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체크메이트] 삶이 흑과 백으로 예측 가능한 정렬인가?

구보씨 2009. 12. 3. 11:15

왕성하게 다작을 연출하는 김재엽 연출의 작품으로 처음 만난 작품입니다. 부조리극의 대가 작가 외젠느 이오네스의 ‘왕은 죽어가다’를 재구성해 극중 극 형태로 올린 작품이지요. 후기를 적지 않았지만 김재엽 연출작을 몇 편 더 봤구요. 언제봐도 좋을 <장석조네 사람들>과 근래에는 한바탕 폭풍을 몰고 온 <풍찬노숙>을 봤습니다. 


김재엽 연출은 흠... 개인적으로는 관람 경험을 바탕으로 몇 가지 패턴을 통해 봐야할 작품과 보지 않아도 될 작품을 가리는 편입니다. 굳이 간단하게 나누자면 사실주의에 강한 연출이니만큼 현실에 바탕을 둔 작품들이 꽤 좋습니다. 극단 드림플레이는 좋은 배우들이 많습니다. 개성 넘치는 배우들이기도 하지요. <장석조네 사람들>은 아휴~ 배우들이 펼치는 한바탕 잔치입니다. <체크 메이트>도 2010년에 앙코르 공연을 올렸던 작품입니다. [2012.03.01]

 

제목 : 체크메이트

기간 : 2009/12/03 ~ 2009/12/20

장소 : 국립극장 별오름극장

출연 : 선명균, 우돈기, 김주령, 이소영, 박기덕, 신정현, 김진성, 한지혜

작/연출 : 김재엽

제작 : 극단 드림플레이


 

체크메이트! 체스 게임에서 장군을 받은 상황이다. 더 이상 갈 데가 없는 상황, 그런데 이번 판에 내 목숨이 걸려 있다면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누가 목숨을 걸고 게임을 하겠냐만 생각해보면 태어난 순간부터 우리는 체스판 위에 놓인 상황이다, 라고들 기분 잡치는 얘기를 하곤 한다. 인정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말이다. 결국 체크메이트를 받는 때가 언제냐의 차이일 뿐, 결국 아무리 도망 다니려고 해도 체크메이트를 받을 수밖에 없다. 종교가 무효판을 만들어준다고들 하는데, 죽어봐야 아는 일이다.


흑과 백의 체크무늬는 삶과 죽음을 명확하게 경계짓는다. 마치 백색 칸에 있으면서 흑색 칸을 밟지 않으면 영원히 살 수 있다는 듯 행동하지만 그 경계는 쉽사리 무너진다. 하나마나 한 소리지만, 오늘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유명을 달리하고 있을 거냔 말이지. 굶어 죽는 사람들만 해도 하루에 15만 명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들 중 한 명이 , 더군다나 이 순간에 죽는 게 바로 나라면? 연극 <체크메이트>는 그 경계가 부질없음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편견 혹은 건방증, 아니 건망증을 두고 우화로 풀어낸다. 




작가 마태오가 지금 글을 쓰는 현실과 마태오의 미완성 희곡 작품 ‘체크메이트’가 한 무대 위에서 동시에 펼쳐진다. 그러니까 마태오의 현실과 머릿속이 동시에 구현되는 상황이다. 체크요정만이 이 두 세계를 오가는데, 체크 요정은 현실에서 몇 주일 전에 죽은 이웃집 아이 고나리다. 그러니까 이 아이도 마태오의 환각 혹은 정신이상증세라고 볼 수 있다. 몇 주일째 잠을 자지도 먹지도 않은 채, 희곡에만 몰두한 탓이다.마태오가 쓰고 있는 희곡이 현실의 연극 무대에 오를 수 있는지, 아니 완성할 수나 있는지는 미지수다.

 

현실은 마태오에게 꽉 막힌 상황이다. 그래서 생긴 정신분열일까. 현실과 작품과 섞이면서, 작품 속으로 들어가는 마태오. 자신의 작품 속에서 자신이 죽인 기고만장한 체크무늬국왕이 되면서 삶의 산다는 것의 의미를 조금씩 깨닫는다. 자기 작품이라지만 함부로 죽인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선생님이 쓰신 글에 평소 제가 습관처럼 말이 나오고, 제 이름이 나와서 좋았어요”라는 가정부 노아 말에서 비록 허구의 연극일지라도 그 삶이 어떤 의미인지를 새삼 깨닫게 된다.



 

바닥도 그리고 벽면도 정렬이 된 체크무늬가 섞이면서 질서와 균형이 흔들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산다는 것은 그렇게 늘 죽음과 함께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고, 이는 단순히 살아 있는 인간에게만 적용될 게 아니라 작품 속 인물들, 그리고 죽어서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 때 기억을 해주었기 때문에 여전히 눈에 보이는 체크요정 고나리를 통해서 ‘삶을 통한’ 죽음의 의미를 되새긴다. 연극 무대는 다음날에도 오를 것이고, 또 지난날에도 올랐을 것이다. 죽지 않는 배역들의 매일매일 죽는 이야기는 그렇게 우리에게 하루하루의 의미를 되새기도록 부추긴다. 뛰어난 연기를 선보인 극단 드림플레이의 배우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사진출처 - 한국경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