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11 연극원 스튜디오 공연 전문사 연출Ⅲ : 달나라 연속극
기간 : 2011. 6. 9(목) ~ 2011. 6. 11(토)
장소 :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실험무대
작가 : 김은성
연출 : 부새롬
출연 : 성여진 장인섭 김민경 민진웅
제작 :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장르가 무엇이 되었건, 신파를 좋아하지 않지만 특히 젊은 연극인들이 만든 신파극은 더욱 그렇다. 소시민의 지난한 삶을 다룬 신파극이 종종 눈에 들어오나 역시 잘 안 보는편이다. 대단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고 세월의 흔적이 묻은 작품이야 나이가 들면 절로 배어나올 때가 있으리라 여긴 탓이다. 라디오 청취자 소감도 아니고, 따뜻하게 다룬답시고 어설피 껴안았다가 이도저도 아닌 꼴이 볼썽사나워지는 경우를 종종 봐오기도 했다. 요 사이 신시컴퍼니가 <엄마를 부탁해>를 연극과 뮤지컬로 만들면서 신파극 대세인가 싶지만, 사적 공적 경계를 영민하게 줄타기하는 이 작품은 깍쟁이 같아 좋아하지 않는다. 아무려나 살다보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나이에 따라 대들고 싸워야 할 때가 있고, 화해하고 보듬어야 할 때가 오는 법이다. (좀 더 겪어봐야할 게 많다만)
관객 제각각 호불호가 어찌되었건, 연극이 상품인 동시에 예술로 가치가 강하게 남은 장르라면, 어떤 식으로든 끝까지 밀어붙일 때 감흥이 솟기 마련이다. 대본, 연출, 연기가 뭐가 되었든 어중간할 때 관객은 당황하거나 지루함에 빠진다. 연희단거리패의 연극은 대표 이윤택 성향에서 기인한 부분인지, 무슨 주제로 무슨 이야기를 하든 배우들이 정색을 하고 지독하게 관객을 밀어붙인다. 객석과 무대 사이 경계가 없는 게릴라 소극장은 늘 기대치 높은 관객과 배우 사이 팽팽한 긴장과 대결이 벌어지는데, 너무 진지해서 실소가 터질 대목도 배우들의 기에 눌러 그만 입을 다물고 만다. 그러면서 어렴풋하게 연극이 가진 매력에 빠지곤 한다.
테네시 윌리엄스 <유리 동물원>을 원작 삼아 김은성 작가가 재창작하고 한예종 연극원 전문사 학생들이 올린 <달나라 연속극>은 어떨까. 작품 소개에서 밝히듯, 하루하루 냉혹한 현실에 부딪치는 지난한 삶에 지친 가족에게 위로란 “만자는 은하와 은창의 미래에서, 은하는 끝없는 원주율이야기에서 그리고 은창은 그가 쓰는 시나리오 안”이라는 식의 이루어지기 힘든 환상이라는 전제를 둔 작품이다. 세 식구 지난한 삶은 감정이 촌스럽게 넘치지 않도록 잘 조율하면서 말미 Chubby Checker의 경쾌한 'Let's Twist Again~'과 함게 춤을 추면서 마무리한다. 연극이 끝나고 세트에 별 반짝이는 스티커를 붙여 마지막 암전 뒤에 꿈꾸는 환상이 이 땅에서 이루어질 듯한 희망을 노래하니 먹먹했던 마음이 좀 놓인다. 곧 이어 다리를 저는 장애인 은하 역 김민경 배우가 멀쩡한 다리로 이일영 역 민진운 배우와 나란히 객석 인사를 하니 이성이야 어쨌든 마음 한구석 다행이다 싶다. 하지만 그래서 연극과 다르게 비슷한 처지의 그들이 겪고 있을 현실이 더 삭막하고 시리게 다가온다. 사실 이 작품 전에도 영화, 드라마, 연극에서 늘 "컴온 렛츠 트위스트 어게인~"을 틀어대니, 어느 순간 이 노래가 신나기보다 엘러지처럼 들린다.
김은성 작가가 적길 ‘모든 슬픔은 그것을 이야기로 만들 때 견딜 만해진다. 그러니 우리, 춤추고 노래하자’고 한다. 하지만 같은 시간 워크샵이 아닌, 김은성 작가의 작품으로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한 <연변엄마>를 보면 두 작품은 아버지의 부재, 비정규직 엄마, 장애인 딸(아들-연변엄마), 일용직 아들(매춘부 딸-연변엄마)이라는 엇비슷한 가족 구성원으로 출발하나 전개나 결말을 다르게 끌고 간다. 가족이되 해체되기 직전의 구성원으로 한국 사회에서 웃으며 끝날 수 없는 현실을 <연변엄마>은 한국에서 모으려고 했던 아들의 수술비가 ‘0'이 되는 순간을 끝으로 한국에서 쫓겨나는 설정으로 보여준다. 경쟁주의 시대 삭막함, 팍팍함이 한국인이든 연변동포이든 가릴 리가 없다고 보면 사실주의극으로 작가의 개입을 자제한 편이다.
