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극

[햄릿 월드버전The New Musical HAMLET World Version] 바꾸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구보씨 2008. 8. 21. 16:22

2008년 초연 이후 3년 만에 뮤지컬 '햄릿 월드버전'이 다시 공연 중입니다. 리뷰는 초연 당시 쓴 리뷰입니다. 그때 용산에 있는 숙명아트센터에 가보고, 이후로 한 번도 가보지 못했네요. 흠, 공연을 본 뒤, 대학 졸업하고 오랜 만에 만난 여자 후배와 술을 진탕 마신 기억이 납니다. 당시 헤어진 남자친구와 문제를 두고 눈물을 보였던 후배는 올해 좋은 사람만나 결혼해서 잘 살고 있습니다. 


공연보다 순진하기만 했던 후배가 어느새, 세상에서 냉정한 사회인이 된 모습이 살짝 놀랍기도 했습니다. 그때 김승대 배우를 처음 봤지요. (부러 고른 건 아닌데, 아래 포스터에는 빠졌네요.) 당시 신인으로 이지훈, 박건형, 임태경, 윤형렬 등 5명 햄릿 중에 명성은 덜했지만 햄릿과 잘 어울렸습니다. 공연을 막 보기 시작한 그때만 해도 5명 햄릿마다 다 보러온다는 얘기를 듣고.  "대단하다아!"하고 질겁을 했는데요. 요 사이, 뮤지컬 배우에 대한 팬덤 현상을 아는터라 그러려니 합니다. 주인공 4명이 교체 등장하는 뮤지컬을 20번 본 관객을 알기도 하구요.

 

 

연극 무대 뒤 분장실을 배경으로 펼치는 2인극 <라이프 인 더 씨어터(Life In The Theater)>를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온다. “죽느냐, 사는냐 그것이 문제로다… 지금도 햄릿의 대사를 외워. 그 역할을 한 번도 해보지 못했지만 지금이라도 하라면 할 수 있을 것 같거든. 햄릿은 모든 배우들의 꿈이지.”


무명 배우로 스러져가는 노배우의 꿈, 치매에 걸려 정신이 가물가물하면서도 잊지 못하는 대사…. 결국 인간 내면 갈등의 표본이랄까, 이미 수많은 배우들이 햄릿을 올렸으나, 그래서 더욱 부담스러우면서도 또 재해석이 가능한 햄릿. 무대 위가 실제 삶터인 배우들이 연극을 하느냐 떼려치우느냐로 또 얼마나 많이 고민을 했을까 싶어 햄릿은 배우들 자신의 얘기이겠다 싶기도 했다. ‘햄릿’을 오래 전에 연극 무대로 봤으나 밋밋하다는 생각을 했던 터라, 괜히 노배우의 먹먹한 심정이었다.


<뮤지컬 햄릿 월드 버전(The New Musical HAMLET -World Version)>은 월드버전이라는 이름이 붙을 만큼 무대가 화려하다. 3면이 돌아가면서 보여주는 메인 세트는 극의 긴박함에 따라 그 속도를 달리하면서 마치 영화에서 현란한 카메라 워크를 보는 기분이다. 또 실감나는 오필리어의 투신 자살 장면 등 그간 뮤지컬을 많이 보지 못했지만 이처럼 세트를 통해 극의 긴장감을 불러오는 공연은 본 적이 없던 터라 공연 문화의 진화를 보는 듯 했다. 새삼 <클레오파트라>도 그렇고, 체코산 뮤지컬이 왜 대단한가를 알 수 있었다.

 

 

 

객석을 지하로 통하는 계단(오필리어의 죽음)으로 활용하거나, 2막 시작 때 관객과의 호흡하는 장면 등은 작은 소극장 공연의 소소한 재미를 주기도 했다. 화려한 무대나 의상, 소품, 배우들의 노래, 앙상블의 역동적인 춤 등 체코, 미국, 한국이 만난 이 월드버전 햄릿이 작년 여름 8월부터 올해 겨울 2월까지 장기 공연이 가능한 이유와 전 세계에 전용관 버전 오픈이 가능한 이유를 충분히 설명했다.

  

다만 메인 포스터의 상반신 식스팩을 드러낸 햄릿을 볼 때부터 어느 정도 짐작은 했지만 햄릿이 남성미 차고 넘쳤다. 5명의 햄릿 중 가장 “감성적이고 호소력 짙은 햄릿”이라는 김승대의 무대였는데도 햄릿 특유의 고뇌나 갈등이 잘 살지 않았다. 고전을 똑같이 답습해야 한다거나, 혹은 극의 새로운 해석에 대한 거부감은 아니다. 다만 볼거리에 비중을 높인 만큼 극 내용이 간결하게 처리되다보니 그만 감정몰입에 부족한 부분을 드러냈다. 남성미가 넘치고 역동적인 햄릿은 이후 그의 고민과 갈등이 불러온 수많은 사건 전개의 기틀 전반이 흔들리는 게 아닌가 싶었다. 

 

미치도록 고민하고 갈등하고 괴로워하면서 존재 물음을 던지는 햄릿, 그러니까 서두에서 언급한 노배우가 기억하는 햄릿, 배우들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햄릿은 어쩌면 탑 조명 아래 모노드라마에서나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고 진화하고 있는 중인 햄릿-월드버전이 곧 그런 난제도 해결하리라 본다. 햄릿 역에 상관없이 거투르트 서지영의 놀라운 음색을 들을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만족스러운 공연임에는 분명하다.*

 


사진 출처 - 뮤지컬 햄릿 공식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