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연출가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해석한 창극 수궁가입니다. 국립극장이 그간 창극 형식에 연연했던 무거운 이미지를 벗고, 야심차게 출발한 셈인데요. 그 동안 단체 내홍도 있었고, 두루 어려움이 많았지만 앞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무대극으로 기대해볼 만합니다. 요즘 한창 세계국립극장페스티벌 기간인데요. 그 못지 않게 레퍼토리 공연을 올리고 있습니다. 대관이 아닌 기획 공연으로 정체성을 찾으려는 노력이지요. 좋은 작품들이 많으니 놓치지 마시길 바랍니다. 많이 부족합니다만, 국립극장 블러그 엔톡에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번 기회에 국악을 좀 더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2012.0919]
국립창극단 <수궁가(Mr. Rabbit and the Dragon King)> 말미에 컴컴한 배경에 손 그림으로 밑으림만 그린 달이 테두리만 두고 오려낸듯 부욱 찢어지면서 환하다. 옆에 있는 해와 구분하려다보니 보름달이 아니라 여윈 초승달이지만, 아무려나 토끼가 올라가려고 사다리를
타고 낑낑대는 대목이 나온다. 올라갔는지 모르겠으나 "바람도 없고 티끌 먼지, 화학연기도 없는" 이상향을 찾아 용궁에 갔다가 혼꾸멍이 난 토끼가 기어코 한가로이 방아를 찧고 있을지 모르겠다.
아무튼 토끼가 산다는 달과 지구가 밀고 당기는 힘으로 강물과 바닷물이 들락날락하는 하구는 어디고 저잣거리 오일장처럼 복작복작 생명으로 가득가득하다. 미관말직 자라가 출세의 꿈에 부풀어 토끼를 잡기 위해 밀물(밀고)을 타고 육지로 올라와 힘차게 첫 발을 디디고 선 곳이 그곳일 것이며, 토끼에게 국가 차원의 망신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고 허탈하게 썰물(당기고) 따라 엉금엉금 발길을 돌렸을 장소가 또 그 자리일 게다.
구한말, 서민들이 보자니 토끼가 자라와 아웅다웅 밀고 당기고 속고 속이다가 지배계층을 통쾌하게 속여 넘기는 이야기가 여간 재미난 게 아니어서, 썰물로 드러난 갯벌이 생명으로 바글바글 들끓듯 소리꾼이 판소리 수궁가를 할라치면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왔을 게다. 조금씩 다른 결말로 알려진 경우만 다섯 가지라니, 지역과 시대와 향유 계층에 따라 토끼와 자라의 입장에서 달리 해석한 수궁가의 인기를 짐작해봄직하다. 구비문학의 특성이기도 한데, 요즘 추세로 보면 누구나 참여해 완성하는 위키피디아wikipedia 백과사전에 얼추 비슷한 셈이다.
초등학교 과학 교재도 아닌데 불쑥 조석간만의 차를 운운한 속내는, 무대에서 먼 객석 뒤편에 앉아서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 우르르 모인 남녀노소 다양한 관객들을 보니 번뜩 떠오른 풍경인 동시에, 독일 연출가 아힘 프라이어와 무대 디자이너 페트라 바이거트가 참여한 <수궁가>가 ‘국립창극단 세계거장시리즈’ 첫 번째 작품답게 “창극의 세계화와 현대화”에 이바지하기 위해 하구가 생명을 불러모으듯 물고를 트는 계기가 될지, 아니면 실험에 머물지 궁금하였기 때문이다.
수궁가에서 이름난 소리 대목은 용왕탄식(진양-계면조), 약성가(藥性歌, 자진모리-우조), 토끼화상(중중모리-계면조 또는 평조), 고고천변(皐皐天邊, 중중모리-평조 또는 계면조), 토끼와 자라(중중모리-계면조), 토끼신세(자진모리-계면조), 토끼기변(중모리-계면조), 가자가자(진양-우조), 백매주를 바삐 지나(중중모리-평조), 토끼욕설(중모리-추천목)을 들 수 있다.
