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극

[제 4회 더 뮤지컬 어워즈 리뷰] 뮤지컬 영웅의 뮤지컬 어워즈의 영웅으로의 추대는 정당한가

구보씨 2010. 6. 7. 13:49



제4회 한국 뮤지컬 어워즈 시상식 리뷰 ­- 영웅

뮤지컬 영웅의 뮤지컬 어워즈의 영웅으로의 추대는 정당한가




일방적 지지 선언

지난 6월 7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제 4회 더 뮤지컬 어워즈'의 영웅은 작년 안중근 장군의 하얼빈 거사 100주년 기념 뮤지컬로 탄생한 <영웅>이었다. 작품/배우/창작/무대/관객으로 나뉜 5개 섹션 총 19개 부문에서 10개 부문 노미네이트로 올해 최다 노미네이트를 기록한 뮤지컬 <영웅>의 영웅 추대는 올해 안중근 순국 100년을 맞이하여 어느 정도 예상이 된 부분이었다.

 

하지만 <영웅>이 최우수 창작뮤지컬상, 남우주연상, 연출상, 무대미술상, 조명음향상, 음악상까지 총 6개 부문 수상으로 역대 최대의 수상작이라는 쾌거를 이룰 줄은 미처 짐작하지 못했다. 게다가 최다 부문 노미네이트, 최다 부문 수상 내역을 살펴보면  최우수 창작뮤지컬상, 남우주연상, 연출상 등 <영웅>이 가져갈 수 있는 굵직한 부문을 모두 휩쓸었음을 알 수 있다.

 

이날 시상식에서 가장 화제가 된 부문은 남자신인상, 팬 투표 남녀인기상을 수상한 아이돌 스타 출신 김준수에 힘입어 팬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은 <모차르트>와 작년 ‘제15회 한국뮤지컬 대상 시상식’ 3개 부문 수상에 이어 이번 행사에서도 남우조연상을 수상하면서 주목을 받은 <스프링 어웨이크닝>이 맞붙은 최우수 외국뮤지컬상이나 세계 4대 뮤지컬이라 불리는 <미스사이공>과 <오페라의 유령>이 자존심 대결을 펼친 베스트 리바이벌상이었다. (각각 <스프링 어웨이크닝>, <오페라의 유령>이 수상했다.)



 

외국 라이센스 뮤지컬도 아니고, 작년 초연 공연을 올렸으니 <영웅>은 화제가 된 두 부문과는 관계가 없다.  안중근 장군의 굵직한 일대기를 다룬 작품으로 여우주연상 부문이 해당사항이 없으므로 <영웅>에 대한 '제 4회 더 뮤지컬 어워즈'의 애정이 편파적이라는 구설수에 오를 법도 하다. 

 

더 뮤지컬 어워즈 집행위원회는 기자 간담회를 통해 “지난 행사 분석한 결과 심사기준에 전문성과 객관성이 더 요구됐다”면서 “공연담당 기자단 50명의 심사도 이와 같은 취지에서 진행하게 됐다”고 밝히고 있다. 한국의 뮤지컬 산업 규모에 비해 뮤지컬 전담 기자들이 드물기도 하고, 또 기자단 50명 구성에 비해서 30% 반영 비율은 낮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적어도 기자단 심사 참여제 도입은 올해부터 뮤지컬 어워즈가 나름 객관성을 확보하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럼에도 <영웅>이다.

 


 

영웅, 그러나 약진이 돋보인 <빨래>

최우수 창작뮤지컬상 부문에서 <영웅>과 겨룬 작품은 <빨래>와 <남한산성> 2편이다. <영웅>이 비교적 쉽게 타이틀을 얻었다기보다는 올 한해, 상대적으로 후보에 오를 만한 수준의 창작뮤지컬이 적었다고 봐야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날 극본상과 작사·작곡상을 수상해 기대 이상의 성과를 이룬 <빨래>의 약진이 돋보였다. <빨래>는 소규모 뮤지컬이면서도 소극장 창작뮤지컬상 부문이 아닌 창작뮤지컬상 후보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경쟁했다.

