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 : 연극
기간 : 2009년 4월 9일 ~ 오픈런
장소 : 대학로 열린극장
출연 : 연우 역 / 이창욱, 이영훈 수영 역 / 임예나, 성아름
기획 : ㈜가을엔터테인먼트
극장가는 길
한국 공연 문화계에서도 많은 자본이 작품 흥행의 충분조건이긴 하나 필수조건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건 이제 상식처럼 통하는 얘기다. 하지만 작년 100억 이상 투자받은 한국형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흥행에 저조한 성적을 거두면서 한국영화가 위축되었다는 건 상식이 되었다. 올해 블록버스터 <해운대>의 선전이 그나마 눈부시지만, 아예 상영이 몇 년이 미루어지거나 극장에 타이틀을 걸지 못하고 DVD로 출시되는 영화가 점차 느는 형편이다.
그렇다면 영화 시장이 위축된 만큼 풍선효과로 뮤지컬이나 연극이나 뮤지컬이 더 활성화되었을까. 그러나 한국 영화계의 침체는 문화 전반의 위기를 알리는 신호탄인 게 아닌가 싶기만 하다. 무대극 역시 창작보다 검증을 받은 콘텐츠에 대한 가공에 대한 선호가 두드러지는 경향을 보였다. <라디오 스타>, <즐거운 인생>, <미녀는 괴로워> <新 행진, 와이키키!> 등이 영화가 무대로 옮겨진 경우이다.
그러나 예를 든 영화들은 흥행 여부는 물론 작품성에 대한 평가가 천차만별이다. 이들을 한데 묶을 수 있는 공통점은 극중 노래 비중이 높거나 영화라는 것뿐이다. 이외에 로맨스 위주, 혹은 복고 취향을 소스로 선택하는 경우가 많은데, 단순 평가를 내리기에는 무리가 있으나 ‘무대화하기 쉬운 영화 선택이 과연 공연의 질을 보장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드는 건 사실이다. 물론 식상한 내용, 창작공연 제작 미비 등 ‘우려먹기식 제작 관행의 폐해’를 지적받하기도 하나, 일정 부분 흥행의 안전장치 역할을 하는 인지도를 무시하기 힘들다. 무대로 옮기는 과정에서 원작과의 거리 유지 및 차별화, 즉 ‘가공의 세밀함’이 완성도의 주요 키 역할을 맡기도 한다.
소극장 연극은 영화나 뮤지컬, 대형 연극에 비해 자본의 구애를 덜 받는다. 그래서 창작극이나 실험극의 모태가 되는 하지만 대신에 열악한 수익구조 때문에 좋은 작품성을 갖추었음에도 스러지거나 생명력이 짧다는 악순환을 겪기 마련이다. 소극장 공연치고는 드물게 아크릴 간판까지 달고 전용극장을 둔 공연이 몇몇 있다. 만화가에서 한국 공연 문화계의 아이콘으로 무섭게 떠오른 강풀의 만화 <순정만화>를 원작으로 삼은 <강풀의 순정만화>(이하 순정만화)도 그중 하나이다. 작년 9월에 1000회 기념 공연을 올렸고 지금도 꾸준하게 공연 중이라니, 우선은 소극장 위주의 작은 공연작들의 열악한 현실에서 보자면 반가운 현상이다.
<순정만화>는 지난 1월, 서울과 대구에서 동시 공연을 올리기도 했다. 대형 뮤지컬의 느린 행보가 따라올 수 배우 7명 내외의 소규모 공연 만의 틈새 공략이다. 극장 접근성이 뛰어나고 상대적으로 관람료가 저렴한 대신 스크린이라는 밋밋한 한계를 가진 영화와 화려함과 생동감이 넘치지만 수도권 중심의 공연장과 비싼 관람료 등 시간과 비용이 부담스러운 대형 뮤지컬, 그 중간 위치이다. 뮤지컬 <점프>가 서울과 부산 두 곳에 전용극장을 운영하는 등 비슷한 선례가 없지 않지만 <순정만화>는 지역 소도시 소극장이면 어디든 공연이 가능하다.