[백과사전 '수궁가' 소개 중에서]
판소리를 잘 모르는 까막귀여서는 계면조니, 우조니 하는 설명을 읽어봐도 계면쩍고 울고 싶은 맘만 굴뚝이라, 한글 영어 동시 자막이 반갑다. 부끄럽지만 한글 자막을 봐도 뭔 말인지 몰라, 엉금엉금 영어자막을 보고는 짐작하기도 하였다. 올린 작품을 한국인이 듣고 봐도 진국을 알기 쉽지 않은데, 소리꾼들이 정서가 생판 다른 낯선 서양 연출가와 재창작하는 과정이 어찌 만만했겠나 싶다. 프로그램에서 완곡하게 설명하는 바, 족히 잡아놓고도 엉뚱한 소리나 해대는 용왕과 대감들을 보고 “토끼 배 갈라 간 없으면 내 배도 가르겠소!” 목쉬게 외쳐대는 별주부의 심정처럼 갑갑하고 답답했을 게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보중탕(補中湯)을 잡수시오. 숙지황 주호 닷돈이요 산사육(山査肉) 천문동(天門冬) 세신(細辛)을 거토(去土) 육종용택사(肉종용택사 앵속화 각 한돈 감초 칠푼 수일승 전반 연용(水一升煎半連用) 이십 여첩 쓰되 효무 동정(效無動靜)이라 설사가 급하오니 가감백출탕(加減白朮湯)을 잡수시오. 백출을 초구하야 서돈이요 사인을 초구(炒灸:뜸질)하야 두돈이요 백복령(白茯笭) 사향 오미자 해황 당귀 천궁, 강활 독활(獨活) 각 한돈 감초 칠푼 수일승전반 영욘 사십여 첩을 쓰되 효무동정이라 신롱씨 백초약을 갖가지로다…”
이내 용궁에서 도사가 용왕 진맥을 보면서 술술 수리술술 자진모리로 풀어내는 기똥찬 솜씨에 그래도 교육방송 이비에스에서 채널 돌리다가 들었는가 어쩌쩐가 귀가 트이면서 명치가 울렁울렁 엉덩이가 들썩들썩 신명이 동한다.
한자 어투에 전문의학용어라 잘 못 알아먹겠으나 판소리가 상민 양반을 아울러 사랑을 담뿍 받은 장르라 그러하려니 하면서 온갖 몸에 좋은 약재로구나, 고개를 주억거리면 된다만, 알도 못하는 영어 자막을 보니 대충 ‘Various herbs’라는 식으로 번역이 되는 걸 보니 기운이 쑥 빠진다. 이제 세계국립극장페스티벌에서 만날 외국 작품을 보면서도 마찬가지겠지만 어느 정도 공용화를 이룬 연극이나 무용과 달리 장르 특성이 색다른 창극의 진면모를, 외국 관객들이 간질간질 몸이 들썩이는 요런 정서를 얼마나 받아들였을까 말이다.
지난 6월에 열린 ‘더 뮤지컬 어워즈’나 8월 말까지 3년 연속 재공연을 올린 <잭 더 리퍼> 등 뮤지컬 극장으로 해오름극장을 찾아온 관객의 발길이 창극으로는 좀처럼 이어지지 않았다. 대형 뮤지컬극장이 작년과 올해 우후죽순 들어설 만치 뮤지컬 시장이 커진 현실이니 어쩔 수 없다만, 국립극장에서 보면 주객전도라 느낄 법하다. 같은 대중문화이나 화려한 쇼에 중심을 둔 뮤지컬에 익숙한 관객들에게 창극은 아무래도 심심하다. 그래서 연출이 붓을 잡고 그린 배경, 가면, 의상 등 한국인이라면 ‘국립-’이나 ‘창극’에 얽매였을 틀에서 자유롭고 거침없는 진행은, 완성도나 어울림을 따지기 전에 관객에게 새롭게 다가온다. 작품에서도 현실로 작품을 끌고 와 구한말 인기몰이를 할 당시에는 생각도 못했을 공해를 언급하기도 하였거니와 24시간 꺼지지 않은 빛공해, 그 주범인 광고와 간판에 눈이 돌아가는 서울에서 단련된, 아니 장님처럼 자극에 무뎌진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 데에 성공했다.
아힘 연출이 추상표현주의 화가라니, 섣불리 ‘저 정도는 나도 그리겠다’는 얘기는 차마 못하겠으나, 무대 배경이며 인형극을 차용한 무대 연출은 동화책으로 교과서로 익히 내용을 빤히 알아, 제대로 본 적도 드물면서 재방송을 보듯 하는 한국 관객들의 흥미를 돋운다. 다만 이런 시도가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했는가, 하면 동의하기 힘든 구석이 있다. 그가 그린 묵선은 붓을 막 잡은 어린아이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다르지 않다’는 의미는 그의 실력을 판단할 깜냥도 안 되거니와 '미숙하다'는 판단이 아니다. 앞서 그 거칠 것 없는 자유로움이 좋다 했지만 전체적으로 그의 시도가 작품과 농익었다기보다는 낯선 타국의 낯선 장르에 대한 호기심어린 시도 수준에서 멀리 나아가지 못한 게 아닌가 싶다는 게다. 끊어지지 않고 연결되는 묵선이 언뜻 화선지에 그린 수묵산수화인 듯 한국의 그것일까 싶지만 뾰족뾰족하게 엉킨 모양새가 낯설고, 무대 뒤로 오르내리는 배경이며 탈, 의상 등 소품이며, 동선이 서양의 줄 인형극과 흡사하여 아직은 화학반응을 일으켰다기보다는 물리적 접목이라는 인상이 묻어난다.
페트병을 매달아 용왕의 병을 환경오염에 원인을 두면서 현실에 빗대 이야기 구조를 명확히 세웠으나, 환경오염이 문제라면 빌빌한 멸치도 아닌 용왕만 아프다는 설정도 거시기하고, 음양오행에 빗대 토끼간이 명약이라는 도사의 진단도 앞뒤가 안 맞는다. 게다가 배경으로 내내 걸려 있지만 이렇다할 언급이 없으니 의도가 막막하다. 다들 브레히트의 제자를 추켜세워 서사극이라고 하는데, 연출기법이나 의도도 그렇고 딱히 두드러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피카소, 앤디 워홀 등 서양화가들이 등장하여 잔재미를 더하지만, 외국 관객들 눈에 재미있게 보일지 모르나 의인극에 뜬금없이 등장하니 맥을 끊는다. 화가인 연출의 취향이 반영된 정도로 이해했다.
