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반성_한예종] 왜 넷은 아니고 여섯이 아니며 다섯인가

구보씨 2011. 12. 8. 12:01

제목 : 2011 연극원 스튜디오 공연 전문사 연출Ⅰ <반성反省>

기간 : 2011.12.08(목) ~ 2011.12.10(토)

장소 : 한국예술종합학교 실험무대

출연 : 김보경, 김한나, 김한수, 신정식, 이서준

원작 : 김영승

각색/구성 : 공동 작업

작/연출 : 전진모

제작 :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1987년에 초판을 찍고, 2007년에 다시 찍은 <반성>은 김영승 시인이 오로지 ‘반성’이란 제목을 붙인 시들로만 한 권을 채운 시집이다. 새삼, 2007년 재출간이 정권 교체가 된 해라는 연상 작용이 설핏 먼저 꾸물꾸물 드는 건, 출판사의 저의가 무엇이든 시대와 박리된 개인사에 대한 불안이 작용한 미필적고의라고 봤다는 게다. 시집이 나올 때 즈음 태어난 이들이 <반성>을 잡고 연극으로 올렸다.

 

연극이란, 참. 학생 연극이란 더욱이 체계가 잘게 나뉘기보다는 한 묶음으로 가는 경우가 많으니 이들이 공유하는 연극 <반성>은 시를 대사로 차용했고, 의상이나 무대나 소품도 지극이 아날로그적이되, SNS의 수없이 오르내리는 몇 줄 독백처럼 더 차갑게 다가온다. 어쨌거나 세대가 달라져도 위로를 받을 창구는 ‘술’이다.

 

반성 16

 

술에 취하여

나는 수첩에다가 뭐라고 써놓았다.

술이 깨니까

나는 그 글씨를 알아볼 수가 없었다.

세 병쯤 소주를 마시니까

다시는 술 마시지 말자

고 써 있는 그 글씨가 보였다.


수첩과 펜 대신 휴대폰을 든 장삼이사들은 당최 알 수 없는 깨달음이렷다. 반성이라는 표제를 달았으나 우리가 아는 반성의 의미보다 외견상 룸펜의 일상을, 속내는 상처 났던 흔적이 사라지기 전에 남긴 기록인 만큼 그 두루 끊어지는 일관되게 이어지는 시로 풀어쓴 이야기들은 초판 당시 외설 등 시비가 붙었을지언정, 두루 세파에 먼저 매를 맞는 누구를 뒷줄에 서서 바라보는 심정처럼 위로를 준다.

 

그러니 연극으로 옮긴다고 소식에 궁금할 밖에. 그 시도가 좋고, 심지어 언론에서도 슬쩍 언급했으나 무덤덤하다. 요새 보면 너무 약은 듯한 조로한 청춘들 모습에 가슴 아프지만, 한 것도 없이 룸펜 비슷한 기성세대가 되어가는 내가 보기에 죄송스럽지만, 세상에 내던져진 채로 알몸처럼 견디는 20대의 치열함으로 ‘어머니 뒷바라지로 사는 하릴없는 청춘’인 작품 작자를 그렇게 한정한다고 해도 연극에서 그 서러움이 서러움에 치받쳐 토해내는 시적 읊조림이 잘 와 닿지 않는다. 젊은 관객들은 좀 다를까, 싶은데 비슷비슷하다. 시를 대사로 차용하는 시도는 한편 기존 연극 틀의 속박에서 벗어난 실험일 수 있지만, 그 안에 치밀한 구성과 장치를 깔지 않는 이상 안이한 복제라는 품평을 받을 위험도가 높다.



 

등장 인물은 왜 넷은 아니고 여섯은 아니며 다섯인가? 학교 연극제작의 틀 안에서 뜻이 맞는 이들과 함께한 자리이든, 무대의 한계이든, 관객이 볼 때 기초적인 의문이 생겨서는 곤란하다. 구어(句語)와 문어(文語) 차이가 그러한데, 김영승 시가 덜하다고 해도 시는 곱씹는 과정이 필요한 바, 흐르는 대사로 옮기는 과정에서 추리고 다듬고 불리는 과정이 필요하다.

 

연극으로 미술, 장치, 음악이 어떠했든, 완성도를 따지기 전에, 시인으로 사는 아득한 삶이 시집 <반성>이 되어 나왔듯이, 예비 연극인으로 절망과 부대낌과 두려움만이라도 순도 높게 다가왔으면(의도나 연출이나 연기가 그렇지 않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하는, 그래서 지금 못내 두려움을 드러내기조차 두려워하면서 스스로를 속이는 나에게 찡하게 다가왔으면 했다. 팸플릿에 실린 연출과 배우들의 글에서 그런 단초를 찾는다. 1시간 남짓 공연이다. 아버지 세대가 쓴 시를 재발견하는 의미만은 아닐 것이다. ‘시를 찾아 읽겠다’는 생각이 들 때, 이 연극이 문장 앞에 ‘차라리’ 보다는 ‘보고나니’라는 수식어가 달렸으면 좋겠다.*


추신 : 외부인으로, 한낱 관객으로 이 연극과 올해 한예종 재학생, 졸업생들의 안타까운 일화를 연결 짓는 건 조심스럽기도 하고, 하릴없는 망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시대의 고민을 안기에 앞서 동료들의 고통과 고독을 먼저 떠올리는 건 어쩌면 연극을 만드는 이들로 당연하기도 하다. 올해 마지막 발표작인가 싶다. 석관동 캠퍼스는 춥고 을씨년스럽다. "슬프지만 외롭지 않다"는 추도사가 떠오른다. 지하 작은 소극장에 배우와 관객으로 모여 데우는 온기처럼, 그들이 끌어내는 사람과 사람 사이 그 힘을 믿는다.


사진출처 - 한예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