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국부國父] 모든 독재자는 혁명 영웅이었다

구보씨 2017. 6. 14. 16:37

제목 : 국부國父

일시 : 2017/06/10 ~ 2017/06/18

장소 :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구성/연출 : 전인철

출연 : 유병훈, 조영규, 안병식, 백성철, 이지혜, 권일, 김민하, 윤미경, 하현지

제작 : 남산예술센터, 극단 돌파구

주최 : 서울특별시

주관 : 서울문화재단, 극단 돌파구

 


 

 

전인철 연출은 지난해 ‘권리장전 2016_검열각하’에서 선보였던 <해야된다>의 세 에피소드들 중 하나인 ‘초인’을 발전시킨 무대로 찾아온다. 연출은 ‘검열각하’를 준비하던 중, 2017년이 박정희 대통령 탄생 100년이 되는 해로 한 지자체가 수억의 제작비가 드는 뮤지컬을 제작한다는 기사를 보게 되었고 오히려 ‘내가 먼저 박정희 대통령의 삶을 찬양하는 작품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그가 생의 마지막 순간에 얼마나 의연하고 초인적인 면모를 보였는지 재연하는 작품을 제작했다. 그리고 올해 남산예술센터에서 선보이는 <국부 國父>는 한반도를 둘러싼 거대한 그림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지금의 한국 사회를 구성하는 이데올로기를 들여다보면, 냉전 이후의 남북 지도자는 생존 여부와 상관없이 지금까지도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듯하다. 막강한 위상을 갖고 한 나라의 아버지로 평가되는 남과 북의 두 우상은 도대체 어떤 인물들이기에 이렇게 수많은 찬양의 노래와 텍스트로 남아있는 걸까. 지도자의 신화가 깨진 2017년, 우리는 찬양의 말을 빌려 역설적으로 질문하고자 한다. 그들은 진정한 국부인가? - <국부> 설명_플레이DB

 

 

<국부>를 소개글을 보면 이 작품의 기획 당시 대한민국의 정치사회적 지각변동을 불러일으킨 촛불집회와 장미대선 이후를  예상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작품을 제작하는 몇 달 사이 LTE시절답게 사회 분위기가 180도 달라졌다. 대통령선거(5.09) 직후 정두언 前 새누리당 의원은 아예 대놓고 “박근혜는 정책을 집행할 능력이 전혀 없는 사람이다. 구멍가게도 운영 못할 사람에게 나라를 맡긴 것”이라고 평가했다. 더불어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자 “냉전 시대의 흑백논리, 매카시즘이 등장했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그것 말고는 한 게 없다. 그 사람의 정책을 말하는 자체가 난센스”라고 질타했다. (그는 이명박 계로 박근혜 정부 초기부터 대립각을 세웠던 인물이긴 하다.)

 

박근혜가 ‘구멍가게 운영도 못할 만큼’ 능력이 없다는 게 드러나고, 베일 뒤로  수렴청정한 인물이 있다는 게 드러나  '국모'가 유치장에 갇힌 지금, '국부' 박정희를 되짚는 작업의 (목적이 아닌) 의미는 작년 검열투쟁의 일환으로 올린 ‘권리장전 2016_검열각하’ 당시와도 180도 다르다. 2대에 걸친 대통령 집안으로 삼천리 곳곳 드리워진 박정희 그림자의 실체가 알고 보니, 김기춘, 우병우가 옆에서 거든 최순실이라는 엉뚱한 아줌마라는 게 들통나면서 비루한 실체 역시 다 드러났다. 한때 '국부'로 불렸으나 자식 셋 모두 감방 신세를 질 처지가 되버렸다. 그렇게 죽은 자는 더욱 말이 없는 가운데, 시기로 보면 엇박자로 박정희를 다룬 연극이 무대에 오른 격이다.


