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녀는 판소리 <변강쇠가> 혹은 <가루지기타령>에 등장하는 한국 정력남의 상징인 변강쇠의 아내이자 음기가 세기로 대표격인 인물입니다. 에로영화가 붐을 이뤘던 1980년대 엄종선 감독의 영화 <변강쇠>(1886)로 이대근 씨가 여전히 명성(?)을 누리고 있지요. 이후 시리즈를 보면 옹녀는 벗는 배우쯤으로 좀처럼 기억이 나지 않기도 합니다. (첫 번째 옹녀 역은 한때 드라마 주인공을 도맡았던 원미경 배우였습니다.).
고(故) 고우영 화백의 만화를 <가루지기>를 옮긴 영화 <가루지기>(2008)는 변강쇠가 청소년 시절 성적장애로 고민을 하였다는 설정에서 시작하면서 변강쇠의 또 다른 이면을 새롭게 해석해서 보여주었는데요. 여린 주인공의 슈퍼히어로(?) 변신이라 스파이더맨이나 배트맨과 비슷한 설정이라고 해도 맞지 싶습니다.^^. 전 재밌게 봤습니다만 변강쇠를 새롭게 이해하려는 의도라고 보기는 힘듭니다.
영화가 나왔던 2008년에 연극 <옹녀 이야기>도 초연을 올렸습니다. <변강쇠가>를 옹녀 시선에서 바라본 참신한 시각으로 재해석한 작품으로 많은 호평을 받았습니다. 2009년에 공연지원을 받아 다시 올라갔을 때 봤는데요. 옹녀의 삶을 인형, 탈, 연주 등 다양한 형식을 차용해 무겁지도 지루하지도 않게 잘 풀어낸 작품입니다. 흥행을 염두한 제작비를 많이 투자한 영화와 장르특성 상 비교적 구애를 받지 않아 깊이 있는 연출이 가능한 연극와 단순비교하기는 힘들지만 연극 해석도 그렇고 관객입장에서는 해석도 그렇고, 연극이 좀 더 마음에 듭니다. [2013.01.31]
제목 : 옹녀 이야기
부제 : 편견을 넘기 위한 두 번째 항해를 시작합니다.
일시 : 2009.12.03 ~ 2009.12.27
장소 : 대학로예술극장3관(상상나눔씨어터)
연출 : 김무성
출연 : 곽근아, 고기혁, 황대현, 이승준, 박종일, 진종현
안무 : 최은화
인형제작 : 예술무대 산 (Alive)
연주 : 이재원(작곡), 강성현, 김지혜(이상 타악)
제작 : 프로덕션 쾌, 창작그룹 오기
연극 <옹녀이야기>는 조금 더 우리시대의 이야기를 담고자 노력했습니다. 사회의 편견에 맞서 고집스럽게 자기 삶을 지키려는 옹녀의 모습은 몇 백년이 지난 현재에도 ‘위험하고 음란한 여인’이라는 모습으로 존재합니다. 그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운 ‘옹녀’의 모습을 꿈꿔봅니다. -연출의 말 가운데
연극 <옹녀 이야기>의 미덕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바와 달리 옹녀가 교미를 하면서 수사마귀를 잡아먹는 암사마귀의 사주를 타고났다는 식의 도화살로 풀이한 이야기가 실은 남성의 입장에서 봤을 때의 이야기일 뿐이라는 것이다. 옹녀를 둘러싼 기구한 운명이 그녀를 희대의 남자 정기를 빨아먹어 죽이는 밝힘증 환자로 몰아갔다는 일설에 대한 일침을 가하는 해석이다.
그렇다고 해서 몇몇 작품들에서 그랬듯이 기존의 <변강쇠전>의 틀을 완전히 뒤엎고, 옹녀를 여성 해방의 상징 혹은 여성 억압의 상징으로 다루는 식의 밑도 끝도 없는 차용이 아니라, 고전의 틀을 가능한 깨지 않는 한도에서, 옹녀를 희대의 밝힘녀도 아니요, 희대의 여성해방가도 아닌 그저 불우한 운명을 타고 태어난 장삼이사, 서민으로 그리고 있다. 무엇보다 이 연극은 판소리가 원작인 바, 무대 한쪽에 악기를 다루는 악공들이 앉아서 흥을 돋우고, 등장인물인 박수무당, 파계승, 소경, 뎁득이, 각설이가 각자 장기를 살려 무대를 한바탕 놀이마당으로 꾸민다.
변강쇠를 옹녀를 감시하듯 무대를 꽉 채우는 거대한 인형탈과 옹녀를 잡고 놓지 않는 두 손으로 표현한 장면은, 죽어서도 치우기 번거로운 그 껍데기일 뿐인 그 엄청난 거시기라는 허명이 그다지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걸 상기시킨다. 남근주의라는 게 고작 죽어서 쪼그라든 지린내 진동하는 살덩어리인 바에야 그다지 내세울만한 게 아닐 수도 있다는 게다. 장례를 치르고 나서 옹녀가 비로소 운명을 벗어 던지고, 그러니까 이놈저놈 다 겪어봤는데, 별 볼일 없더라는 진리(?)를 깨닫고 남성의 속박에서 훌훌 벗어나는 장면은 한편으로 짠하면서도 시원하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원작이 갖는 한계가 있겠지만, 옹녀가 이 굴레를 벗기 위해 딱히 주체로 나서 한 일이 없다는 것이다. 그녀가 변강쇠의 저주를 받아 영혼이 따로 나와서 그냥 저승으로 떠나려고 할 때, 이를 막은 것은 박수무당 패거리들이다. 그들이 옹녀의 한스런 얘기를 들어줬을 때라야 그녀가 비로소 굴레를 벗게 되는데, 옹녀의 보다 주체적인 뭔가를 연극에 담는 게 어찌 보면 양날의 검일 수도 있지만, 아쉬움이 살짝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인형극도 그렇고 가면극도 그렇고 타악연주도 그렇고 우리 전통의 맛과 멋을 다양하게 살린 종합선물 같은 작품이다. 남녀노소(?) 누가 보아도 재밌게 볼 작품이다.*
사진출처 - 프로덕션 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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