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극

[어린왕자Le Petit Prince] 가족오페라, B612에서 장미꽃을 피웠듯이 이제부터

구보씨 2014. 4. 27. 16:40

제목 : SAC CUBE 2014 - 어린왕자Le Petit Prince

기간 : 2014/04/27 ~ 2014/05/03

장소 :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출연 : 김우주, 안갑성, 허희경, 이재훈, 김병오, 김승현, 김승윤, 김정미, 도희선, CBS소년소녀합창단

원작 :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작곡 : 레이첼 포트만

대본 : 니콜라스 라이트

Original Production : 프란체스카 잠벨로

무대 의상 디자이너 : 마리아 비욘슨

지휘 : 이병욱

연주 : 프라임필하모닉오케스트라

연출 : 변정주

음악코치 : 정호정

기획 및 제작 : 예술의전당



제작극장, 공연 붐을 불러오다

극장 자체로 명성을 갖춘 LG아트센터와 새로운 신인 발굴 지원으로 공연계에 새 피를 불어넣는 두산아트센터를 비롯해, 명동예술극장 개관, 국립극단 분리 독립 이후 한국에서 제작극장 열기가 한창이다. 하지만 대관 위주 사업으로 빛이 바랜 국립극장이 양질의 레퍼토리를 갖추기 시작하면서 공연 전반에 훈풍이 불고 있다. 공연 제작에 소홀했다는 평가를 받았던 예술의전당도 올해 ‘SAC CUBE 2014’를 런칭하면서 기획 제작에 나섰다. 프로그램에는 공동 주최도 눈에 들어오지만 기획 제작 공연을 양질의 공연과 수준을 맞춰 진행하겠다는 의도로 이해할 수 있다.

 

극장 제작 방식이 연극 쪽에서 한국 공연 역사를 이끌었던 극단 문화를 해체한다는 비판이 있지만 제작비나 흥행 걱정 없이 작품성 높은 작품을 올릴 수 있다는 부분에서 분명 수준을 한 단계 올릴 수 있는 과도기임에는 분명하다. 또한 연극, 뮤지컬 외에 대중의 시선을 받지 못했던 무용, 오페라, 창극 등 다양한 장르가 고루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라는 점에서는 필요한 정책이고, 방식이다. 

 

관객 입장에서도 극장 자존심을 걸고 올라오는 공연이 반가울 수밖에 없다. 외국 사례에는 문외한이라 비교할 수는 없지만 앞으로 자생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인가, 가 장기적인 고민이 필요하지만 공연문화가 활발하게 활동하는 점은 분명하다. 물론 장르 연계성이 깊은 민간 기업의 뮤지컬 활황이 어느 정도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보고 저기서 본 듯한

그러니 극장마다 고민이 생긴다. 전속 연출, 전속 배우가 없으니 극장 별로 작품 변별점이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섭외가 치열한 연극은 검증을 받은 중견연출가들, 작가, 무대연출 등 인력 제한이 있어 시즌 전체의 특정 주제 혹은 ‘(외국의) 누가 쓴 작품인가’정도가 아니면 구분이 없는 편이다. 신인 발굴 지원(두산아트센터) 초연 기획(남산예술센터)이 아니면 검증 받은 인물을 쓰기 마련이다. 허나 특정 주제로 시즌을 이끌어 성공한 경우가 드물고,-두산아트센터가 뚝심 있게 진행하는 인문극장‘불신시대’가 그래서 주목을 받는다-외국의 좋은 작품 혹은 희곡 작가의 작품을 들여온 경우 영화나 뮤지컬과 달리 인지도 등 기대만큼 효과를 내지 못한다.

 

연극 3요소 외에 기술 발전에 따라 무대, 음악, 음향. 미술 등 작품의 완성도를 좌우하는 요소가 늘어난 이상 외국에서의 완성도나 흥행 성공이 번안극으로 한국에서 같은 의미를 갖지 못한다. 옷 한 벌, 소품 하나까지 꼼꼼하게 따지는 라이선스 뮤지컬의 비싼 비용을 지불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예술의전당, 다른 레퍼토리

그래서 국립극장 ‘국립레퍼토리시즌’의 창극이나, 예술의 전당 ‘SAC CUBE 2014’의 오페라 기획은 극장 제작 기획으로 시선을 끈다. 예술의전당은 국내 오페라 시장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곳이다. 세종문화회관과 더불어 마이크를 사용하지 않는 오페라의 특성 상 수준 높은 시설을 갖추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나온 작품이 가족오페라를 표방한 <어린왕자>를 기획했다. 원작 소설이 인지도나 호감도가 높고, 미국에서 성공했으며, 한국 관객을 겨냥해 유명 연극연출가를 섭외했으니 라이선스 뮤지컬의 성공 사례와 유사해 실패 가능성을 줄였다. 하지만 팬층 규모가 달라서 소수인 오페라에다 아이들을 겨냥한 오페라라니! 어린이날 시즌 이벤트라 시기는 적절하지만 모험에 가까운 기획이다. 하지만 그만큼 SAC CUBE에 대한 의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간 아동 뮤지컬은 종종 있었지만, 아동용 오페라, 더욱이 자막을 활용한 영어 오페라는 내가 아는 한 사례가 없다. 흥행을 장담하기 힘든 상황에서 오페라 전문 기획사는 엄두를 내기 힘들다. 그래서 이모저모로 새로운 시도인 아동 대상 오페라 제작은 자체로 꽤 흥미롭고 의미 있는 시도이다.