 

 

그러자 전인철 연출은 ‘박정희가 아닌 리더에 관한 얘기’라며 요사이 ‘노무현을 신화로, 문재인을 구세주로 떠받드는 분위기를 경계’해야 한다고 한다. 팸플릿과 더불어 배우의 긴 대사로 한나 아렌트가 정의한 ‘악의 평범성’을 풀어낸다. 유태인을 수백만을 죽인 원흉이 알고 보니 평범하고 성실한 사내라는 사례를 통해, 강력한 지도자를 초인으로 생각해서 판단 능력을 거세당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 지 경고를 한다는 것이다. 


“(국민들이 논의 과정이 민주주의의 원칙이므로) 민주주의는 빠르게 일을 처리 못한다. 매우 느린 속도로 차츰차츰 전개되어가는 것이다. 정치에 대한 조급증을 버리지 않는다면 독재에 대한 향수는 언제다로 다시금 부활할 것이다.”  그리고  연극의 핵심을 대사를 통해 짚는다.

 

‘슈퍼맨 같은 대통령을 기대하지 말자’는 극단 돌파구의 당부는 의도치 않게 8일 남짓 짧은 공연 (6.10~18)기간에 인사청문회가 열리면서 박정희 과거사가 아닌 리더의 자질 논란으로 다가온다. 문재인 대통령 공약인 ‘5대 비리(병역면탈, 세금탈루, 위장전입, 부동산투기, 논문표절) 혐의자 공직자 배제 원칙’이 관행이라는 명목으로 허용되어야 한다는 언론, 지식인들이 돌변한 사회적 분위기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 를 두고는 시사 하는 바가 크다. (자유한국당의 몰염치가 반대급부로 한 몫 단단히 하긴 해도 말이다.)

 

  

 

기획 의도와 다르게 ‘작품 속 인물로 다루기에 김일성을 어떤 인물로 평가할 만큼 지식과 경험이 모두 부족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고, ‘국부’라는 타이틀 아래 두 사람을 배치하여 남과 북의 이분법적인 시선으로 작품을 한정하는 것이 기획 의도와 한참 먼 일임을 깨달았다‘는 이유로 김일성을 다루지 못하면서 이 작품을 ‘권리장전 2016_검열각하 Ver 2.0'에서 ‘Ver 1.5’ 정도로 단차를 낮춘 셈이다. 그러다보니 자칫 이 작품이 박정희를 찬양하는 입장을 대변하는 정도에 그칠 소지 혹은 오해가 있기도 했다. 정권이 바뀌면서 이제와 박정희를 비판한다는 게 김 빠지는 일이 돼 버린 격이라 작품 성격이 애매모호해진 셈이다.

 

작품의 최초 의도가 있었고, 그 의도와 다른 결과물이 나오는 와중에 공연 중에 극장 밖 상황이 또 급박하게 바뀌면서 재밌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다른 공연 당시 객석 분위기가 어땠는지 모르겠으나 6월 10일 공연에서는 극 초반, 중반, 후반에 걸쳐 퇴장하는 관객이 제법 있었다. 퇴장 관객 대부분은 젊은 축이었는데, 전인철의 연출 이력이나 사상(?)을 모르거나, 제작사로 남산예술센터 방향성을 알지 못해 찬양극이라고 판단해서 그런가 싶기도 하다.  (설마 모를까 싶긴 한데, 모르지 않았다면 작품 완성도, 관람 만족도의 문제라 더 고민스럽다.)

 

평소 남산예술센터 객석에 비해 중장년 관객이 많이 들었다 싶었다. 어떤 해석을 기대하고 극장을 찾은 걸까. (나와 더불어) 뒷줄에 포진한 그 분들의 관람 태도만 봐서는 ‘국부’의 의미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고 향수에 젖는 와중인지 모르겠다. 비판극을 기대했는지도 역시 알 수 없다. 인간 박정희를 조명하고, 시대마다 다른 시각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여러 계층의 인터뷰를 삽입하지만 좀 더 정교했으면 좋을 뻔했다. 인간 박정희에 대한 새로운 에피소드를 섞었으나 그리 흥미롭지는 않다. 아울러 개인적 호불호를 떠나, 박정희의 그림자 역시도 박근혜와 더불어 무대에서 내려올 처지가 되었다.* 

 

 

사진출처 - 남산예술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