푸치니의 3대 오페라로 꼽히는 <나비부인>의 여주인공 초초는 15살이다. 막상 오페라를 보면 15살은커녕 어머니뻘에 가녀린 극중 역할과 사뭇 분위기가 다른 살집 좋은 여배우가 연기를 한다. 그러나 초초가 수줍게 나이를 말할 때, 관객이 웃지 않는 이유는 오로지 육성으로만 대극장 3층 객석까지 울리는 그 풍성한 성량이 몸을 악기 삼아 나온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판소리를 하는 예인들은 그에 반해 몸이 반이나 될까 싶게 아담하고 작은 편인데, 그럼에도 3시간 넘도록 완창이 가능한 이유는 땅에 발을 단단히 딛고 그 기운을 받아 올리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인간이 낼 수 있는 최고의 경지라고, 잘 몰라도 그 정도는 아는 바, 아니리와 코러스로 이뤄지는 대목이라고 한들1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린 모습은 어색하다.
명창들이 주거니 받거니 어울리는 듯 또 겨루는 분창이 창극이 가진 궁극의 재미인데, 도창을 제외하고는 가면을 쓰고 등장하니 가면에 소리가 막혀, 마이크를 통해 스피커로 울리는 소리는 맛이 덜하기도 하다. 얼굴 전체를 가린 가면은 인종, 나이, 성별에 대한 편견을 눌러 쉬이 세계화에 지름길을 열어줄만 하지만 예인으로 명창의 장기를 같이 숨기고 만다. 무대 한쪽에 앉은 가야금은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역할이 흐릿하고, 반대편에 앉은 고수는 가면을 쓴 배우들의 입모양을 보지 못하기도 하거니와, 무대와 객석을 엄격하게 구분하는 서양식 연출에서 소리꾼과 관객을 잇는 역할이 무색하다. 상대적으로 소리에 능하지, 움직임은 덜한 소리꾼들을 데리고 재창작을 하는 식이니 아힘 프라이어 연출도 팔순 가까운 나이에 고민도 많았고 또 두루 적응하느라 노고가 눈에 선하다.
유치한 아집에서 든 생각인데, 인형극을 보는 듯한 구성은 의인극이자 풍자극으로 장점이 잘 산 대신에 아쉬움이 남다보니 판소리와 국악기 연주 외에 딱 잘라 아힘 연출의 취향이 과하다 싶게 반영된 게 아닌가 불뚝심이 솟는다. 아힘 연출이 유명 오페라 연출가라고 한들 ‘판소리 오페라’라고 스스로 정한다고 새로운 장르가 뚝딱! 나오는 게 아니라고 보면 ‘판소리’를 접목한 ‘오페라’로 그치는 게 아닌가, 우려가 남는다.
어깃장을 놓자는 건 아니다. 자칫 외국 순회공연이라도 할라치면 창극이나 판소리에 대한 혼동을 줄 수도 있다고 생각했으나, 국립극장이 앞으로 판소리 다섯 마당을 세계 유명 연출가들에게 고루 맡긴다고 하니 개성이 뚜렷한 다른 작품을 두고 접점을 찾을 수 있으리라 본다. 관객 입장에서는 앞으로 중국의 첸 카이거나 루마니아의 안드레이 서반이 올릴 작품은 <수궁가> 또 어떻게 다를지 기대가 크다.
재주 많은 이자람이 연극으로 봐도 만만치 않은 브레히트 희곡 <사천가>를 판소리로 엮은 작품이 국내외로 호응이 높다. 민간과 국립극장이 서로 할 수 있는 영역에서 다양한 시도를 하면 우리 소리가 상승효과를 내리라 본다. 2막에서 머리가 반질반질하니 무용수 안은미 씨가 옆 자리에 관객으로 와서는 흥겹게 추임새를 넣는다. 주변이 워낙 조용하니 하다 말았지만 괜히 묵묵하게 앉아 에티켓이랍시고 앉은 앉은 내가 웃긴 게다.
<수궁가>는 2013년 6월까지 기나긴 국립레퍼토리 시즌 첫 작품으로 기대와 더불어 화두를 던지면서 역할을 충분히 했다. 이어지는 국립무용단 <도미부인>, 국립국악관현악단 <新, 들림>은 2012세계국립극장 페스티벌과 시기가 겹친다. 일정 조율이 불가피한 점도 있겠지만, 국립극장 당면 과제로 우선 배정을 했다는 점에서 수준 높은 해외초청작과 견주어도 자신 있다는 의지로 읽겠다.
사진출처 - 국립극장 공식블러그_전문가 리뷰 선정작 http://blog.naver.com/ntok2010/701467776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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