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블루룸THE BLUE ROOM] 공허하지만은 않은 푸른 방

구보씨 2011. 11. 29. 12:29


 

제목 : 블루룸THE BLUE ROOM

기간 : 2011.10.29 ~ 2011.12.11

장소 :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출연 : 김태우, 송선미, 송지유(송지영)

원작 : 아르투어 슈니츨러

각색 : 데이비드 헤어

연출 : 이안규

제작: ㈜오디뮤지컬컴퍼니, CJ E&M㈜

주관: 오픈리뷰㈜


 

<미드썸머>,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에 이어 오디뮤지컬컴퍼니 10주년 기념 공연 ‘아주 특별한 2인극 시리즈’ 세 번째이자 마지막 리스트 <블루룸> 막이 올랐다. 앞선 두 작품이 각각 코믹 음악극으로 사랑을, 잔잔한 드라마 뮤지컬로 우정을 다뤘다면, 정통 연극으로 성性을 다루면서 시리즈마다 변별점을 확실히 둔 편이다. 다만 <스토리 오브 마이라이프>는 2인극 시리즈와 별도로 작년에 초연을 올린 작품인데다 <미드썸머>를 4월 29일에 무대에 올리면서 10월 29일에 개막한 <블루룸>이나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2011/10/26 ~ 2012/04/29)와 비교해 6개월 이상 시간을 두고 있어, 시리즈로 연계성을 이해하기에 특별히 관심을 두지 않은 이상 관객 입장에서 ‘2인극’을 중심에 두고 시리즈별 특징을 비교해서 즐기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2인극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2년 전에 우리극연구소가 ‘윤무(輪舞)’라는 제목으로 무대에 올렸고, 아르투어 슈니츨러가 쓴 원작 독어 희곡 제목 ‘라이겐’을 그대로 타와 올해 3월 극단 수가 재해석해 공연을 했다. 굳이 구분을 하자면 <블루룸>은 총 10명의 배역이 필요한 원작을 데이비드 헤어가 각색한 미국버전 2인극으로 바뀐 <블루룸>(1998)을 모태로 삼았다. 초연 당시 샘 멘데스 연출에 니콜 키드먼 출연으로 엄청난 화제를 모았고, 한국 초연에 앞서 13년 전 배경 얘기가 새삼 다시 기사로 올라왔다. 여배우는 전라를 감수한 연기로 상을 받았고, 연출은 1년 뒤 뉴욕포스트로부터 '극소수로 잊히지 않는 걸작들이 있는데, 이 영화가 그들 중 한 편'이라는 찬사를 받은 영화 데뷔작 <아메리칸 뷰티(1999)>를 찍었다.

 

 

 

이러다 보니 <블루룸>은 앞선 시리즈 두 작품에 비해 공연 시작 전부터 19세 미만 관람불가이자 유명 영화배우들의 출연으로 많은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13년 전에 비해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 송선미는 인터뷰에서 본인이 말했듯 니콜 키드먼이 아니고, 김태우는 이아인 글렌이 아니며 이안규 연출은 샘 멘데스가 아니다. 하지만 화제를 모은 그 틀을 유지하고픈 의지를 드러낸다. 만약 송선미나 더블 캐스팅 송지유가 전라로 연기를 했다면? 충분히 화제를 끌었겠지만 13년 전 작품의 답습이라는 오명을 들었을 지도 모르겠다.

 

초연 즈음에 송선미 출연작으로 작품을 봤다. 179cm 니콜 키드먼 못지 않게 늘씬한 송선미는 무대에 선 자체로 볼거리를 선사한다. 문제는 니콜 키드먼과 달리 그녀가 옷을 벗지 않는다는 데에 있는 게 아니라, 조율이 좀 더 필요한 프리뷰라고 감안을 할 수 있지만 1인5역이 다소 버거워 보였다. 그리고 2인극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무대 앞뒤와 좌우 폭을 넓게 사용하는 연기에 아직 익숙지 않아 보였다. (연극은 영화와 달라서 마지막 공연을 보지 않은 이상 연기 평가에 조심스러운 편이다.) 니콜 키드먼이 전라 연기를 했다지만 영상자료를 보지 못해 평가하기 힘들지만, 그 미묘한 관계를 다룬 1인5역을 제대로 소화할 수 있는 배우가 누가 있을까 떠올리면 송선미를 두고 문제 삼을 일은 아니다.

 


 

접는 손거울 구조인 무대와 천정은 귀족 부인이 감옥에 갇힐 때 마지막 위안 대상으로 자신을 삼아 꼭 가지고 들었다는 일화처럼 여자가 죽기 직전까지 꼭 품고 다닐 수밖에 없는, 허영이라고만 볼 수 없는 특유의 본능이 다층적 의미망으로 작품과 어울린다. 하지만 카메라 워크에 익숙한 배우들이 꽉 짜인 연극 동선으로, 경사진 무대 위에서 연기를 하려니 불안해 보이는 게 당연하다.

