀의 이야기(향이 나는 환상 음악극)
기간 : 2009년 4월 8일 ~ 2009년 6월 14일
장소 : 대학로 동숭무대 소극장
출연 : 송윤석, 이승희, 하하나, 이인화, 김한나, 배태원
제작 : 극단 예휘club.cyworld.com/yehui2007
공연에서 향을 맡다
6명의 배우가 등장하는 소극장 공연 <장루이 바로, 소녀의 이야기>(이하 장소이)는 쉽게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서사 구조를 충실히 따르고 있으나, 곱씹어 생각할수록 뭔가가 자꾸 배어 나온다. 배어 나온 뭔가를 두고 작품 소개에서 ‘향’이라고는 하는데, 그렇다고 쳐도 독특한 향에 끌리는 내내 익숙지 않은 뭔가가 좀 불편하다. ‘향이 나는 환상 음악극’이라는 부제에서 어린이 뮤지컬에서나 봄직한 과장된 카피를 떠올리게 한다. 이미 충분히 긴 제목 옆에 굳이 부제라는 식으로 사족을 붙인 이유가 뭘까.
다소 저돌적인 부제의 후각(향), 청각(음악), 시각(극)의 공감각 이미지 중에서 후각에 대한 강조가 눈에 띤다. 무대극에서 ‘향이 난다’라는 의미는 실제 후각적인 자극이라기보다 극 성격에 대한 환유 표현이다. 볼거리에만 기대지 않고 ‘환상’을 불러온다는 그 독특한 향은 장소이를 다른 공연과 구분 짓는 가장 큰 변별점이다.
환상극, 정교한 배합
카피의 쓰인 단어 하나를 물고 늘어지는 황당무계한 이 전개는 극단 예휘를 이끄는 바로, 바로 역의 송윤석의 입김이 당연히 카피에도 닿았으리라는 짐작 때문이다. 연극과 교수이자 예휘의 대표로 이 작품에서는 작, 작사, 연출, 무대 디자인, 주연 배우를 맡은 그이다. 장소이는 그의 역량과 취향이 온전히 투사된 작품이다. 그렇다고 송윤석의 일방적인 의도로만 완성된 공연은 아닐 것이다. 좋은 향수란 원료와 원료의 최적 배율에서 나오듯이 배우(소녀 역) 겸 의상 담당인 하하나(하소울)나 배우(대장간 청년 외) 겸 무대그림을 맡은 배태원 등의 또 다른 관여가 눈에 들어온다.
소규모 가내수공업을 연상케 하는 일련의 참여는 배우들이 극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방식이고 내부의 높은 신뢰도에서 출발한다. 대극장용 작품, 혹은 배경이나 틀을 현실에 뿌리를 둔 작품이라면 이런 방식보다는 기성의 능숙한 작업자에게 맡기는 편이 낫다. 작은 극단의 내부 사정에 기인한 일반적인 일인다역 제작시스템과 구분되는 지점은 배경과 진행을 프랑스의 연출가이자 배우인 장 루이 바로(Jean-Louis Barrault, 1910~1994)의 작품에서 모티브를 삼은 재창작극으로 상상력에 기댄 배경과 진행에 있기 때문이다.
환상극이 실은 현실
무대 설치나 동선의 제한이 따르는 소극장에서 송윤석과 5명의 배우들은 세트플레이에 능한 베테랑 농구팀처럼 손발이 척척 맞는다. 극을 쥐었다 폈다 하며 여유 있게 이끄는 이승화(남주인 역)나 이인화(여주인 역)의 능숙한 연기나 감초역할을 톡톡히 하는 김한나(귀족녀 외)의 톡톡 튀는 매력도 각자 맡은 자리를 튼실하게 지킨다.
배우 사이 호응력이 장소이만 장점은 아니다. 땀냄새를 무대극의 향이라고 친다면 동시간 다른 소극장에서 올라가는 공연들 역시 관객과의 소통을 위해서 무대를 전방위로 사용하는 내내 배우들의 땀 냄새를 짙게 풍기기는 매한가지다. 예휘의 팀플레이가 정교하다는 의미는 전체적으로 음악과 무용과 연기와 독특한 소품과 아기자기한 무대가 균형을 이루면서 어느 한쪽이 과잉으로 넘치는 않는다는 점이다.
예휘는 자신들의 공연을 ‘소극장 음악극’이라고 확실히 규정을 짓는다. 이는 작은 뮤지컬과도 또 다른 방식이라고 극단 소개에서 밝히고 있는데, 예휘의 노하우는 자신들이 정의내린 방식에 대한 꼼꼼한 적용에서 비롯된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적용이 부단한 실험의 반복과 고민의 산물이라는 것쯤은 미루어 짐작하기가 어렵지는 않다.
극중 공연예술가 바로를 통해 장삼이사로 살던 소녀, 여관집 부부, 건너 여관집 과부, 대장간 청년이 서서히 예술가로 새로운 인생에 눈을 뜨는 과정은 현실에서 극단 예휘의 창단 과정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극중극으로 공연을 위해 마련하는 소품은 여관집 길거리 공연단의 소품답게 여관 창고에 쌓여 있음직한 냄비와 각종 잡동사니들이다. 아기자기한 소품은 예술가로 거듭나는 과정을 실감나가 표현하는데, 이 소품들은 예휘의 소품 창고에서 나온 것들이다. (지극히 당연한 얘기지만!)
그리고 바로 공연단(예시) → 예휘 공연(실제) → 관객과의 소통(이해) → 극장 밖(적용)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직접적인 과정은 이제는 소극장 공연의 익숙한 패턴인 배우와 관객의 소통의 차원을 재미 차원 이상으로 끌어올린다. 다시 말해 실제 공연예술가인 그들의 삶 자체가 장소이의 중심 제재인 만큼 관객에게 새로운 실마리 혹은 고민을 제공한다. 자신들의 얘기를 하되 환상극의 틀을 취한, 그 낯선 전달 방식이 장소이만의 향기이다.
장루이 바로, 그리고 극단 예휘
아무리 화려하고 볼거리, 들을 거리 만질 거리가 많다고 한들, 냄새가 너무 강하면 머릿속이 지끈지끈 마비가 온다, 생각할 여유를 주지 않고 랙(leg)이 걸리기 마련이다. 장소이는 기획의도에서 대중문화의 이런 속성을 경계한다고 분명히 밝힌다. 좋은 향기는 밀어내는 속성이 아니라 저절로 흥에 취해 끌어당기는 성질을 갖는다. 작품의 완성도가 높은 이유는 세밀하게 조정된 무대 동선이 배우들 뿐 아니라 무대 세팅마저 움직이는 배우처럼 유기적으로 극에 참여한다는 데에 있다. 움직일 리 없는 것들이 흥에 겨워 같이 춤을 추듯이 보일 때, 한 달이나 지난 지금 나를 다시 그 무대 위로 끌어당긴 것이다.
인간의 후각은 오감 중에 가장 빨리 지치는 예민한 감각이다.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먹지 못하는 것보다 덜 중요하겠지 싶지만, 후각은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고 들리지 않는 것을 알게 해준다. 이성으로 판단할 수 없는 것들의 존재를 알려준다. 무엇보다 후각이 마비되는 순간, 맛을 잃어버린다. 다시 말해 사람을 사람답게 풍요롭게 해주는 감각으로, 예술의 정의가 가장 근접한 속성을 갖는다. 또 시간에 제약을 받는 소멸의 예술이자 순간의 예술인 무대극처럼 후각 역시 마찬가지다.*
사진출처 - 극단 예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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