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사이 국립극장 레퍼토리 공연이 한창입니다. 추석을 맞이해 창극 '서편제'가 올라왔습니다. 2012년 이후 국립극장이 변하기 시작했지요. 앞서 몇 번 언급했지만, 대관사업 위주였던 국립극장이 상주 예술단의 역량을 이끌어내 양질의 레퍼토리를 양산하기 시작했습니다. 외국 연출가, 창극을 써본 적이 없는 극작가, 그리스 희곡의 창극화 등 이전 느린 행보에 비해 무척 과감한 시도를 했습니다.
잘은 모르지만 외부로부터 파격적인 시도가 이어지니 내부에서 조율이나 갈등이 적지 않았으리라 봅니다. 하지만 관객 입장에서 변화와 시도는 공연 자체가 가진 동시성이라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 <춘향2010>은 창극 100주년 기념작으로 의미가 있으나, 관객의 시선에서 의미를 받아들이는 층위가 다를 수밖에 없기도 합니다. [2013.09.08]
제목 : 국립창극단 115회 정기공연 - 춘향2010
기간 : 202010/04/06 ~ 2010/04/11
장소 :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출연 : 도창 - 안숙선 / 춘향 - 박애리 / 몽룡 - 이광복 / 변사또 - 윤석안 / 월매 - 정미정 / 방자 - 김학용 / 향단 - 박자희 (국립창극단, 국립국악관현악단, 국립무용단 외)
예술감독 : 유영대
연출 : 김홍승
작곡/지휘 : 이용탁
주관 : 국립창극단
주최 : 국립극장
서울에 살면 정작 남산 케이블카를 좀처럼 타지 않게 된다고 하던가. 토종 한국인으로 익히 수없이 보고 듣고 읽은 <춘향전>이지만 <춘향전>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게 뭔가 싶다. 익숙한 플롯이야 많은 작품에서 변주가 되었으나, 퓨전이 아닌 정통 춘향가에 대해 안다는 게 고작 ‘사랑가’일부 대목이나 흥얼거리는 정도, 그리고 변사또 생일잔치에서 ‘높을 고(高), 기름 고(膏)’로 몽룡이 암행어사 출두요!를 외치기 직전에 지은 풍자시 겨우 아는 정도다.
‘춘향 2010’은 재미도 재미고 흥미도 흥미지만, 한국인으로 한번쯤 꼭 보면 좋을 만한 무대이다. 사랑 얘기가 애달프고 속을 달뜨게 하면서도 탐관오리를 혼내주는 대목에 다다르면 민초들이 얼마나 속이 시원했을까 말이다. 덩달아 시원해지는 이유는 내가 민초인 이유도 있겠지만 요 사이 나라 돌아가는 꼴이 하도 수상하기도 하지 않더냐 말이다. 풍자를 담은 정서가 여직 생생하게 이어오고 벅차게 다가오니, 제대로 흥을 즐기어 보자는 심산이다.
이번 봄 공연은 국립극장의 ‘우리시대의 창극시리즈’ 다섯 번째 무대로 국립창극단, 국립국악관현악단, 국립무용단이 참여하는 만큼 대한민국 최고 수준의 창극으로 춘향전을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이기도 하다.
‘송만갑이 100년 전 협률사에서 시도한 창극도 춘향전이었고 1998년 임진택 연출, 김명곤 대본으로 국립창극단이 공연한 최초의 완판창극도 <춘향전>이었다. 한 편 창극 100년과 국립창극단의 창단 40주년을 기념한 공연도 <춘향전>이었다. 이와 같이 <춘향전>은 우리 전통예술의 영원한 고전으로서 그 가치와 생명력을 인정받고 있다.’ -춘향2010 소개 가운데
제목이 <춘향 2010>이니 만큼 창극사 100년 세월을 담았으면서도-영욕의 역사 새로운 버전으로 새롭게 시도를 하였다는 소개이다. 허나 내 자신이 창극에 대한 기본 이해가 없고, 그 역사와 과정을 모르니, 그저 보는 내내 창극이 가진 우리 정서를 이해하고 즐기기에 바빴다. 2층이라 무대가 멀긴 하나 앞쪽에 자리 잡은 덕에 전체 구성을 한눈에 즐기기에도 좋았고, 무대 양쪽 가장자리에 배치된 자막 모니터를 통해 귀에 익지 않은 대사를 확인하기에도 좋았다.
안숙선 명창은 극 도입부터 시작하여 막이 바뀔 때마다 도창(해설)으로 등장하여 빼어난 명창으로 극의 분위기를 한껏 치켜세웠다. 창극이 오페라나 뮤지컬과 다르게 가진 매력이다. 무대는 뒤에서부터 오방색을 바탕으로 규방공예, 조각보를 보듯이 막을 여러 장 달아서 무대를 조였다가 풀면서 각각 너른 마당은 너른 무대로 좁은 방안은 좁은 무대로 변주를 한다.
역시 백미는 무대 앞쪽에 달린 거대한 막인데, 흰 천으로 그 위에 수묵화가 펼쳐지면서 한 편의 작품을 선사한다. 각각 극 전개에 따라 산수화, 풍속화가 막을 비치는 내내 이 작품이 보여줄 수 있는 한국적 정서이자 볼거리이다. 그리고 막 앞에 국악관현악단이 있는 오케스트라 박스 앞으로 객석 쪽으로 특유의 부드러운 한국의 길을 상징하듯 곡선으로 길을 내어서 무대 안쪽과 다른 묘미를 선보인다.
작품에서 현대적인 감수성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은 장원 급제한 몽룡이 남원고을에 당도하여 농부들로부터 남원부사 변학도가 원성을 사고 있고, 춘향에게 수청을 강요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7장 ‘산도 옛보던 산이요’에서 꼭두쇠 연희단의 풍물패와 함께 풍물놀이 장단에 맞춰 비보잉을 선보이는 대목과 춘향이가 옥중에 갇혀 부르는 중머리조의 ‘쑥대머리’를 부르는 9장 ‘쑥대머리’ 대목에 등장하는 현대 무용이다.
이런 시도는 물론 환영할 만하고, 보다 농익게 극중에 녹여낼 필요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그다지 환영할 만한 조합은 아닌 듯하다. 비보잉이 가지고 있는 감수성이 풍물놀이와 어울리지 못할 것도 없다. 하지만 춤추는 주체부터 젊은 세대가 주축일 수밖에 없는 묘기에 가까운 볼거리와 지긋한 중장년이 너나없이 함께 놀 수 있는 풍물과는 다소간 어울리는 듯 농사를 앞둔 농민들이 즐기기에는 아직은 낯설어 보인다.
옥중 춘향이의 심리를 묘사한 듯 혹은 옥사한 영혼들인 듯, 가면을 쓰고 검은 옷을 두른 채로 등장하여 무대를 펼치는 대목은 만약 옥중 춘향이의 심정이라면 지금이 기존으로 보아 ‘여필종부’하는 그녀의 전근대적 성격을 두고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게 가능할 지가 의문이 든다. 변사또 치하에서 억울하게 옥사한 영혼들이라면 보다 그럴 듯하게 어울리는데, 극 전개상 다소 생뚱맞다.
아무려나 명창들이다. 3~40년 농익을 대로 농익은 창극단의 열창과 국립무용단의 무용이 제대로 어우러지면서 창극이 뭔지 보여준다. 눈이 획획 돌아가는 시대 속도에 비하다보면 꽤나 느린 듯하나 다시 보아도 좋겠다 싶다.*
사진출처 - 국립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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