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똥강리 미스터리] 우주에서 폭사한 강아지, 라이카를 기리며

구보씨 2009. 2. 5. 1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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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깐의 본명은 동관이며 성은 조이다. 그럴싸한 자호(字號)가 있을 리 없고 이름난 조상도, 남긴 후손도 없다. 동관이라는 이름이 똥깐으로 변한 데는 수다한 사연이 있어 한마디로 말할 수는 없다. 똥깐의 이야기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달구어지고 이야기 속에서 다듬어져 마침내 그의 짧고 치열한 일생이 전(傳)으로 남기에 이른다. 이름하여 조동관 약전이다.
- 성석제의 소설 <조동관 약전(略傳)>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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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똥강리 미스터리>는 <조동관 약전>과 한 몸을 이루는 얘기다. 소설이 조똥깐이라는 개인의 활약상(?)을 볼록 튀어나온 일대기로 다뤘다면, 연극은 소설 속 똥깐의 도플갱어인 강배를 둘러싼 똥강리 주민들의 우묵하게 패인 반응을 담았다.

 

연극에서 강배는 끝내 등장하지 않는데, 마을의 공동 우물에서 시체로 발견된 인물이 과연 강배인지, 아니면 마을 씨름선수인지는 미지수로 그려진다. 그럼에도 우묵한 자리에는 여전히 뭔가가 고이든 고여 있기 마련이다. 우묵함은 당장 눈앞에 보이지 않아도 생래적으로 강자의 눈치를 보게 되어 있는 약자의 성정일 수도 있으나, 그 고인 자리에 꿀물이 차고 넘친다 한들 섣불리 차지하려 들었다가는 자칫 파리지옥으로 돌변할 수도 있는 것이다.

연극에서는 마을의 식수원인 공동우물이 파리지옥을 상징한다. 우물에서 발견된 시체가 물에 불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는 설정은, 똥강리 주민들이 설사 모르고 그 물을 마셨다고 해도 미필적 고의로 벌인 살인을 과실치사 정도로 낮추었다가 아예 그 죽음을 덮으려는 암묵적 동의, 즉 시쳇물을 마심으로 동맹을 맺은 상황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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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지고 파는 장사꾼은 없다
“연극인데 영화 같기도 하고 드라마 같기도 하고 친근하게 다가왔어요.” 글쎄, 연극 <똥강리 미스터리>를 두고 한 나름 칭찬인 평가를 두고 덩달아 고개를 끄덕거리자니 다소 껄적지근하다. 지난 23년 동안 연극만을 고민 & 고집해왔던 극단 ‘작은신화’의 입장에서는 듣기 거북한 말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바로 이어지는 말인즉 이러하다.


“배우들의 표정 하나하나 말투 하나하나 보통 정성이 아니었어요. 웃기기도 하고 어쩜 다들 진짜 똥강리 사는 사람들 같더군요.” 관객 평을 보면 사실적이라는 칭찬을 하려고 영화나 드라마를 들먹인다. 과연 연출의 역할이 극대화된 영화나 드라마가 연출의 개입할 여지를 최소화한 연극보다 사실적인가라는 논의는 뒤로 하고, 어쨌거나 그럴듯하다는 얘기일 텐데 이는 곧 극적 사실성이 곧 작품 몰입도로 이어지고 보면, 상찬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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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소극장 공연치고 14명의 배우가 등장해서 120분을 꽉꽉 채우니 <똥강리 미스터리>는 본전을 톡톡히 뽑고도 남는 알찬 공연이다. 배우진과 공연 시간으로만 보자면 거의 중급 뮤지컬 이상의 규모이다. 더군다나 대형 무대와 소품과 춤과 노래의 힘을 업지 않고 작은 소극장에서 연기력이라는 본연의 내공으로만 120분을 버틴다는 자체로도 재미를 떠나 박수를 받을 일이다. 