 

소극장 뮤지컬이 살아남는 길은 대형 뮤지컬의 답습 혹은 따라가기가 아니라는 점을 <빨래>가 다시 한 번 확인해준 셈이다. 소재와 주제에서 독창적이면서도 탄탄한 대본과 이를 바탕으로 한 뮤지컬 넘버, 라는 기본기에 충실할 때 저예산 뮤지컬도 얼마든지 작품성과 대중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빨래는 2005년 정식 공연 이후 1000회 공연을 앞둔 작품이다. 이제야 후보작으로 오른 데에는 2009년 배우 임창정 참여로 예매율 1위에 오르는 등 다시 화제를 모으면서 힘을 보탠 데에 있어 보인다. 추민주 연출 역시 수상 소감을 통해 임창정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그에 반해 작가 김훈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화제를 모았던 <남한산성>은 올 10월 재공연을 앞두고, 6개 부문에 후보로 이름을 올려 기대를 모았지만 한 부문도 수상을 하지 못하면서 아쉬움을 더했다.

  


미스사이공 VS 오페라의 유령

정성화는 매년 남우주연상 부문에서 고배를 마실 때마다 논란이 일 정도로 ‘뮤지컬 배우 사상 최고의 바리톤’이자, 실력을 충분히 인정받은 배우이다. 그런 만큼 올해 남우주연상 부문 수상은 충분히 예상이 가능했다. 시기적으로도 충분히 무르익었고, <영웅>의 묵직함에는 그의 바리톤 이상을 기대하기 힘들 정도로 작품과 궁합도 잘 맞았다. 여러 가지 이유로 전폭적 지지를 받은 작품의 주연인 만큼 10월에 있을 제16회 한국뮤지컬대상에서도 기대를 모으고 있다. 정성화가 드디어 무명 개그맨 이미지를 극복했다거나, 여우주연상 수상자 김보경이 주로 앙상블 맡다가 <미스 사이공>의 ‘킴’역으로 처음 주인공을 맡은 신데렐라였다는 식의, 한데 묶은 해석은 적어도 작품 외적인 보상처럼 보일 수도 있어서 동의하기가 힘들다.

 

<미스 사이공>을 올해 임혜영 버전의 ‘킴’으로만 본 탓에 김보경에 대한 평가를 내릴 수는 없지만, 김보경이 이미 ‘미스 사이공’ 초연 당시 제1회 뮤지컬 어워즈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적이 있는 만큼 이번 수상이 논외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녀의 울먹이는 소감에서 작년 한 해를 작품 없이 보냈다가 다시 ‘킴’ 역으로 돌아온 그녀의 소회가 그대로 전해졌다. <미스 사이공>이 베스트 리바이벌상을 <오페라의 유령>에게 내주면서 자존심을 구겼지만 여우주연상을 따내면서 어느 정도 자존심을 회복한 셈이다. <미스 사이공>이 후보에 오른 6개 부문에서 유일하게 수상을 한 부문이라 더욱 의미 있는 수상으로 볼 수 있다.



  

가장 치열했던 연출상 제패

<영웅>에 대한 전폭적 지지라는 표현이 응당하다면 창작뮤지컬상 수상이나 남우주연상 수상보다는 연출상 수상에서 그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올해 뮤지컬 어워즈 연출상 후보에 오른 작품을 보면 <미스 사이공>, <살인마 잭>, <모차르트!>, <금발이 너무해> 등 <영웅> 포함 총 5편으로, 한국 창작 뮤지컬인 <영웅>을 제외하면 해외 시장에서 작품성과 대중성을 인정받은 대작들이다.

 

이날 시상식 사상, 가장 치열한 경쟁 부문에서 후보작 중 유일한 초연작이자 한국 창작 뮤지컬인 <영웅>이 연출상을 수상한 것이다! 공교롭게도 연출상과 동일한 다섯 작품이 겨룬 음악상 부문에서도 영예는 <영웅>의 피터 케이시에게 돌아갔다. 한국에 들여온 해외 라이선스 뮤지컬이 원작 뮤지컬의 퀼리티를 100% 보장한다고 장담하기는 힘들지만 하나같이 <영웅> 기획사 (주)에이콤인터내셔널 못지않은 메이저 기획사 작품들이다. 전문비평이 상대적으로 드물고 관객들의 입소문이 영향력을 발휘하는 뮤지컬 시장에서 흥행에 참패한 작품들도 물론 아니다.



