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리뷰 두 편에 이어 세컨드네이처의 '실존주의 문학 3부작' 세 번째 작품 <이방인>입니다. 나름 나란히 정리해서 리뷰를 올리기는 처음인데요. 앞 뒤로 비교하면서 감상할 수 있으니 연작이 확실히 제작이나 관객에게 시너지를 낼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구토>와 달리 <보이체크> 이후 '관객과 가까이' 기획시리즈이니 앞으로도 시리즈가 이어질 여지가 높기는 합니다.
리뷰를 읽어보니 주로 장점을 꼽은 편인데요. 현대무용단으로 관객과 호흡하면서 이 만큼의 성과를 내기까지 박수를 보냅니다만, <이방인>을 보면서 든 아쉬움을 꼽자면 다소간 비슷한 구성과 다른 현대무용단 작품과 변별점이 딱히 보이지 않기도 했습니다. 앞선 아쉬움은 문외한으로 개인감상이지만, 원작과 연계성이 작품 속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고민거리라고 봅니다. 팸플렛을 읽고 들어가도 원작과 연결고리를 찾기란 쉽지 않은데요. 활자로 된 문학과 말하지 않는 무용이라, 참 멀고 험한 고리입니다. 하지만 그 고리를 단단히 잇지 못한다면 자칫 '호가호위'라는 비판에 직면할 지도 모릅니다. [2013.07.29]
제목 : 세컨드네이처의 이방인
기간 : 2013.05.31~2013.06.02
장소 : 대학로 예술극장 소극장
출연 : 권혜란, 이정훈, 이주형, 조성국, 박혜미, 신영석, 정상현
원작 : 알베르 카뮈
안무 : 김성한
연출 : 이현빈
주최 : (재)한국공연예술센터, 김성한 세컨드네이처 댄스컴퍼니
주관 : 신애예술기획
‘현대무용도 일반 대중에게 쉽게 접할 수 있는 공연으로 추진하기 위한 세컨드네이처(Second Nature)의 <관객과 더 가까이>의 두 번째 실험 무대로서, 그 첫 번째 실험무대인 <보이체크>가 2011 아르코예술극장에서 5회 공연으로 대중에게 인정받았으며 세컨드네이처의 관객개발 프로젝트는 그 효과가 해가 지날수록 발전한다. 더불어 2010 대학로예술극장에서 <구토>공연으로도 3회 공연 전석매진으로 관객들과 함께 소통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언어를 움직임화 시켜 관객에게 다가가고자 하는 세컨드네이처의 노력은 계속된다.’ - <이방인> 작품 소개 중에서
이번 작품까지 세컨드네이처가 문학 작품을 원작으로 삼은 세 편을 봤다. 작품마다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만큼 문학에서 모티브를 얻어 현대무용을 올리는 작업은 계속 이어지지 않을까 예상을 해볼 수 있다. <구토>와 <보이체크>를 보면서 세컨드네이처가 극장, 즉 무대를 발코니 등으로 확장하는 능력을 두고 호평을 보냈다(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소극장에 이어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까지 세 편 모두 다른 극장이다.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구조는 블랙박스형 극장이지만 바닥 아래에 트랩무대가 있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 공연도 등퇴장, 스모그 등 망을 활용해 트랩을 주요 동선으로 활용했다).
이들이 그간 보여준 무대 활용은 단순히 정형화된 극장을 길지 않은 리허설 기간을 높은 이해를 두고 활용했다는 차원만은 아니다. 실존에 주목한 원작을 바탕으로 삼은 3부작은 원작이 제시하는 메시지처럼 정형화된 세계에 대한 반항의 메시지를 무용으로 유효하게 담았다는 데에서 있다. 무용수의 근육은 비슷한 체중과 키의 이종격투기 선수의 그것과 외형으로 보아 크게 다르지 않으나 그들이 휘두르는 훅, 혹은 킥은 특정 개인을 설정한 폭력이 아니다. 크게 보자면 사회에 대한 ‘날 것’의 투쟁이다. 작게는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고, 작품마다 차이가 있을 것이다. 적어도 이 작품이 기만, 최면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서 무용은 세계에 대한 파괴가 아닌 해석일 것이고, 그중 세컨트네이처의 무용은, 앞서 말할 극장 공간을 구석까지 활용하는 연출 방식은 세계를 향한 주먹질이 아니라 끈적임, 달라붙음, 눌어붙음, 덧칠의 의미로 읽힌다. 즉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 사회에 적응해 기성인으로 바뀌는 과정이 그렇듯이 좀처럼 들어내거나 씻어 내거나 지우기 힘든 사회가 가진 안개와 같은 방식의 환기인 것이다.