<달나라 연속극>이 겨냥하는 지점 역시 쉬운 결말은 아니었으리라 본다. 굳이 같은 작가를 두고 두 편을 비교하자면 김은성 작가의 세밀한 묘사이자 특징이 중극장 무대에서는 좀처럼 살지 않는다. 에피소드 위주 전개에 따른 잦은 암전으로 다소 산만하기는 <달나라 연속극>도 마찬가지지만, <연변엄마>가 고정 배경이 아닌 탓에 진행이 산만하다보니 1인1역으로 배우마다 캐릭터 집중도를 높였다지만 밀착된 연기가 잘 와닿지 않는다. <달나라 연속극>은 작품의 경계를 외부로 확장하지 않으면서 배경을 옥탑방으로 한정하고 한 가족 구성원 안으로 절제를 하면서 섬세하게 접근한 집중도가 완성도로 이어진다.
학교 워크샵 공연이라고 해도 한예종에서 열리는 연극을 자주 보는 이유이기도 한데, 기성 극단 못지 않게 <달나라 연속극> 역시 배우들 연기가 수준급이다. 캐릭터 해석에 오랜 준비와 정성을 들였다는 게 눈에 잘 들어온다. 무대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지만 극이 시작하고 채 10분도 되지 않아 관객들이 극에 매료된 데에는 배우들의 천연덕스러운 연기 몫이 크다. 동시대 비슷한 또래 연기라고 하지만 그래서 구분점을 두기 힘들 수도 있으나 장인섭, 김민경 배우는 비슷하지만 다를 수밖에 없는 대학생과의 차이, 비장애인과의 차이를 섣부른 갈등이나 과장이 아닌 몸에 밴 듯한 연기로 잘 살렸다.
<연변엄마>처럼 아버지의 부재에 가장 역할을 떠안은 어머니 여만자는 작품의 중심인물이다. 성여진 배우는 기성 극단 작품에서도 눈에 익은 배우로 전형성에 빠지지 않고 개성 넘치는 어머니상을 잘 보여준다. 이층집 대학원생 이일영 역은 선하고 반듯한 듯하지만 고정 틀에 따라 사는 모습이 대립 구도로 그려지다 보니 캐릭터를 잡기가 쉬운 역할이 아니다. 배우의 행동, 눈빛, 대사 톤에 따라 관객이 받아들이기에 다른 식의 해석의 여지가 보일 수 있는데, 평범한 듯 세련되게 민진웅 배우가 잘 소화했다.
앞서 신파극 운운을 했던 이유가 부새롬 연출의 이전 작품이 하필 <찌질이 신파극>이어서는 아니다. 김은성 작가와 동명 작품으로 호흡을 맞춘 적이 있다는 것도 연극을 보고난 뒤 리플렛에 실린 그녀의 필모그래피를 보고 알았는데, 극작과 연출이 잘 삭혀서 조율이 잘 된 인상을 받은 이유가 있었다. <달나라 연속극>을 보면 초창기 박근형 작품들이 떠오른다. 요 근래 본 박근형 작품에서는 확실히 신파적인 요소를 덜어낸 느낌인데, 어쨌거나 연극이 세미나가 아닌 이상, 또 나처럼 어쭙잖게 알지도 못하면서 연극을 머리로 먼저 보려는 관객들에게 균형을 잡아주기 위해서라도 가슴을 후벼 파는 작품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보다 깊은 내공이 필요하기도 하다. 앞으로 부새롬 연출의 행보를 봐야겠지만 김은성/부새롬 만남이 고연옥/김광보 만남처럼 개성이 뚜렷하면서도 두루 균형을 맞춰 가면서 좋은 호흡으로 연극계를 이끌어주길 바란다.*
사진출처 - 달나라 연속극 까페(http://cafe.naver.com/mooooooooon)
'연극' 카테고리의 다른 글
| [품바_2009 / 2011] 품바 30주년 소식에 소회가 (0) | 2011.06.16 |
|---|---|
| [보이체크] 몸과 몸이 다시 만나 겨루는 (0) | 2011.06.15 |
| [못생긴 남자] 깔끔하게 풀어낸 (0) | 2011.06.05 |
| [유년의 뜰_혜화동1번지 봄 페스티벌] 물 밑으로 난 길 어귀, 대추나무 한 그루 (0) | 2011.06.03 |
| [데모크라시DEMOCRACY_한예종] 무대와 객석의 멋진 전복 (0) | 2011.06.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