 

명성황후 그리고 영웅, 독배인가 축배인가

“명성황후의 옥동자 영웅이 태어난 것 같다.” ‘뮤지컬 <영웅>은 1995년 명성황후 시해 100주년을 맞아 뮤지컬 <명성황후>를 선보여 국내외 언론으로부터 찬사를 받았던 윤호진 연출이 작년 안중근 거사 100주년을 맞아 새롭게 선보인 작품’이다. 한국 창작 뮤지컬의 가장 굵은 획을 그은 <명성황후> 이후 익히 해외 공연 노하우를 쌓은 윤호진 연출은 “처음부터 브로드웨이를 목표로 제작된 작품이다. 미국 뉴욕과 LA 공연이 내년 8월말부터 두 달간 펼쳐질 예정이고, <명성황후> 일본 공연이 성사되지 못했지만 <영웅>의 2013년 일본 공연을 조심스럽게 준비 중”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그의 소감에서 더욱 ‘우리끼리 잔치’라는 오해를 살 수도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영웅>의 연출상 수상을 납득하지 못할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 다섯 작품에 대한 구체적인 비교 심사평이 보이지 않아 판단하기 이르지만 대체적으로 “어느 작품이 받아도 인정”이라는 분위기였다는 후일담이 기사로 보인다. 그러나 이 말은 역으로 <영웅>의 연출상 수상이 남우주연상 수상이나 창작 뮤지컬상 수상에 비해 확고한 지지를 받지 못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래서 수입은 많은 대신, 수출은 거의 드물어 심각한 불균형을 이루는 뮤지컬계에서 해외 진출을 앞둔 <영웅>에 대한 지지로도 볼 수 있다. 그리고 만약 실제 영향을 미쳤다고 해도 객관적 기준을 무너트린다고 할 수도 없다. 기본적으로 무시하지 못할 시장으로 성장한 이상 한국 뮤지컬에 대한 양성과 지지는, 이후 한국 뮤지컬계에서 라이선스와 창작 뮤지컬이 균등한 발전을 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다. (딱 들어맞는 비유는 아니지만 스크린 쿼터가 세계적 수준으로 발전한 한국영화의 밑거름인 점은 분명하다.)




시대를 뛰어넘은 영웅, 안중근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영웅>이 <명성황후>가 밟고 걸어간 길을 뒤따라가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이다. 15년 전, <명성황후> 초연이 뮤지컬로 품격이 뒤처지는 작품은 아니었지만, 실제 역사를 배경으로 삼은 작품들은 (장르를 망론하고) 장단점이 흑과 백처럼 명확하게 갈릴 수밖에 없다.

 

윤호진 대표가 수상 소감으로 밝혔듯이 ‘안중근 거사 100주년’ 작 <영웅> 초연 당시에는 연극 <겨울꽃>, 소설 <이토 히로부미, 안중근을 쏘다> 다양한 문화장르에서 안중근을 기리는 작품들이 연이어 소개되었다. 올해에도 송일국이 안중근 역으로 출연하는 연극 <나는 너다>가 상영을 앞두고 있다. 완성도를 따지기에 앞서, 뮤지컬 <영웅>은 문화 상품 가운데 관심을 모으면서 '안중근 다시 알기'의 첨병 역할을 톡톡하게 해냈다.

 

관 지원의 범작 수준이 아닌  50억 대 투자를 통해 100주년을 넘기지 않고 무대에 올리면서 한류스타 출신의 배우 없이 독립 투쟁사를 다뤘다는 의미에서 <영웅>은 단연 영웅이다. 특히 ‘이토 히로부미 저격 사건’이 안중근 스스로 밝히길 의분으로 벌인 만행이 아닌, 그리고 의거라기보다는 대한독립군 참모중장으로 당연한 거사라는 점을 당당히 밝히는 대목은 단연 압권이다. 이날 뮤지컬 어워즈에서도 일본 법정 장면에서 이점을 분명히 했다. 반민특위가 미진하면서 친일파의 기득권이 군사정권으로 이어지면서 해방 이후 64년만인 작년에야 겨우 친일인명 사전이 나온 대한민국이고 보면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우리에게 몇 안 되는 거사의 주인공인 ‘안중근’은 단연 지금 시대에서도 <영웅>이다.

