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Deluge : 물의기억
기간 : 2015년 4월 16~19, 22~25
장소 :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출연 : 제레미 나이덱, 에이미 울스틴, 새미 윌리엄스, 엘렌 리스, 탁호영, 박영희, 권영호, 노제현
연출 : 제레미 나이덱Jeremy Neideck
주최 : 서울특별시
주관 : (재)서울문화재단
제작 : (재) 서울문화재단, Motherboard Productions
굳이 기억하지 않아도 잊을 수 없는 사람이 한 명 있다. 서른 즈음에 온몸에 암이 퍼져 죽었다는 동창이다. 일면식이 없거나 흐릿하게 기억하고 있어 동명이인이지 모르겠다. 기억 속 무리에 어울려 있는 여고생은 그녀가 아닌 다른 사람일 수도 있다. 부러 찾아보지 않았다. 이른 나이에 동창끼리 결혼을 했다는 소식도 얘기가 돌고 돌아 부음 소식을 들으면서 후일담으로 들은 얘기다. 그녀를 잘 모르니 안타깝지만 잊고 말 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당시 철없던 내 심정은 '사고가 아닌 병으로 나도 죽을 수 있는 나이구나' 싶어 애도가 아닌 두려움이었다.
그녀가 살아온 과정을 알지 못하였으나 두 아이의 엄마라고 했고, 사는 게 만만치 않았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이후로 관련해 아무 소식도 듣지 못했지만 가끔 젊은 그녀와 아이들이 떠오르고 먹먹해질 때가 있다. 서른 즈음일까 밝고 활기가 넘치는 젊은 부부를 보면 그러하다.
안타까움에서 두려움으로, 두려움에서 애도로 애도에서 동정으로... 대단치조 않아도 어느 순간 세상을 떠난 사람과 이후 남은 사람에 관한 생각의 여지, 그저 사람이라면 인지상정이다.
서울문화재단의 세월호 1주기 추모 기획 <Deluge : 물의 기억>은 작품의 완성도를 떠나 국가가 공생 관계로 이루어진 공동체가 맞는다면 적어도 보여줬어야 할 예의 같은 것이다. 이 사건이 국가시스템 부재에 무능함이 겹쳐서 일어난 대형 참사이고, 1년이 흐른 지금 해결책이 나오지 않은 채로 현재진행형이라 더욱 그러해야 한다. 정치적 판단에 따라 세월호 사건을 바라보고 풀어가는 정부나 정치권 태도는 예측 가능했으니 놀랍지도 않다. 행태에 대한 비판을 새삼 거들 건 아니다. 그러나 예술 관련 단체라고 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고민을 하고 풀어내야 할지 입장을 드러냈어야 했다.
적어도 문화나 예술이라는 이름을 달고 세금을 쓰는 국공립 재단, 극장, 극단이라면 그러는 게 적어도 예의 같은 것이다. 동시대성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왜 세금으로 세운 국공립극장에서 세금으로 올라가는 작품을 따로 관람비를 주면서까지 봐야 하는지 고민스럽다. 냉정하게 공연 예술 분야 국공립 극장이 해외 초청작을 제외하면 국공립극장 작품이라고 민간 극장 작품과 차별성을 갖춘 건 아니다.
뮤지컬은 자본력에서 기획사 만큼 투자를 하지 않으니 있으나마나 그 나마 전시성, 일회성 작품이 고작이고, 연극은 상대적으로 좋은 작품을 올린다지만 인력 양성을 하기 보다, 민간 극단 출신 연출과 스태프를 섭외 진행하는 수준이라 차별성을 갖출 수가 없다. 국립극장 창극단 정도가 (민간 창극단이 존재하기 힘든) 여러 시도를 통해 수준을 올린 정도가 눈에 띈다. '동시대성'은 소극장이긴 하지만 두산아트센터 연극이, 장르를 막론하고 '수준'은 LG아트센터가 낫다.
예산줄을 쥐고 있는 쪽이 정부니 눈치를 보느라 그러한 것인데, 행정 관련 직책과 몇몇 책임자들의 안위를 위한 동시대성이라면 옳지 않다. 누가 정권이 잡든 마찬가지나, 공연 예술이 정책에 의해 상품 수준으로 활용되는 게 보기 좋지는 않다. 당장 아이들 밥 한끼 먹고 사는 문제로 세금 분배를 놓고 치열하게 논쟁이 벌어지는 판에, 예술 정책이랍시고 폼만 잡을 수 있는 위치라고 한다면 동시대 국민 감정이나 정서를 이런 식으로 모른 척 무시해서는 안 된다. '공동체를 위한 예술의 공공성'이 원론이라고 해도 적어도 공연 예술에 대한 예의는 차렸어야 했다.
<Deluge : 물의 기억>을 올린 호주 연출가가 세월호 사건에 관한 슬픔 혹은 트라우마가 우리 만큼 심할을까. 공감을 하겠으나 정도와 깊이의 차이가 있을 것이다. 역으로 나도 <Deluge : 물의 기억>의 원래 버전의 계기인 2011년 호주 브리즈번 호수 범람 사고를 이 작품 전까지 알지 못했고, 또 공감하는 정도이다. 솔직한 심정은 자연재해인 브리즈번 홍수와 세월호 사건은 성격이 다르니, 원작을 공유하는 데 동의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슬픔, 애도에 앞서 무능과 뻔뻔함에 대한 분노가 앞서기 때문이다.
연출가 겸 무용수 제레미 나이덱은 한국에서 창을 배우고 익혀 이번 버전에 ‘한’을 녹여냈다고 했다. 그러나 그가 6개월 과정으로 한국 관객을 만족시킬 만큼, 장인들의 경지에 오를 수가 없다. 그리고 한국어와 연관한 독특한 한국인의 감수성을 완벽하게 이해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한국에 대한 연출의 애정, 이해나 한국 무용수들이 결합 하면서 작품 성격이 달라졌겠지만 정서를 다룬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는 공연이다. 다만 예의,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는 자세에 감동을 받는 것이다.
내가 뭘 제대로 알겠냐만 원 버전이 있고, 많은 세계 투어 과정을 거쳤으니 작품 구성도 다양하고 배우들 호흡도 좋다. 진정성을 느낄 수 있는 무대라 좋았다. 어쩔 수 없이 마음 편히 볼 수 있는 주제가 아닌 탓에 무용수들도 부담이었을 텐데, 대사 한 마디 없어도 충분히 와 닿는 공연이다. 기술적으로도 무대, 조명, 세트를 잘 활용했다.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무대의 독특한 돌출형 구조는 물속에 갇힌 심연의 이미지를 표현하기에 적합해 극장에 대한 해석도 높다.*
<Deluge : 물의 기억>은 지난 해 10월 문래예술공장에서 선보였던 공연을 발전시킨 작품으로, 지난 공연에서 호주 시인 주디스 라이트의 ‘홍수(Flood)’를 모티브로 치유의 생명력을 지닌 동시에 예측불허의 파괴력을 지닌 물을 이야기했다면, 2015년 4월에 선보이는 <Deluge : 물의 기억>은 우리가 잃어버린 것, 그리고 그 뒤에 남은 것들을 기억하는 일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소개 중에서
사진출처 - 서울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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