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냄새풍기기 아무도 모른다
기간 : 2014/07/05 ~ 2014/07/27
장소 : 극장 동국
출연 : 박태경, 배소희, 최희정, 이현화, 황무영, 손명구
희곡 : 염지영
연출 : 이재윤
주최/제작 : 극단 로가로세
연극 <냄새풍기기>를 검색하면서 무심코 ‘냄새지우기’라고 썼다. 관련 상품 79건이 떴다. 냄새는 지우는 게 당연하다는 무의식이 있듯이, 냄새는 지우는 게 당연하다고 인식하는 세상이다. 아무도 나를 주목하지 않지만 냄새의 근원인 나는 내내 사람들의 시선이 두렵다. 여름철에 셔츠를 이틀 입는 건 에티켓이 아니라는 생각이 영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어쩌면 시선의 정체는 불안한 듯 두리번거리거나, 홍조를 띠고 땀을 흘리는 불안한 사내에 대한 경계인 이유가 더 클 텐데 말이다.
‘냄새풍기기’ 맞게 검색을 하니 연극 정보 일색이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냄새란 풍겨서는 안 되고, 지워야 하는 암묵적인 처치곤란의 무엇이다. 굳이 향수의 발달사를 들지 않아도 사람 몸이 참 묘해서 쉬지 않고 악취를 풍긴다. 악취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땀, 침을 비롯한 배설물 처리에 다소 느긋했을지도 모른다, 는 상상을 했다.
하지만 막 연애를 시작한 연인 사이, 땀이나 침에서 나는 냄새를 잘 느끼지 못하는 상황은 뭐란 말인가. 돌이켜보면 샤워를 하기 전 그녀와 이후 그녀가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인 데에는 겨드랑이와 음부에서 풍기는 냄새, 가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연극 <냄새풍기기>는 그 대상으로 노인을 삼았다. 보이지 않지만 존재한다는 점에 보면 어울리는 비유이다. 요즘은 지하철에서 흔히 보지만 번화가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생각해보면 외국인보다 드문 그들이다. 그들이라고 지칭하기에는 나나 너 역시 과정 중에 있으니 딱히 특정 대상으로 지목하기 힘들긴 하다.
연극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드문드문 안개처럼 스윽 지나가는 할머니 외에 등장인물 누구라도 냄새의 원인에서 그리 멀지 않다. 단순히 나이로 잉여 인력을 구분하지 않고, 통계 기준으로 보면 경마나 노리는 중년 백수, 취업 문턱에서 고배를 마신 청년, 별 볼일 없는 시간강사가 폐지를 줍는 할머니보다 나을 게 없다. 그들이 모인 곳은 낡은 연립주택, 벗어나지 못하고 발목이 잡힌 이들에게 냄새는 지워야할 당면과제지만, 주위에서 보면 그들 자체가 ‘지워야할 대상’인 냄새의 원인이다.
대기업 회장 전용 운전기사 출신의 50대 중반 쯤 택시기사 고만식은 할머니와 연립주택 주민들을 잇은 고리이다. 냄새를 지우는 데에 가장 열심히 동참하지만 할머니를 챙기는 일도 빼놓지 않는다. 그의 처신은 참 바람직해보이지만 냄새의 원인이 할머니이고 보면, 두 가지 행동은 역설을 불러일으킨다. 어쩌면 작품이 의도하지 않았을 수도 있으나, 시대가 낳은 아이러니는 작품이 현실과 정교하게 맞물리면서 시대비극을 잉태한다.
가난한 동네 연립주택, 그 안에서 벌어지는 짐작 가능한 인물들이 벌이는 일상은 익히 TV 다큐, 드라마, 영화, 연극에서 익숙하게 봐온 설정이다. 제작 환경이 열악한 소극장 사정 역시 감안을 하고 볼 일이다. 다만 현실에서 비일비재하게 벌어지는 일상이지만 다소 낯설다는 인상을 받았다면, 냄새를 없애기 위해 대책을 마련하는 주민들 관계가 작품처럼 끈끈하게, 혹은 지나친 간섭 혹은 친분을 보이는 경우가 극장 밖에서는 드문 탓이다.
‘홀몸노인 안타까운 죽음’(한라일보 2014.07.07) 노인의 쓸쓸한 죽음은 이제 큰 뉴스거리가 아니다. 7일 만에 발견한 이유는 이웃집까지 풍기는 시취이다. 겨울이었다면 노인의 죽음은 오랫동안 방치되었을 것이다. 아쉽지만 독거노인 문제는 쉽게 해결할 방법이 없다. 자발적이지 않은 소외감을 해소하지 않는 한 내 것(공간)을 지키려는 경계심이 더욱 발동한다. 고시원이 대표적인 공간이다.
그래서 이 작품이 할 수 있는 문제 제기는 한계가 있다. 한계를 넘어서는 무엇을 기대했으나 새로운 제시가 가능할까. 그렇지도 않고 그러기도 쉽지 않다. 인물들이 전형적이라는 점도 아쉽다. 존재가 희미해질수록 냄새는 더욱 도드라지는가. 글쎄, 할머니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어땠을까, 싶기는 하다. 죽음, 냄새, 독거 등 다른 키워드는 부러 극장을 찾지 않아도 들리고 보이는 정보들이니 말이다.*
사진출처 - 정컬처(www.jungcultur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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