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극 영화 <군도>, <명랑>이 1천만 관객을 향해 순항을 하고 있습니다. 연극 <운현궁에 노을지다>를 두 작품 가운데 비교하자면... 글쎄요. 연극이지만 스타리시한 편인데요. 내용도 그렇고 <역린>에 가깝다고 해야할까요. 드라마 <정도전>이 떠오르기도 하네요. 이 작품은 내용도 형식도 수작이지만 중견 배우들을 두루 볼 수 있어 좋았습니다. 연극 관객도 젊은층이 많다보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지만 좋은 중견 배우들을 만날 수 있는 작품이 많았으면 합니다. 물론 중견 배우들이라고 연기를 잘 하는 건 아니라는 걸 보여준 작품이 없지 않습니다. [2014.08.05]
제목 : 운현궁에 노을지다
기간 : 2014/04/04 ~ 2014/06/01
장소 : 알과핵 소극장
출연 : 김학재, 김용선, 박기산, 김동석, 조원희, 최경희, 이윤상, 유학승, 권동렬, 민준석, 정의갑, 유지수, 강성용, 전광진, 임솔지
작 : 김태수
연출 : 이상혁
주최 : 김태수레파토리, 극단 집현
주관 : 후플러스(Who+)
어찌어찌 요즈음 사극을 서너 편 봤다. 얼마 전까지 드라마 <정도전>이 꽤 호응을 얻더니 영화계에 <군도>, <명랑> 사극 두 편이 인기몰이에 바쁘다. 사극이라도 장르도 다르고 접근법도 달라 한 가지로 묶자면 애매모호한 구석이 없지 않다. 살짝 얘기하면 <군도>는 딱 마카로니웨스턴을 빗댄 작품으로 부담없이 보기 좋고, <명량>은 객관적 시선을 유지하지 못하면 영화 후반부에 눈물콧물 주르륵 주륵 흐르고, 객관적 시선을 어떻게든 유지하면 전문가들 미적지근한 별 평점이 이해가 갈듯도 한 작품이다.
사극을 재구성할 때 장점은 무엇보다 LTE시대가 절대 아니라는 데에 있다. 지금 같으면 전화를 했네마네 하는 실갱이 따위 클릭 몇 번이면 알 수 있지만 그때야 그랬는가. 오로지 퍼즐을 풀 듯 몇 가지 신뢰도 낮은 정보와 경험과 내공과 감과 촉으로 판세를 읽어야 했으니 손에 땀을 쥐게 된다. 보통 우리는 우위를 점한 쪽의 얘기를 혁명 혹은 공인 역사로 알고 있지만 토정비결 확률을 중시했던 시대였으니, 프로야구 유격수 혹은 포수 타율 정도만 꿰어 맞춰도 하늘이 내린 인물이 아니었을까 싶다.
요사이 술자리 논쟁만 벌어져도 연신 서로 외쳐대는 단어가 ‘팩트’와 ‘검색’이다. ‘내 말이 팩트야! 못 믿겼으면 검색해 봐’ 허나 우리는 넷(NET) 상 정보가 그닥 순도가 높지 않다는 걸 알아야 한다. 아무튼 과거 권력다툼이 치열했던 조선시대에도 정보 조작은 필수 요건이었다. 영화 <역린>을 보면 정조를 암살하기 위해 들인 공과 세월이 참 대단하기도 하지 않던가.
아무려나 알 수도 없고, 억측이 오가는 가운데 우리는 타협점을 발견한다. ‘팩션’ 분명 콩글리시지만 유효적절하다. 스마트폰이 나온 지가 언제인가, 친구끼리 별 일 아닌 걸 ‘검색’ 대신 검투를 벌이다 다치는 불상사가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 그런데 과거는 어떠했겠는가 말이다. 자, 그리하여 연극 <운현궁에 노을지다>는 아들과 며느리 혹은 남편과 시아버지 또는 아내와 아버지의 삼각구도에서 서로 바라본 시점이 빚는 갈등 드라마라고 봤다.
흥선대원군은 아들이 제 앞가림을 할 때까지 열강에 휘둘리는 나라를 온전히 지키려고 했고, 민비는 시아버지가 일방적으로 휘두르는 위임 권력을 원칙대로 남편에게 돌리고자 했으며, 고종은 사이 나쁜 아버지와 아내 사이를 중재하려고 했다. 거죽으로 나온 각자 입장을 들어보면 그럴싸하다. 하지만 아쉬운 건 당시 국제 정세를 읽을 줄 아는 세력이 없고, 좁은 시야에서 늑대를 쫓으려고 호랑이를 불러들인 꼴이 되고 말았다는 데에 있다. 조선의 아비, 조선의 군왕, 조선의 국모라 불렸으나 ‘조선’이 없어질 판국이니 수식어가 의미가 없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스케일에 비해 좁은 소극장 무대는 극중 상황과 엇비슷하다.
요즘 한반도를 두고 구한말을 떠올리는 학자들이 많다. 중국과 미국이 서로 양쪽에 끌어당기고, 일본은 결국 전쟁 가능한 국가가 되었다. 안으로는 내분이 끝이지 않고, 갈등의 골이 점차 깊어지고 있다. 국군 사이버사령부의 '인터넷 여론 조작‘이 사실로 드러나 박근혜 정부는 근간부터 다시 흔들리고 있는 판이다.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는 꼴이라 세월이 약이 될까 싶지만 ’세월호‘ 참사 상징하듯 세월이 흐른다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앞서 말했듯 ‘팩트’와 ‘검색’의 시대, 먹고살기 바쁘다보니 국제 정세나 판도를 객관적 시선에서 차분히 들여다보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뭘 알아야 호들갑을 떨지 않거나 쫄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외교는 잘 모르니 정치인들에게 무턱대고 맡겨두었다가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정치극, 특히 사극을 빗댄 풍자극은 영화 <왕의 남자>의 원작 연극 <이>가 그러하듯 지금 벌어지는 현실 얘기가 하고픈 게다. 뮤지컬 <명성황후>가 민비를 다른 시각에서 해석해 부각시켰다면 이 작품은 그 맞은편 흥선대원군이 중심이다. 두 달 대장정에 비해 흥선대원군의 이미지가 얼마나 바뀌었을지 모르겠다. 시대를 오판한 실패한 권력자로만 그려지지는 않아 환기하는 부분이 있다.
공연 기간 말미 즈음에 본 터라 배우들이 좀 지쳐 있을지 몰라도 호흡이 좋고, 자체로 소극장을 잘 활용해 완성도가 높다. 흥선대원군이 중심이라 보수적인 해석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자체로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고, 대부분 젊은 관객층이 역사에 관심이 없으니 좋은 불씨가 될 것이다. 중극장에서 재공연을 올리면 잘 어울릴 만한 작품이다.*
사진출처 - 극단 집현
'연극'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줄리어스 시저] 2014년 침몰한 봄, 당신은 브루터스인가 (0) | 2014.05.21 |
---|---|
[엔론ENRON_두산인문극장 2014] 우리는 과연 반복하지 않을 수 있는가 (0) | 2014.05.07 |
[히스토리보이즈The History Boys] 번안극, 귤이 탱자로 변하는 이유 (0) | 2014.03.14 |
[짜장면] 소문난 맛집이 되기 위한 몇 가지 조건 (0) | 2014.03.14 |
[에쿠우스EQUUS] 노약자를 용납하지 못하는 사회 (0) | 2014.03.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