근데 이건 관객 입장이고 극단 입장에서 보면 이건 영 “밑지고 파는 장사”다. 게다가 고3과 대입 수험생한테는 이벤트(단독 이벤트는 아니고 대학로 페스티벌 참가작이다)를 통해 표를 공짜로 나눠준다. 것도 1인 2매다. 이건 뭐, 수상쩍기까지 하다. 1969년을 배경으로 1999년, 2009년에 올렸으니 아홉수가 제대로 낀 연극이랄까. 허나 밑지고 파는 장사꾼이 없다는 건 세상 이치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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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판을 키우자!
밑지는 장사를 하지 않는 건 이문을 남겨야 하는 장사꾼들 얘기다. 요즘 경기 불황의 여파이지 싶게 연극 무대로 돌아오는 유명 배우들이 종종 눈에 띈다. 그들의 선택을 탓하려는 건 아니다. 오비이락 격인이지만 기본에 충실하겠다는 그들의 행보가 연극의 활성화에 도움이 되면 됐지, 해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관객의 기대 역시도 주연급 배우의 주연급 무대를 기대할 것이다. 그래서 딱히 주연이 없는 <똥강리 미스터리>에는 출연 가능성이 낮을 수밖에 없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똥강리 미스터리>는 연극의 재미와 연극의 우직함, 탄탄함, 노련함을 두루두루 갖춘 기본에 충실한 연극이다. 그리하여 이제 막 연극을 보기 시작한 어린 관객들이 관람 기준으로 삼기에 좋은 작품이다. 역으로 작은신화는 연극을 참맛을 알리고 길들여서 연극판을 키우는 투자를 하는 극단이다. 당장 손 안의 이익을 보지 않는다는 점에서 보면 ‘밑지고 판다’고 해도 맞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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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높이를 맞추는 게 아니라

그럼에도 연극 관람 기준을 기실 좀 높게 잡을 우려가 없지 않은데, 대학로 소극장 공연이 어느 샌가 TV 개그 프로그램을 옮겨온 스탠드 업 코미디나 젊은 층을 타깃으로 한 해피엔딩 사랑 얘기(아무래도 좀 달달한)거나 스크린으로 익숙한 스타 배우를 내세우는 등 연극판을 떠난 관객들의 눈높이를 잡아채기에 급급할 때 <똥강리 미스터리>는 웃기는 대목조차도 선동렬의 직구처럼 묵직한 맛이 있다. 좁은 무대 위에서 오라가 뿜어져 나온달까, 아무튼 “니들이 눈높이를 맞추라”는 주문을 하는 식이다. 뭔 말이고 하니, 공연을 보러온 수험생들이 뭣 모르고 외웠을 연극의 3대 요소 ‘배우, 무대, 관객’에 꽤 충실하단 뜻이다.


연극만의 독자성이라면 역시 눈앞에서 열연하는 현장성일텐데, 한 몸처럼 맞아 돌아가는 똥강리 주민들의 호흡이 한마을 사람들답게 시대 배경인 1969년 당시, 한창 이름을 드높였던 장소팔 고춘자 만담 뺨을 친다. 이는 뮤지컬의 앙상블이나 연극에서 보통 1인 다역으로 처리하는 단역이 없고 14명이 고른 배분과 활약을 펼치다 보니 누구하나 열공 모드가 아닌 배우가 없다. (이 글에서는 '열심히 공부하다'의 준말이 아니라 ‘열심히 공연하다’의 준말로 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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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워크가 빛나는 똥강리 마을
원작으로 삼은 성석제의 <조동관 약전>도 그렇지만 시골마을 똥강리 주민이라는 설정부터 어느 정도 전형적이고 희화적인 캐릭터들이라고는 해도 배우들의 분석력과 연기력이 수준급이다 보니 높은 지점에서 연기 균형을 이룬다. 홍성경(이장 모 役), 임형택(주정배 役) 등 연기의 달인으로 소문난 배우들 말고라도 최현숙(분명택 役), 이은정(정배댁 役) 등 젊은 배우들의 내공 역시 단단하다.


