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사람을 찾습니다] 괴물의 정체가 드러내는 전단지 혹은 거울

구보씨 2009. 9. 30. 14:41

이서 감독의 영화 '사람을 찾습니다'(제작 슈픽처스)는 리뷰에서 소개한 2009 제10회 전주국제영화제 장편경쟁부문 최우수작품상 'JJ★상' 외에도 제50회 그리스 데살로니키 국제영화제에서 '예술 공로상(Artistic Achievement Award)'을 수상했습니다.  당시 기사를 옮겨보면 '칸과 베니스에 이어 유럽의 가장 유서 깊은 영화제로 꼽히는 그리스 데살로니키 국제 영화제 본선 부문에 초청된 '사람을 찾습니다'는 지난 12일부터 상영을 가졌습니다. 


이서 감독과 주연배우 김기연이 참석한 가운데 유럽 관객들에게 첫 선을 보인 '사람을 찾습니다'는 견고한 배우들의 연기와 독창적인 연출력으로 그 탁월한 작품성을 인정받아 예술 공로상을 수상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연출을 맡은 최무성 씨는 영화배우로 종종 스크린에서 뵙는데요. 흠... 연극은 언제 다시 올라갈 지 모르겠지만, 영화는 구해 보셔도 후회는 없을 듯합니다. [2012.11.30]

 

제목 : 사람을 찾습니다

기간 : 2009.09.30~11.01

장소 : 아트 씨어터 문

원작 : 이 서 / 영화 ‘사람을 찾습니다’(Missing Person)

출연 : 최무성, 김욱, 이은미, 문석희, 안상우, 황배진, 조상영, 신세희, 조연정, 김정석, 홍석빈, 김채린

연출 : 최무성

각색 : 김학선

제작 : 극단 소울메이트



이 서 감독의 영화 <사람을 찾습니다Missing Person>를 원작으로 둔 작품이다. 연극을 영화로 옮기는 과정과 다르게, 영화에서 연극으로 장르를 넘어서는 일은 흔치 않다. 영화의 흥행을 업고 흥행공식에 따라 뮤지컬로 재가공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마케팅, 스타시스템 등을 배제하고 오로지 배우의 연기력으로 승부를 거는 소극장 무대로의 회귀는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

 

영화 시나리오를 원작 삼은 연극이니 영화보다 먼저 나올 수 있을 리가 없다. 영화 ‘사람을 찾습니다’는 2008년 작품이지만 개봉 전이다. 인디스페이스(명동 중앙시네마 3관)에서 12월 18일, 그나마 올해를 넘기지 않고 개봉을 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작은 공연장에는 한글이 아닌 영어로 된 영화 팸플릿이 놓였다. 작년 제 10회 전주국제영화제를 대비해 만든 것일 게다. 이 작품이 장편경쟁부분 최우수 작품상인 'JJ★상'을 받았음에도 개봉이 미루어지는 건, 하나마나한 소리다. 아무려나, 흔히 독립영화라고 말하는 저예산 영화가 모태인 ‘사람을 찾습니다’는 연극으로 먼저 찾아왔다. 영화가 좋다는 반증으로 봐도 좋을까, 그렇게 믿고 공연장을 찾아갔다.

 

소극장 아트 씨어터 문은 대학로에서도 외진 곳에 있다, 사람을 찾습니다의 군상들이 사는 곳처럼. 정신연령이 낮은 규남은 전단지를 붙이는 일로 겨우 살아간다. 규남의 손에 한 뭉치 복사한 전단지가 주어지기까지 부동산업자 원형이 사이에 있다. 손님과 규남을 잇는 단순하고도 대수롭지 않아 보이는 유통 과정은, 사람들과 연결고리가 부재한 규남에게는 도저히 뛰어넘을 수 없는 벽이다.

 

규남은 동네의 일원이지만 존재하는 않는 자, 더 나아가 존재가 부정당한 자이다. 소통 불능의 세상에서 규남이 기댈 사람은 오로지 원형 한 사람 뿐이다. 착취 구조의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정석을 보여주는 원형과 규남의 관계는 주인과 노예 관계를 넘어선 주인과 애완동물의 관계이다.

 


 

문제는, 원형이라는 인물이 연극으로 드러나는 규남에 대한 일방적 폭력과 착취 관계 이외에 ‘적당한’ 선을 유지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유부남인 그는 부동산 사장이자, 집안의 가장 역할에 충실한 편이다. 술집 여급 출신 인애와 따로 살림을 차리거나 고등학생인 다애와 원조교제를 하는 등의 삽화는 수컷의 본능에 충실한 원형의 모습이다. 하지만 인애와 원형 / 다애와 원형의 관계는 성을 사고파는 흔한 등식이지만, 등장하는 삽화는 그들 사이 끈끈한 정이 엿보인다.