 


George Hixson, Houston Grand Opera


새로운 작품, 신선한 경험

국내 제작을 표방한 극장 가운데 시설, 규모 등 오페라를 기획할 수 있는 곳이 예술의전당을 비롯해 한 손에 꼽을 정도이니 SAC CUBE의 다른 기획과 달리 확실히 변별점을 찍었다. <어린왕자>가 오페라극장에 올릴 만큼 규모가 큰 작품이 아니고, 소규모 오페라지만 새로 개관한 CJ 토월극장이 뮤지컬 극장을 표방한 곳이라 라이브 연주가 가능한 공간이 있어 좋은 조건이다.

 

토월극장이 개관 이후 연극, 뮤지컬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중극장 규모의 작품을 소화하고 있으나 용도가 다소 모호했던 만큼 장르 별 레퍼토리를 늘릴 가능성을 타진하는 의미가 있다. 예술의전당이 오페라 팬들에게 신뢰가 높은 이상 30~40대 젊은 (학부모) 관객층 및 미래세대의 관객층을 확보한다는 차원에서도 나쁘지 않은 시도이다. 아이들과 같이 즐길 수 있는 공연문화를 원하는 젊은 부모들에게 예술의전당이 가진 수준 높은 고급스러운 이미지는 꽤 구미가 당기는 조건이다. 작품 수준과 적절한 가격대를 유지한다면 새로운 틈새시장을 엿볼 수도 있다.



 George Hixson, Houston Grand Opera


오페라 어린왕자

문제는 작품의 완성도와 관객의 반응이다. 어린왕자를 어떻게 무대로 옮겼을지, 넘버는 어떨지도 궁금하고, 관객의 반응 또한 꽤 궁금했던 부분이다. 세월호 참사로 무거운 애도 분위기가 제작사 입장에서 난제이기도 하여 객석을 얼마나 채울 수 있을지도 관심이 갔다. 평일 저녁 7시 30분 공연인데, 예술의전당의 접근성이 좋지 않아 저녁 공연에 아이를 대동하고 나서기가 힘들기도 하다.

 

보통 오페라는 외국 유명 성악가를 주연으로 내세워 홍보를 하고, 국내 성악가와 번갈아 공연을 하는 식이다. 어린왕자 역에 3번의 오디션을 거쳐 소프라노 하나린과 초등학생 보이 소프라노 김우주를 발탁했다고 한다. 남/여, 성인/어린이, 연기, 실력 등 전혀 다른 장점을 가진 2명을 더블캐스팅이라, 자체로 흥미롭지만 아무래도 오페라를 소화할, 게다가 영어 대사를 소화할 어린 연기자를 찾기 힘든 이유라고 봤다.

 

쉬는 시간을 제외하면 100분 공연에, 등장하는 장면이 생각보다 많지 않아 단독 주연으로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성인 연기자의 성량이나 연주에 어쩔 수 없이 노래가 묻혀 무리할 여지가 많았다. 일교차가 큰 환절기 영향이 있어 그런지 연기자들 컨디션이 좋은 편은 아니었다. 앞서 CJ토월극장에서 <당통의 죽음>을 봤을 때, 무대를 세트 없이 구석구석 잘 활용했던 기억이 있어 좁혀 놓은 무대가 답답했지만 실물에 가까운 비행기 세트, 와이어 장비를 차고 공중을 날아다니는 장면 등 아기자기하면서 짜임새 있게 꾸민 무대는 아이들이 좋아할 만했다.

 

원작 <어린왕자>가 어른을 위한 동화이기도 하지만, 연기, 무대, 내용, 구성 등 여러모로 묵직한 전통 오페라에 익숙한 관객층을 흡수할 만한 작품은 아니다. 쉬는 시간이 끝난 후 뒷자리 어른 몇몇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끝날 때까지 쉬운 영어 대사를 따라하고, 이야기에 몰입하는 아이들의 모습이라니, 내가 볼 때, 보기 좋았다. 예상보다 떠들썩하지도 않았고, 어른도 무대와 스크린을 따라가기 쉽지 않은데, 사각에 있는 아이들이 영어로 치는 드라마를 그만큼 집중한다는 자체로 흥미로웠다.



 

공연이 끝난 뒤, 이제부터

SAC CUBE 기획은 아니지만 작년 11월 ‘토월연극시리즈’로 연출가 가보 톰바를 비롯해 해외제작팀을 초청해서 국내 연기자들과 함께 작품을 만든 <당통의 죽음> ([당통의 죽음_게오르크 뷔히너 탄생 200주년 기념작] 새 술을 담은 새 부대로 토월 http://blog.daum.net/gruru/2017) 역시 일정 조율, 제작비 등 쉬운 작업이 아니었고, 요즈음 제작극장을 통틀어 드문 기획이기도 했다. 오페라 <어린왕자>는 어른의 시선이나 흥행 성적 등 비평이나 수치로만 판단해서는 안 된다. 처음부터 목표를 어디에 두었는지, 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 씨앗을 뿌린 무대이다. 시즌 이벤트 정도의 일회성 기획에 그칠지는 내년도 SAC CUBE를 봐야 알 일이다.

 

극장들 사이 프로그램 변별력이 말처럼 쉬운 건 아니다. 올해 SAC CUBE를 보면 작년에도 했던 연극열전 공동 기획이 들어 있는데, <어린왕자>를 비롯해 다른 연극 제작 기획과 비교해 물음표가 떠오른다. (연극열전은 기획 자체로 브랜드가 된 유일무이한 공연 브랜드로, 공연장이 어디인지는 작품 선택 기준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는다. 그간 작품 리스트를 보면 어디든 늘 좋은 극장을 선택하기도 했다.) 관객으로 내가 느낀 <어린왕자>에 대한 만족도를 떠나 오페라라는 장르에 대한 도전 자체로 중요한 기획이고, 앞으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한 번 시도에 그친다면 정말 이도저도 아닐 수 있다.*




사진출처 - 예술의전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