 

그러나 역사적 사실을 같이 공감하기 힘든 해외 관객들이 본다고 했을 때, 작품의 전체적인 흐름이나 인물이 다른 뮤지컬과 변별점을 이루고 있다고 보기에는 다소 힘이 부친다. 작품 속 캐릭터로만 보면 안중근은 정의롭고 자애로운 인물로 이른바, 다채로운 캐릭터라기보다는 밋밋한 캐릭터이다. 외국인의 눈에 한나라의 국모로 처참하게 시해를 당한 명성황후의 비극적 정서와는 또 다르게 극 전체가 무난하게 보일 수 있다.



 

 세계로 나가려는 영웅에게 고함

명성황후 15주년 기념작이자 하얼삔 거사 100주년 기념작으로 기획한 작품인 만큼 역사적 인물 복원의 의미를 배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런 작품 배경에 관한 부분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해외 관객들의 눈에 이 작품이 다른 대작을 누를 만한 작품인가, 하는 점에 고개를 갸웃거릴 수도 있다. 2막 실물 크기의 기차가 만주 벌판을 달리는 장면은 <영웅> 무대 장치의 백미이다. 거침없이 대륙을 횡단하는 기차가 일제의 동아시아 지배 야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이라는 점에서도 초점을 정확하게 잡았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이 장면을 제외하면 상대적으로 세트가 단조롭다. 1막 초반 역사적 사료를 바탕으로 한 자작나무 숲 단지혈맹 외에, 도시의 건물로 쓰이는 같은 벽 세트의 반복 사용은 중국과 러시아의 여러 도시를 넘나든 역사적 배경으로 삼기에는 다소 힘이 달린다.



 

고독한 영웅으로 기억되는 이상, 안중근 독립투쟁 당시 주변 인물들이 극중에서 그리 큰 비중을 두고 다뤄지지는 않는다. 그리고 대체적으로 설득력이 있는 인물들이다. 그러나 링링이 안중근이 우연히 맞닥뜨린 위기 앞에 일본 순사 와다의 총탄 앞에 대신 몸을 던져 안중근을 구하고 죽음을 맞는 장면은 다소 작위적이다. 비중이 큰 조선 최후의 궁녀이자 암살을 위해 신분을 숨기고 이토 히로부미 애첩이 된 가상의 인물, 설희의 설정과 결말 역시도 마찬가지다. 이토 히로부미는 영웅 VS 영웅 구도를 위해 설희와의 관계에서 인간적인 부분을 드러내면서 다른 해석을 꾀한다. 하지만 설희의 암살 계획을 어느 정도 눈치 채고서도 동아시아 대제국 기틀 마련을 위한 만주국 방문에 설희를 대동한다는 설정 역시 개연성이 부족하기는 다르지 않다.

 

올해는 안중근 장군 순국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영웅>의 이번 뮤지컬 어워즈의 시상도, 올해 해외 시장(주로 교포들이 극장을 메울지라도) 진출은 의미가 깊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안중근의 동양평화론은 단순히 민족주의에 기반을 두고 있지 않다. 한중일 3국의 공조를 바탕으로 한 구체적인 평화 프로젝트였다. 그의 인간적인 면모와 사상은 투옥 당시 일본군 간수마저도 감화시킨 일화로 유명하다. 우리가 주목할 점은 우리 안의 영웅이 아닌 보편적인 영웅으로서 오체투지한 그의 삶이다. 뮤지컬 <영웅>이 몇 가지 난점을 극복하고 보완하여 세계 시장에서 명작으로 인정받는 그날이 오길 제 4회 뮤지컬 어워즈 6개 부문 수상을 축하하면서 희망한다.



 

사진 출처 - 일간스포츠, (주)에이콤인터내셔널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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