 

섹스를 할 때 남자에게 최악인 여자는, 그 반대도 마찬가지지만 다른 생각을 하는 여자다. 그녀들이 본능적으로 오르가즘 연기를 하는 건 다 이유가 있다. 짧은 시간 안에 옷을 갈아입고, 다른 인물이 되어 무대에 오르려면 어쩔 수 없지만 조급함이 보인다면 ‘섹스’는 다큐가 된다. 홍상수 감독의 팔색조와 같은 페르소나 라인에 속하는 인물 중 한 명인 김태우 특유의 찌질남 스타일로 풀어내는 연기가 영화와 다르게 무대 위에서 밋밋하게 다가온다면 송선미에게 무리가 있어 보인다. (공연 개막하고 어느 정도 시일이 흐른 뒤 본 송지유 연기에서는 송선미가 엿보였지만 확실히 몸에 익은 뒤라 불안감이 덜하다. 김태우 역시 여유롭게 무대에서 중심을 잡았고, 연출 역시 몇몇 장면에서 신경을 쓴 부분이 보였다.) 하지만 벗지 않아도 섹시하고, 귀여운 송선미의 매력을 느끼기에는, 남자 입장에서 충분하다.

 


 

남녀 둘만 있는 공간, 5쌍마다 비슷한 듯 제각각인 상황과 사연은 10분 남짓 시간 사이를 두고 전후 관계를 포착한다. 짧게 요약한 남녀 사이 줄다리기 과정은 시대나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작가가 포착한 결론은 우리가 사자의 서열에 관심이 없듯이, 복잡하다면 한도 없는 직업, 나이, 위치에 따른 구분은 무의미하다. 그래서 동물의 왕국의 번식 장면을 볼 때와 감흥이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그 길지 않은 시간을 두고 성기의 크기와 굵기 몇Cm를 두고 자괴감을 느끼거나 말거나 A컵과 B컵 사이 수술을 하거나 말거나 결국 실행을 하고야 만다. 결국은 섹스를 하고 만다는 전제 하에 긴장감이 없는, 혹은 덜어낸 구조는 지루해질 여지가 많다.

 

미미 인형의 집 세트를 보듯, 혹은 애완동물을 키우는 세트를 보듯 간단하게 꾸민 무대는 관객에게 몰입 대신 관찰자 입장에서 보도록 이끈다. 한 장(섹스)이 끝날 때마다 조명을 무대 밖으로 쏘아 섹스를 나눈 시간을 명시하면서-삽입 시간 기준인데, 남성 시선으로 작품을 보고 있다고 볼 수도 있지만 정서를 배제한 생식의 기준으로 본다고 보는 편이 좀 더 정확하다-관계를 수치화한다. 무미건조한 관계를 드러내는 한편, 무대 밖으로 관객의 시선을 유도해 몰입을 막는다. 그러나 연출 의도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 작품이 아쉬운 부분은 에피소드 사이 배우들을 통해 전달되는 남녀 사이 사회적 격차에 따른 미묘한 차이가 잘 전달되기 않는 데에 있다. 계급 사회였던 원작 배경과 달리, 천민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부자 혹은 지식인은 더 이상 우러러볼 대상이 아니라, 대비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조롱거리로 전락한지 오래이다 보니 에피소드마다 동격이 아닌 입장 차이에 따른 섹스(권력)의 주도권을 쥐고 벌이는 상황이 대비가 되지 않는다.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창녀로 막 들어선 거리의 소녀 이렌느가 등장하면서 돌고 돌면서 추는 윤무, 고리를 타고 연극의 끝은 다시 시작과 맞물린다. 모든 배역이 두 번씩 등장하는 기계적 구성을 따른다고 볼 수 있지만 이렌느는 가식과 위선을 드러낸 윤무가 지옥도로 변하지 않은 이유, 즉 그럼에도 우리가 사랑을 하는 이유를 보여준다. 약에 취해 섹스를 했는지 기억조차 못하는 ‘기계’가 된 귀족 말콤은 “섹스를 하지 않고 돈을 준 경우가 있는가?” 돼먹지 않은 주접에 가식을 떨지만 이렌느는 그런 그에게 다른 춤을 권하듯 진정성을 두고 받아들인다. 시간 전개 상 1년 전인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만난 하룻밤 상대였던 택시기사를 그녀가 기억하고 언급하는 이유는 그를 ‘돈’으로만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섹스가 사랑은 아닐 수 있고, 아니기도 하지만, 둘 사이 농밀한 관계라는 건 분명하지 않은가. 점점 빨라지는 죽음의 윤무가 아닌 이렌느의 우아한 춤을 통해 속도를 늦추고 우리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사는지 되돌아 볼 여지를 주는 셈이다. 작품 결론이 (원작에 따라 어쩔 수 없이) 구식이기는 하지만 위안과 위로를 받았던 그 밤들을 떠올리면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사진출처 - 오픈리뷰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