<순정만화>는 소극장이면 어디든 공연이 가능한 몸집인데다, 기획사는 늘 순정만화 배우팀을 새롭게 모집한다. 배우 수급에서 단연 앞서고 있다. <순정만화> 동시 공연이 가능한 저력은 기획사에서 강풀의 ‘순정만화’와 ‘바보’를 비롯해 총 4편의 공연을 동시에 올리고 있는 데에서도 기인한다. <순정만화>와 <강풀의 순정만화2. 바보>(이하 바보)는 배우진이 유기적으로 상호 호환한다. (실제로도 두 작품의 서울 공연장은 한 골목 안쪽 20~30m 내외에 붙어 있다.) 두 공연은 7~8명 내외의 배우진, 주연급 외에도 전 출연진의 더블 캐스팅 체제 등 같은 전략을 취하고 있다. 같은 공연을 동시에 올릴 때 생길 수 있는 배우의 여건 등을 최소화시킬만한 여력이 생기는 것이다.
극장 안에서
다만 관객들과 닿는 면적을 넓히기 위한 동시 공연이 공연의 질을 균등하게 담보할 수 있는가는 과제이다. 뮤지컬의 경우 한 작품 내에서 더블 캐스팅된 주역이 누군가에 따라 관객의 공연 평가가 갈린다. 뮤지컬 <햄릿>의 경우, 무려 5명이 돌아가면서 햄릿을 맡았는데, 관람평은 대부분 ‘누구 주연의 햄릿인가’에 초점이 맞춰지고 출연진 교체에 따른 티켓 판매량이 다르다. 물론 5명의 다른 햄릿을 모조리 챙겨보고 비교평가를 올리는 매니아 층이 생기기도 한다. 물론 배우 각자의 음악성, 춤 실력, 외모, 연기력이 공연의 비중을 차지하는 뮤지컬과 팀워크가 생명인 소극장 공연은 엄연히 다르다.
<바보>와 <순정만화>는 공연 규격화에 중점을 둔 듯이 보인다. 예를 들면 공연 시작 전 관객과의 대화에 출연 배우가 직접 나와서 분위기를 띄우는데, 이때 준비한 대사가 두 공연이 똑같다. 즉 웃음을 유발하기 위해 잘 짜여진 대본이 있고, 그 역할을 연극이 만화와 다른 변별점인 1인 다역의 코믹역을 맡은 배우가 진행한다. 이는 공연 분위기를 살리는 역할 말고도 사전 노출을 통해 극 내에서 진중한 캐릭터들과 균형이 다소 어긋나는 부분을 미리 상쇄시키는 효과도 거둔다. 1인 다역을 비롯해 배우마다 극 출연 비중을 고르게 두어 특정 배우에게 의지하지 않는 점도 마찬가지다.
두 연극 모두 <강풀의… >라는 전제를 달고 있는 만큼 극은 만화를 통해 익숙한 내용을 무난하게 따라간다. ‘바보’나 ‘순정만화’라는 원작 자체가 스케일이 크거나 사건 위주가 아닌 소소한 일상을 다루고 있어서 영화나 대형 무대극보다는 집중도 높은 소극장과 잘 맞는 작품이기도 하다. 무난한 흥행을 거둔 영화와 비교할 때, 중간 중간 소소한 재미와 1000회가 넘는 공연을 통해 다져진 내공이 엿보이는 박신혜(엄마 역)나 만화를 꼭 빼닯은 수영 역의 김소영 등 몇몇 배우의 능청스럽고 노련한 연기가 롱런의 한 축으로 보인다.
<순정만화>는 알려진 원작이 갖는 필연적인 명과 암, 1인다역의 극중 역할에 따른 효과와 반작용, 배우들 사이의 연기 밸런스 불안, 단순화한 배경과 소품 등 개선할 부분도 없지 않다. 기획사는 “해외파 공연들만을 보고 즐긴다면 공연 문화 역시 편식하게 될 것이다! 자생적으로 좋은 상품을 만들어 우리도 즐겁고 또한 밖으로도 내보낼 수 있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손맛, 장맛보다는 ‘레시피’로 승부를 보겠다는 그들의 시도가 앞으로 어떤 결과물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사진 ㅣ가을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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