등장인물이 14명이나 되는 탓에 정신이 없다는 관객 평도 있지만 결코 난잡하거나 지저분하지 않다. 팀워크가 좋기로 소문난 이탈리아 국가대표 축구팀의 빗장 수비를 보는 기분이었다. 허나 축구란 게 선수들의 발재주를 자랑하는 자리가 아니고 뭐 같아도 골을 넣어서 이기면 장땡이듯이, <똥강리 미스터리>라는 극 자체가 배우들의 기세에 할 말을 못하는가, 하면 그런 점이 없지 않지만, 이건 분명 미덕이다. 각자 어수룩하면서도 약삭빠른 시골 마을 사람들이라는 공통 분모 안에 캐릭터가 각자 통통 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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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면서도 조화롭지 그지없어
그러면서도 조화롭다. 한 틀 안에 있으면서도 서로 대구를 이루는 인물이 꼭 존재하여 서로를 받쳐보고 보강해주기 때문이다. 물론 그 갈등과 애증 관계의 중심에는 권력과 힘을 지배하는 강배라는 상징으로 대변되는 권력욕이 있다. 첫 장면을 예를 들어 구성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마을에서 이장 집에 한 대밖에 없는 TV에서는 김일의 레슬링 경기가 한창이다. 이날은 공교롭게도 이장 선거를 앞둔 하루 전이다. 3선을 노리는 이장 허봉달은 짜고 치는 게 뻔해도 어쨌거나 이기는 김일의 승리를 자신과 결부시킬 요량이다.

 

하지만 이장 후보인 이분명은 당연히 심기가 편치 않다. 그렇다고 주민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 얼굴 도장을 찍지 않을 수도 없으니 느지막이 나타난다. 은근슬쩍 아들을 거들고 나서는 마을의 최고 어른인 이장 모가 무당의 말에 껌벅 죽을 때마다 독실한 기독교신자인 분명댁은 주님을 찾으면 댓거리를 하는 식이다. 사이가 불편한 건 이들만이 아니다. 늘 술에 취해 사는 주정배를 사이에 두고 정배댁과 술집 주인인 안주댁도 티격태격이다. 그러다가도 김일이 등장하면 사람들은 하나가 되어 환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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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룩해진 똥강리
강배, 혹은 권력의 죽음에 품앗이를 한 셈이 된 똥강리 주민들은 이제 권력의 한축이 된다. 강배를 통해 충분히 그 약육강식의 생리를 특공부대식으로 단련한 이들은 이제 그 맛을 누군간에게 나눠주는 대신 공동의 소유로 품는다. 그 공동의 룰을 지키는 빗장은 '살인‘에의 동참 혹은 암묵적인 시인이다.

마지막, 이장댁에 TV를 보기 위해 주민들이 모였다. 이날은 1969년 7월 16일, 아폴로 11호가 인류 최초의 달 착륙에 성공한 날이다. 착륙하기 좋은 둥근 보름달이어서 다행이라는 둥의 여전히 시골 촌부다운 어수룩한 얘기를 해댄다. 하지만 달에 토끼가 살지 않는다는 게 눈으로 보아서 확연히 드러났듯이, 권력의 속성으로 불룩해진 똥강리 주민들의 속내 역시 확연히 드러난 뒤이다. 이들은 첫 대목에 모여서 김일의 레슬링을 보던 그들과는 전혀 다른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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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술주정뱅이 주정배는 엉뚱한 소리에 제대로 남자 구실도 못하는 처지지만 종종 촌철살인의 말을 내뱉는다. 여전히 술에 취해서 해롱대는 그는 권력에 취한 똥강리 사람들에게 들으라는 듯이 말을 한다. “원래 사람이 아니라 개가 먼저 우주에 갔디야.”  맞다. 최초로 우주에서 지구를 내려다 본 건 인간이 아니라, 인간을 대신해서 1957년 11월 3일, 2m 크기의 스푸트니크 2호에 태워져 발사되었다가 대여섯 시간 만에 스트레스와 우주선의 과열로 죽고, 우주 먼지로 떠돌고 있는 개 라이카(Laika)다. 인간의 욕심을 위한 실험체였던 라이카는 설핏 똥강리 주민들의 속내에 숨어 있던 권력욕을 끄집어낸 강배의 어이없는 죽음과 겹친다. 그러니 결론은 참, 개 같은 세상이랄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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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극단 작은신화(www.zesh.cyworld.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