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보니 보통 아이들과 함께 온 부부나 커플이 대부분이 극장에 저만 혼자 앉은 남성 관객이었습니다. 흠... 어찌보면 공감대나 소통이 부족할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만, 나름 직장에서 벌어진 이런저런 일을 계기로 이래저래 남녀 차별 문제에 관심을 갖다보니 보는 내내 재밌고 유쾌했더랬습니다. 요즘이라면 배우 2명이 연기하는 인형극이라면, 바쁘다는 핑계로 혹은 좀 더 그럴듯한 작품을 보겠다는 생각으로 보지 않았을지 모를 작품입니다.
연극이라는 게 뭘 좀 안답시고 판단하는 게 아니라는 걸, 홍보마케팅을 거의 하기 힘든 작은 소극장 공연에서 소름이 좍좍 돋는 경험을 했으면서도 여전히 기성 사회의 눈으로 공연을 보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해봅니다. 오늘자 기사 '한국, 노인 경제활동이 청년보다 높은 유일 국가'가 눈에 들어옵니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결국 출산율과도 이어지는 문제겠지요. 이래은 연출가 자신의 이야기를 담았다는데, 한국 여성 초산 연령이 '30.25세'라고하니 새삼 사회적으로도 두루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는 작품이네요. 훗! 다시 자료를 찾아보니 이때 노회찬 의원이 왔었네요. 아리랑아트홀은 노회찬 의원의 지역구인 노원구에서 가까운 성북구에 있기도 합니다. 오랫동안 엄한 사람에게 자리를 내줬다가 이번에 되찾았지요. 앞으로 좋은 의정 펼치시길, 특히 이렇게 사진을 찍으셨으니 여성/육아 문제에도 적극 활동해주시길 바랍니다. [2012.07.06]
제목 : 서른, 엄마
기간 : 2009년 09월 11일 ~ 2009년 09월 27일
장소 : 국립극장 별오름극장
출연 : 이미라, 이종무
작/연출 : 이래은
기획 : 예술극장 나무와 물
제작 : 달과아이극단
“엄마가 되면 행복감에 젖을 줄 알았는데 행복만큼이나 혼란과 두려움이 엄습했습니다. 모성애를 강요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고 스스로 엄마가 될 준비가 부족했음을 알게 되었죠. 해답을 찾기 위해 어린 시절을 돌아보는 엄마들의 이야기입니다.”
인형극 <서른, 엄마>는 이래은 연출가가 자신이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풀어낸 아기자기한 인형극이다. 아빠에게도 부성애라는 막중한 책임이 따라오지만, 엄마가 되는 순간에 여성이 짊어지는 ‘모성애’에서 비롯된 책임은 ‘숭고’, ‘조건 없는 희생’ 등 자칫 사회가 강요하는 틀에 속박당해 평생 올무가 되기 쉽다. 무지막지한 그 무게라니, 내가 남성인 이유도 있겠지만 도저희 부성애가 감히 따라갈 엄두를 내기 힘들다(라고 생각한다). 뭐, 생태계를 봐도 보통 암컷이 수컷보다 자식애가 강한 게 사실이라지만 그거야 동물들 얘기, 왠지 사회적으로 모성애라는 단어에 여성에 대한 굴레를 씌운 듯하다. 하지만 부모, 자식 간의 사랑을 생물학적이나 정치적으로만 접근해서 될 일은 아니다.
이미라와 이종무, 두 배우는, 자신들을 꼭 닮은 인형 부부를 통해서 태어난 아기가 무조건 행복을 주지만은 않는다는 이야기를 아기자기하고 재밌고 유쾌하게 풀어낸다. 인형극으로 풀어내고 보니, 부모의 눈으로 볼 때, 시시각각 변하는 아기, 즉 천사였다가 괴물이었다가 깡패였다가 떼쟁이로 변하는 순간순간을 각각 캐릭터에 맞게 만든 인형으로 위트 넘치게 표현했다. (아기와 엄마와의 관계는 어느새 때때로 킹콩과 여인으로 바뀌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백일은 아기가 태어난 뒤 백일 동안에 부모가 살아남았다고 축하하는 날이랍니다”라고 자조 섞인 말이 절로 나올 법도 하다. 아빠는 아빠대로 회사에서 파김치가 되어 돌아오니, 육아 문제를 자꾸만 엄마에게 미룬다. 엄마는 긴 세월동안 현모양처의 그늘에서 육아와 살림을 떠맡아온 그 역할에서 과감하게 파업(?)을 선언하고, 무작정 지하철 2호선에 오른다.
부랴부랴 아기를 들춰 메고 따라서 지하철에 오른 아빠와 엄마는 잠시 숨을 한번 고르고, 지하철의 안과 밖의 풍경을 보면서 잠시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순환선인 지하철 2호선이 한 바퀴를 돌아서 다시 처음 올라탄 역으로 돌아오는 데 걸리는 시간이 1시간 25분. 그 짧은 시간 동안 아직 어설프고 서툰 젊은 부모는 자신들도 아기 때에는 역시 마찬가지였으며, 부모님들 역시 그 쉽지 않은 고생을 하시면서 자신들을 키워주셨다는 데에 생각이 이른다.
지하철 안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제각각 바쁘게 살고 있지만, 고개를 돌려 지하철 창밖을 바라보면 유유히 여유롭게 흐르는 한강이 보인다. 이렇듯 삶이란 어느 한 쪽 면만을 보고 살 수는 없고, 또 한 쪽 면만 있지도 않다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 이런 경험은 다시 일상으로 되돌아와, 엄마 혼자 육아를 책임지는 상황이 되는 게 아니라, “애 둘을 키운다”는 푸념을 듣기 마련인 아빠가 육아와 살림에 보다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계가가 될 것이다.
자칫 이분법으로 나뉘거나, 훈화조, 교훈조가 될 수 있는 무겁고 민감한 주제를 세심하고 아기자기한 아이디어가 번뜩이는 인형극으로 잘 풀어냈다. 인형극은 아이들만 즐긴다는 편견도 멋지게 깬 <서른, 엄마>는 공연장을 찾은 아이들, 지긋한 어머님들, 젊은 연인, 젊은 부부 등 누구나 즐겁게 즐길 수 있는 공연이다. 공연 시간을 지하철 2호선 운행시간처럼 1시간 25분으로 딱 맞추면 보다 의미가 있겠다 싶은 생각도 있지만 말이다.*
사진출처 - 달과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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