 

원형이 나름 동정심도 있고, 인간적인 구석도 있는 인물로 그려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성을 착취하는 구조는 맞지만 갈취를 하거나 사기를 치지는 않는다. 다애는 원형을 쫓아다니고, 인애는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원형이 원망스러울 뿐이다. 애증의 관계다. 그리고 대가를 지불하는 식으로 이들의 관계는 무리 없이 유지된다.

 

연극에서는 드러나지 않지만 이런 관계는 원형과 규남의 관계에서도 어느 정도 성립될 것이다. 이는 우리가 상상하는 악이란 100% 까맣다고 여기지만 실체는 그게 아니라 얼룩덜룩하다는 것이다. 심지어 얼룩은 감추어지거나 지워지거나 하면서 본질을 명확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원형을 위해 죄책감도 없이 충실하게 사람들을 지워나가는 규남 만이 순결하고 떳떳한 악이다. 순결에 대한 배신은 씻을 수 없는 죄가 되고 원형은 규남의 손에 죽고 말지만, 뒷맛은 통쾌한 복수와는 거리가 멀다. 떫고 아리다.

 


 

규남은 살기 위해서 새로운 주인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어쩌면 더 독한 놈을 만날 수도 있다. 적어도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수평 관계를 맺을 수 없는, 오로지 수직 구조 안에서 낮은 자리에서 살아온 규남을 만나는 순간, 누구라도 악에 대한 본성이 눈을 뜨게 된다는 것이다. 연극 말미에는 쌀집 사장이 그 역할을 맡는다.

 

마치 규남 자체가 문제가 있다는 듯이 썼다. 영화에서 주연을 맡은 김규현(영화에서는 본명을 그대로 사용)의 강인한 첫 인상과 다르지만 연극에서 김욱 역시 미욱하고 사회적응을 하지 못하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다. 고유명사가 아닌 일반명사 쯤으로 '노숙자' 등으로 구분되는 이들을 나를 비롯해 '그들은' 차갑게 외면하고 회피하지만 그렇다고 규남이 나쁜 놈은 아닐 것이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 속에서 스스로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가 괴물의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본다면, 그 심연 또한 우리를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니체가 한 경고를 두고 비유하자면 규남은 사회와 내면을 비추는 심연, 다시 말해 거울이다. 거울을 두고 죄를 따져 물을 수 있는가. 규남이 붙이고 다니는 전단지는 곧 거울의 상징이다. 규남의 살인이나 폭력은 몇 가지 안 되는 살아가는 공식에서 가장 유효한 방식이다. 나를 규정하는 것들이 없는 이상 살생이나 수간이 그 자신에게는 당연한 공식이다.

 


 

김욱, 문석희, 안상우, 이은미 등 노련한 배우들의 연기는 ‘날것의 생동감을 느낄 수 있게 연기술에 의지하지 말고 자연스럽고 거친 호흡과 몸짓을 추구’하라는 의도를 잘 따랐다. 발성도 그렇고, 연극보다는 영화를 대하는 태도일 텐데 주효했다. 실제와 모방이 거의 겹친 듯 생생하다.

 

원형 역 더블캐스팅으로 김정석 대신 무대에 오른 연출가 최무성은 시점이 자유로운 영화를 모태로 둔 한계를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내려고 노력했으나, 그가 취한 원경과 근경의 조절, 다양한 미술 변화 등 영화적 기법 차용은 소극장의 한계랄지 크게 두드러지지는 않는다. 연출이자 배우인 그 자신부터, 배우들의 힘이 강한 극단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집 안과 집 밖, 문 하나를 사이에 둔 세상에 대한 바로보기가 돋보인다. ‘누군가는 그냥 스쳐 지나가지만 누군가는 나의 뇌리에 깊숙하게 박혀 하루 종일 내 입을 간질인다. 소울 메이트는 일상의 진솔한 모습을 표현할 수 있는 극단이 될 것’이라는 극단 소울 메이트의 출사표는 유효하다. 내용도 그렇지만 극단 동승무대의 <청춘예찬>과 인상이 겹치는데, 배우들의 모습에서도 왠지 그 쓸쓸함이 엿보인다. *

 



사진출처 - 극단 소울메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