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글동글 귀엽고 앳된 박시연 배우가 할머니 역할을 맡았을 때, 젊은 극단이 새롭게 출발하는구나 느꼈다. 할머니 역할을 나이 든 배우가 할 이유는 없지만 아무리 봐도 배우들 중 가장 어려 보인다. 연출 의도일까 싶지만 극 중 과거 회상 장면이 삽입되면서 새로 분장이나 의상을 바꾸지 않아도 나이를 상쇄하는 효과를 보인다. 아무려나 극단 연극자판기는 하필 창단 공연으로 끝, 종말,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장례식 풍경을 담은 '초상, 화'를 골랐을까. 막이 오르면 모자 두 사람이 껴안고 슬퍼하면서 시작해, 작품 내내 투닥투닥 크고 작은 갈등을 보였던 모자와 두 삼촌이 함께 미국에서 방금 도착한 올케를 아무 대사 없이 반겨 안아주며 끝을 맺는다. 짐작하자면 생기고 없어지기 부지기수인 극단이지만, 작품처럼 시작은 미약하고, 끌어가는 과정은 힘들고 버거워도 모이면 다 함께 위로와 추억을 되새기는 곳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아닐까.
이러나저러나 6일에 시작한 초상은 12일을 마지막으로 무사히 끝났다. 실제로 코로나 변이가 지독하게 발현했던 올해 3월만 해도 화장장을 예약하지 못해 삼일장을 못해 육일장까지 늘려 잡는 경우가 허다했다. 죽은 것도 억울한데 화장까지 미뤄가며 장례를 치른 가족들 심정은 어땠을까. 더욱이 비대면 정책을 강하게 쓸 당시라 조문도 하기도 껄끄러웠다. 작품 '초상, 화' 속 가족들은 아버지, 남편, 형, 오빠의 죽음을 마무리하며 어떤 심정일까. 공장 노동자로 사고사를 당했으나 합의를 요구하는 사측에 의해 결국 자살로 처리가 될 처지에 놓였다.
미국에 사는 올케, 고모, 누이가 용케 발인 전에 도착하면서 가족은 사측과 합의나 결론을 내기 전에 막이 내린다. 사측과 실랑이를 벌이는 과정을 지켜본 관객 입장에서 가족이 어떤 결정을 했어도 이해할 수 있울 것이다. 그 과정에서 불합리한 사회 구조나 회사의 몰염치를 따져 물을 수 있을 것이나 거기까지이다. 이 연극은 정작 갈등의 원인이 된 사고사를 두고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다만 신문에서 봤을 법한 서민이 몰락하는 과정을 복기하면서 아프고 쓰리지만 동시에 행복하기도 했던 어린 시절 고향 추억을 상기한다. 그 과정은 역시 공장 사고로 각각 손가락과 다리에 장애를 입은 삼촌 두 사람의 것이지, 정작 아버지의 무능과 빚에 사는 내내 고생한 형수, 어미니와 조카, 아들에게 이입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가난한 이들 사이 서로 원망과 후회만 남아 흔히 그렇듯 마음이 멀어져 보지 않고, 시누이, 올케처럼 현실에서도 멀리 떨어져 생전 볼 일이 없이 사는 가족이 현실에서 대부분이고 그렇게 인연을 끊고 살기도 한다. 가족의 화합이 따뜻한 결말이기는 하지만 화두로 건드린 산업재해를 풀지 않고, 감상적으로 결론을 내는 건 장단점이 있을 것이고, 관객이 어떻게 판단을 하느냐에 달렸을 수도 있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듯 가장 큰 희생자인 어머니가 여전히 모든 짐을 받아내고 무엇하나 바뀐 상황이 없이 끝나는 부분도 걸리는 부분이다.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는 법이다. 장례 비용을 정산하면서 어머니는 식비 청구서를 보면 덤터기를 쓴 건 아닌지 한 소리하는 대목이 나온다. 갑작스러운 사고사로 경황없이 치르는 장례는 늘 이런저런 우여곡절이 있기 마련이다. 이른바, 프로무대에서 첫 작품을 올리는 극단 연극자판기의 상황이나 심정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우선 잘 갈무리했으니 다행이고,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소극장이 제법 관객으로 꽉 찼다. 시작인 만큼 극 중 여러 화두는 앞으로 잘 풀어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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