부조리를 다룬 작품을 기존 잣대가 아닌 부조리한 세상을 상정하고 비틀어 읽어야 그 의미가 해석이 되듯이, 세컨드네이처가 보여준 3부작은 입을 열고 토론을 해도 답이 나오기 힘든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의도적 침묵이고, 몸부림이다. 즉, 말로 했을 때, 수많은 억측과 해석을 낳은 각자의 이해방식을 아예 차단해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으로 묵직한 위기감 혹은 그 의도를 전달하는 식이다.
마지막 작품으로 <이방인>이다-앞으로 나올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더 이상 유효할까 싶기도 하다- 세 편중에 <구토>가 가장 좋았다. <구토>로 강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면, 관객 뿐 아니라 이후 공연 지원을 받기가 원활치 않았을 것이다. 한편으로 이 작품이 앞서 작품을 이해한 방식에 충실했다고 보는 반면, 영상을 활용한 <보이체크>는 소극장 무대 벽 전체를 활용했지만 의도가 정확하게 드러났나 싶었다.
이전 두 작품과 연출이 다른 <이방인>은 애초 몸으로 순도를 높였을 때 전달하고자 하는 의도가 잘 전단된다는 초기 전제에 가깝게 보인다. 무용수의 중얼거림은 이전 작품에서도 시도되었지만 소극장 무대에서는 그 낮은 독백이 소설 속 뫼르소의 심리를 풀이한 카뮈의 툭툭 던지는 문장과 잘 어울린다.
비보잉 그룹 ‘라스트포원’ 참여는 연이은 구사하는 윈드밀이 지루하게 내리쬐는 햇빛에 피어오로는 열기, 그 아지랑이처럼 보인다. 한자리에 못박인 듯 움직이지 않고 도는 팽이가 중심축을 두고 원심력과 구심력이 팽팽하게 힘의 균형을 이루듯이 지글지글 끓어오르는 눈에 보이지 않은 아지랑이 혹은 그 무엇은 눈앞에 벌어지고 있지만 아무도 보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세상, 부조리한 세상을 일컫고, 탑 조명 아래서 명암이 확연히 구분되는 비보이들의 우직한 회전 동작은 그런 세상의 구현이다.
그러나 세상과의 부침 혹은 견제, 경계, 부조합은 명도의 차이일 뿐 현대무용의 주요 코드이기도 하다. 직선으로 세계를 인식한 기독교의 세계관과 합리주의에 대한 반발로 인과관계와 필연성으로 메워지지 않은 세상의 본질을 캐물었던 카뮈의 사유가 녹아나왔는지는 고민해볼 부분이다.
‘사회는 개인들에게 부지불식간 원하는 게 참으로 많다. 평균지성을 정해두고 그 틀에 맞추기를 사회구성원으로 원한다. 일정한 틀, 상식 안에서 행동하지 않을 때 우린 ‘이방인’으로 취급된다. 과연, 이방인이 아닌 이들이 말하는 ‘정상’은 무엇인가?’라는 제작 의도는 카뮈의 작품을 차용했으나 치밀하기 보다는 무르게 덧입힌 게 아닌가 싶다.
카뮈가 존재로 실존을 개인 차원이 아닌 적극적인 사회 참여를 통해 요구했던 삶을 떠올리면 의미가 축약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누구나 이방인이라는 명제는 맞지만, 각자 개인이 아닌 세상을 바뀌는 반발력으로 작용할 때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인간이란 얼마나 무의미한 존재인가.*
사진출처 - 세컨드네이처 댄스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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