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왜 두 번 심청이는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
기간 : 2015/01/29 ~ 2015/02/08
장소 :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출연 : 송영광, 김준범, 이승배, 윤민영, 정지영, 이승열, 임민지, 유재연, 천승목, 조원준, 배건일, 이준영, 김봉현, 박지훈, 안종민, 김유미, 이신호, 조유진, 박화영, 이병용, 김명준
작/연출 : 오태석
주최 : 한국공연예술센터, 극단 목화
주관 : 극단 목화
귀경길 일가족이 자살을 했단다. 뭐, 다른 이유가 있으면 좋으련만 결국 빚 감당이 안 되서 그렇다는, 허구한 날 그 레퍼토리이다. 설특집 영화도 레퍼토리가 바뀌는데 먹고사는 문제로 벌어지는 자살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다. 얼래? 근데 이건 예고편인가 보다. 곧바로 ‘구직 단념자 50만 명 육박’한다는 기사가 떴다. 모르는 일도 아니나 앞으로 엇비슷한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질 수 있단 게다.
더해 그 위로 역시 통계청에서 푼 ‘국민 40% "결혼 안 해도 괜찮다"…인식 급변’이라는 헤드라인이 달렸다. 내 한 몸 건사도 못하는데 무슨 애새끼를 낳고 사냔 말이다. 그래봐야 고작 할부 안 끝난 차 안에 번갯탄이나 피우는 꼴이면 말이다. (그래서 불안한가, 하면 아니다. 통계라는 게 또 장난질과도 비슷해서 기준을 어디다 두느냐에 다르다. 현실이 그리 바뀌지 않을 테지만 곧 희망적인 통계를 준비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일종의 플롯 같은 것이다. 그러니 일희일비할 필요도 없고, 호들갑 떨 이유도 없다.) 일가족 사건과 통계청 자료는 우연인 듯 우연 아닌 '썸' 같지 않은가. 그리고 이 기사 어디서 본 듯도 하지 않은가. 뫼비우스의 띠인가.
2015년, ‘왜 두 번 심청이는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가 무대에 올랐다. 89년 초연 이후 주구장창 올라온다. 작년 한국공연예술제에서 선보였을 때 매진 사례를 빚더니만 올 초에 다시 무대에 올랐는데, 그 사이 제목을 슬쩍 바꿨다. ‘심청이는 왜 두 번 인당수에 몸을 던졌는가’에서 ‘왜 두 번’이 앞으로 나왔다.
딱 요즘 언론이라고 할지, 찌라시라고 할지 암튼 제목으로 시선을 끌려고 장난치는 인터넷판 기사 가 하는 장난질과 비슷하다. 조폭들 사이 일본도를 들고 벌인 ‘1986년 역삼동 서진회관 살인사건’을 듣고 오태석은 충격을 받는다. 당시 현장에 출동경찰과 언론사 기자들의 입을 빌자면 사건현장은 피살자들의 피가 강물처럼 고여 있었다 하여 지옥이라고들 했다. 이 사건이 심청이의 모티브다.
그러한데, 오태석은 올해 연극을 올리면서 바뀌지 않는 세상이라 반복이 반복을 부르는 요지경 같은 세상이라고 했다. 오공 육공 군사정권과 민주화가 꽃 핀 21세기가 비스무리하다? 그 당시에는 인터넷은커녕 휴대폰도 없고, 삐삐도 없고, 비데도 없고, 극중 등장하는 걸그룹 EXID가 태어나기 한 참 전, 옛날 옛적의 일이다. 방에서 연탄가스를 마시고 죽고 하던 시절이니 지금 애들이 알 길이 없을 시절 일이다.
고릿적 얘기가 애초 몸을 팔기로는 시초인 심청이 얘기를 빗대 풀어냈는데, 그 얘기가 참으로 어지간하다. 가난한 가정을 위해, 무능한 아비를 대신해, 축 늘어진 젖가슴을 거들떠보지도 않을 어미를 대신해 못생겨도 푸릇푸릇한 자매가 나란히 손잡고 사창가로 팔려가는 일은 장하면서도 말도 못하고 애달픈 일이라, 소식 없는 누이를 두고 동네 사람들이 용왕이니, 왕비니 하는 심청 우화가 나왔을 것이다.
오태석이 20세기 식으로 심청이 설화를 꺼내들면서, 우겨넣은 놈이 주인공 정세명인데, 이 놈의 팔자가 심청이들 보다 더 기구하니, 조폭들 등쌀에 아킬레스건이 썰리고, 화염병을 만들다가 얼굴이 일그러지고, 인간 타깃으로 연신 얻어터지다가 새우잡이 배를 탄다. 그리고 관객들은 소극장에서 정세명이 당하는 고통을 물방웅이 튀는 수준에서 공유를 한다.
20세기 아날로그 방식인데, 관객들은 객석으로 튀는 물을 피해 놀이기구를 탄 듯 좋아하기도 하고, 인상을 찌푸리기도 하고 그러하다. 남이 얻어터지는 정도야 유투브를 검색하면 수 천 개요, IS가 사람 모가지를 썰어대는 리얼 영상이 올라오는 판이니 연극에서 요 정도 효과는 참 애교스럽다. 허나 진의는 일그러진 얼굴이나 몸통에서 살점이 튀고 피가 튀는 형국이라고 볼 수 있어 꽤 그로테스크하게 볼 수도 있다.
