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춤이라는 약어로도 익숙한 <사랑한다면 춤을 춰라>는 여전히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지요. 저도 세 번 정도 봤습니다. 글을 읽어보니 사춤이 인기를 얻으면서 선발한 2기의 첫공연을 보기도 했네요. 2009년도이지 싶습니다. 여전히 사랑을 받고 있는 공연으로 분명 한단계 업그레이드가 되었을 텐데요. 기회를 봐서 한 번 더 찾아가야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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큼지막한 돼지머리가 마치 모양 그대로 둘로 쪼개진 그대로 썰리고 팔리는 선술집이 늘어섰고, 자욱한 담배 연기와 비릿한 고깃내에 취했다가 몇 걸음을 더 옮기면 악기상점마다 기타들이, 각양색색의 악기들이 마치 푸줏간 냉장고 안에 걸린 소와 돼지의 몸뚱이처럼, 혹은 거대한 고깃뼈처럼 걸려 있다. 오버랩일까. <낙원상가>가 거대한 도축장처럼 보였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거대한 조립상자의 이름이 안식처 혹은 종교에서 말하는 궁극적인 행복과 기쁨이 있는 곳, 낙원, 에덴(Eden)이라니. 날 것 그대로의 강렬한 것들 사이로 마치 낙원에서 쫓겨났거나 다시 들어갈 기회를 엿보듯이 노인과 노숙자가, 혹은 그 둘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들이 배회를 한다. 아무려나, 내가 백 몇십 걸음 되지 않는 낙원상가 인근에서 보고 듣고 맡은 것들은, 으슥한 골목에서 진동하는 지린내를 포함해, 하나 같이 삶의 원초적인 형태였다.
가난한 만큼 이들이 마시는 한 잔 술과 씹어 삼키는 돼지 창자는 고스란히 그 역할을 해야할 것이다, 치열하게 살아남아야 한다는. 술에 얼굴이 불콰해진 이들이 서로 부딪치며 내뱉는 사랑은, 섹스를 위해 남발하는 헛소리든 뭐든, 살아 있다는 존재 증명이다. 결국 그렇게 해서 모텔이나 여인숙이나 혹은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진다면.
이처럼 사랑을 하려면 말이 아니라 몸을 써야한다, 점잔빼지 말고 몸을 섞고 부딪쳐야 한다는 단순하나 명쾌한 주장을 하는 비언어극, 댄스 뮤지컬 <사랑한다면 춤을 춰라>, 일명 사춤은 낙원상가 4층 전용관에서 펼쳐졌다. 춤꾼의, 춤꾼을 위한, 춤꾼에 의한 공연장 주변에는 역시나 춤꾼들이 종종 눈에 띄었다. 공연을 본 날은 사춤 2기인 ‘춤팀’의 첫 공식 무대였다. 이들을 응원하기 위해 1기들이 찾아왔는데, 그들 몇몇과 같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타서 그들의 얘기를 들었다. 익히 1000회 넘는 공연으로 얼굴이 눈에 익은 사람들이었다. 딱히 운이 좋다고 여길 것도 신기할 것도 없는 게, 그들은 내내 로비에서 손님들과 같이 서성이면서 잡담을 나눴다.
첫 공연이다 보니 동작이나 호흡이 다소간 어긋나거나 자세가 약간 불안한 모습이 얼마간 보였는데, 오히려 긴장한 근육과 정신이 극한으로 몰린 그 아슬아슬한 경계가 생명력이 더 충만하게 보였다. 땀에 밴 맨살이 무대 바닥에 강하고 빠르게 밀리면서 내는 끼익! 하는 소리는, 분명 듣기만 해도 소름이 살짝 돋는 아픈 실수였음에도, 공연의 팽팽한 장력이 생생하게 전해지는 바람에 소름이 끼쳤다. 때 마침 주인공의 꿈속 장면이라 무표정한 마스크를 쓰기도 했지만 여전히 연기는 진지했다.
중일영, 3개국어로 자막이 나오는 내내, 비언어극마다 드는 생각이지만, 나약한 이야기 뼈대가 안쓰러웠으나 공연에서 내러티브란 게 단순히 줄거리를 의미하지는 않고 보면, 다양한 볼거리인 춤이 전체적인 완성도를 끌어올린다. 내용이 해피엔딩이기도 하지만 공연 말미에 어울려서 웃는 모습이 2시간 가까이 신나게 춤을 추고 난 뒤에 배우들의 후련함, 통쾌함으로 그럴 듯하게 보인다. 1기인 사팀도 같이 올라와 인사를 하면서 축하하는 모습 역시 보기 좋았다.
연습생 혹은 더블 캐스팅 정도였을 2기들이 사춤의 또 하나의 팀으로 공인 받는 첫 자리라서 그런가, 그들이 공연장 밖에서 관객들을 맞이하는 표정들이 밝았다. 추운 날씨에 어깨를 드러낸 춤복을 입고도 땀을 흘리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2팀으로 나뉜 이상, 보다 발전적인 구도로 성장하길 기대한다.

힙합, 팝핀, 현대무용, 재즈, 탱고 등등 모든 춤을 골고루 볼 수 있는데에다 그 실력 또한 전문가 못지 않음은 익히 알려진 바이다. 너무 알려지다보니 오히려 관객들의 눈높이가 올라가서 그 눈높이를 어떻게 맞추느냐가 고민일 테지만, 역시 그 정도 실력이 되니까 전용관에서 1년이 넘도록 공연을 펼칠 수 있는 것이다. 1시간 30분 가량을 오로지 춤으로 승부하는 공연은, 내내 눈을 뗄 수가 없다.웃음 코드도 전에도 봤지만, 다시 봐도 역시 익살스럽다.
내용이 해피엔딩이기도 하지만 공연 말미에 어울려서 웃는 모습이 2시간 가까이 신나게 춤을 추고 난 뒤에 배우들의 후련함, 통쾌함으로 가득찼다. 전에 2기 격인 춤팀의 공연에서 느낀 바이다. 원조격인 사팀의 공연은, 확실히 노련했다. 공연 레퍼토리도 이전에 비해 휠씬 다채로왔고, 난이도가 높은 공연을 펼치면서도 여유가 돋보였다. 그들에게는 매일매일 같은 일상이겠지만 공연을 보는 한중일 관객에게는 새롭고 색다른 체험이다. 여전히 혼신을 불사르듯 공연을 펼치는 모습이 아릅답다. 어깨에 붙힌 의료용밴드가 그들의 각오를 보여주는듯 했다.*
사진출처 - 사랑한다면 춤을 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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