애초, 이 작품이 화제를 모은 데에는 극단 목화 특유의 연극풀이에 있다. 어줍지 않은 신파나 가식적이게도 사랑을 묘사하는 싸구려 불량식품 연기에 질린 관객이라면 속이 시원할 법도 하다. 깊이는 없고, 말초신경만 살짝살짝 건드리는 공연은 심해어 머리에 달린 발광체 같은 것이어서 조심해야 한다.
뭔지 모르게 웃을 수도 없고 울 수도 없고 당최 후다닥 빠르기도 하여 정신도 없는 이 작품을 어찌봐야 하는지 다소 난감하다. 허나 연극이 인생축소판이라 대충 나이 먹고 나면 얼추 그 얘기가 그 얘기다. 허면서도 본인이 겪지 않으면 두 번이 아니라 열 번 인당수에 빠져봐도 모를 일, 이들의 난장 같은 무대가 시원시원하면서도 되레 짠한 구석이 드는 건 나만의 착각일 수도 있겠다.
심청전 당시 딸자식을 팔아야 하는 부모 심정은 어땠을 것인가마는, 이웃끼리 부모 살리려는 효녀라고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하고, 위로를 했던 얘기가 살이 올라 용왕이 등장하고, 심청전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순전히 때려잡은 상상이다만, 조선시대 궁녀도 아니고 중전이 되기란 그 치열한 정치판을 이해하지 못한 순진한 백성들의 생각일 게다.
건조하게 풀자면, 중국에 데려가서 호강시켜주겠다고 꼬셨으나, 알고 보니 떼놈들에게 팔려 가랑이를 벌릴 신세라 차라리 황해에 몸을 던졌다는 게 더 들어맞는 얘기가 아닌가. 아니면 연극 속 남해 바다를 도는 이동식 사창가처럼 뱃놈들 여흥거리로 떠돌거나.
비극은 반복하면 더 이상 비극이 아니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지구가 뜨겁다고들 하는데, 다들 그러려니 하는 심정인 게다. 자살이 아니면 억울함을 호소할 데가 없는 노동자 등등은 더 이상 목숨을 던지지 않는다. 몸에 불 질러봐야 아무도 관심을 갖질 않으니 그럴 이유가 없다. 극중 바다에 몸을 던진 심청이들은 설화 속 심청이처럼 살아 되돌아올 길이 없으나, 어치피 목숨 부지하고 있어봐야 빚만 늘어난다.
요즘은 윤락녀가 아니라도 심청이들이 널리고 널렸다, 내가 사는 청량리를 기준으로 보면 예전에는 588번지 정육점 골목 만의 얘기였으나 이제는 청량리역 주변 백화점, 마트에 근무하는 비정규직 아줌마들의 사정이 구구절절 심청이 사정이다. 그래서 요즘 심청이는 바다에 몸을 던지는 대신 계산대에서 계산을 하거나 <카트>를 끌고 다닌다. 정세명이들 역시 청량리역 낡은 건물 고시원마다 널리고 널렸다. 그들은 언감생신 588 사창가는 얼씬도 못하고, 마트에서 라면과 소주를 사들고 야동으로 뜨거운 몸을 달랜다. 두 어 번 참으면 한 달을 고시원에서 지낼 수 있으니 당연하다.
자, 그러나 연극은 신문도 아니고, 교과서도 아니며, 보고서도 아니다. 대안 혹은 교훈은 더더욱 아니다. 배우는 특히 목화 배우들은 오늘 하루 신명나게 놀면 내일은 굶어도 그만인 광대(였으면 하는)들이다. 그래서 막판 정세명이 보여주는 오기 혹은 결기 혹은 광기나 심청이들이 몸을 던지는 와중에 던지는 가슴 찡한 멘트들은 유통기한이 지난 느낌이 든다.
'과거-현재(89년)-미래(2015년)'를 관통해 하나로 엮는 재주가 탁월하고, 박스로 만든 사창가는 라면신세나 그녀들 신세나 도긴개긴이라, 임시방편으로 지은 집은 물에 젖으면 무용지물이니 아슬아슬한 처지가 잘 드러나기도 한다. 허나 요즘은 종이박스를 놓고 할머니들끼리 싸움을 벌인다. 그나마 껍데기 마저도 절절하게 소화되는 시절이다. 벼룩의 간에 쓸개까지 삭삭 긁어모아야 하루지나 이틀까지 더 살 수 있는 세상이다.
극중 EXID의 히트곡 '위 아래'를 추는 장면은 극 중 어느 장면보다 야한 축에 속한다. 흔한 걸 그룹으로 스리슬쩍 사라질 뻔하다가 노래 한 곡으로 히트하기까지 실제 과정을 들어 보면, 심청이가 용왕 만나고 돌아오는 고되고 운이 좋은 여정과 진배 없다. 그 한 장면이 연극 한 편을 담았다. 뒤샹의 변기, 자본주의에 대한 조롱으로 맞는 비유인가, 아닌 것도 같고 아리송하다만 가진 놈이 싸그리고 긁는 시절... 제대로 놀 줄 아는 극단을 만난 것도 다 은덕을 쌓은 덕이려니.
사진출처 - 극단 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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