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기대를 하고 본 영화는 아니다. 배우1명만 화면에 등장하는 1인극, 장소는 고속도로 위 달리는 차 안이다. 보이는 장면 99% 이상은 자동차 안에서 운전을 하고 있는 '로크'의 상반신이다. 잔인한 표현이지만 반토막극이라고 할까. 그의 발은 달리는 벤츠의 네 바퀴이고, 그의 의지는 핸들을 쥔 손이다. 영화가 끝난 후 가진 관객과의 대화에서 심영섭 영화평론가는 주인공의 하반신을 볼 수 없는 묘한 영화라고 했다.
1인극, 모노드라마는 연극에서 주로 볼 수 있는 장르이다. 무대에서 90분 내외로 혼자 무대를 끌고 간다는 건 정말이지 내공이 충분히 높지 않은 이상 미친 짓이다. 그런데 영화가 그러하다? 궁금했다. 공연을 보기 시간한 뒤로 영화를 이전만큼 보지 않았다. 가볍게 볼 수 있는 영화가 아니면 영화까지 머리를 싸매고 보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연극에서도 1인극은 그닥 매력이 있는 장르는 아니다. 단 한 가지 호기심은 1인극, 그 뿐이었다.
밀실공포? 서스펜스? 영화포스터에 나붙은 문구는 자극적이다. 그러고 보니 고속도로에서 카레이싱 액션은 흔하다. 당장 납치극이니, 폭발물 테러니 하는 영화가 떠오르긴 했다. 그런 뻔한 영화인가, 검색을 하니 스릴러 영화가 아닌 드라마라는 평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니 결론은 속지 마라(?)는 식이다. 배우 톰 하디 역시 얼굴을 가린 마스크를 쓴 악당 베인 정도로만 기억할 뿐 관심이 없다. 얼굴이 생경하다.
롯데시네마 에비뉴엘점을 오랜만에 찾았다. 전에 데이트를 두어 번 했던 장소였고, 고른 영화도 그닥 재미가 없었고, 같이 봤던 여자하고도 오래가지 못했다. 영화를 봤다.
자정에 가까운 시간에 다급한 전화가 오가면서 상황이 점차 긴장감에 돈다. 달리는 차안에서 감기가 걸린 중년 남자는 차에 달린 전화기로 연신 통화를 해댄다. 영화의 기본 설정은 그 자체로 생각할 여지를 주기보다는 아슬아슬하다. 풀어보면 단 한 번 바람을 피운 일로 인해 벌어진 해프닝이 자꾸만 커지는 상황이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왜 하필 오늘일까, 싶은 설정은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 그래도 주로 한국에서는 막장드라마로 푸는 난감한 상황은 제법 흥미진진하다.
전화를 계속 걸어대고 받는 주인공을 보면서, 한국에서 영화를 만들었다면 교통부에서 한 소리 들을 뻔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딴 생각이 들었다는 건, 영화 몰입도가 허리우드 영화보다 (당연하지만) 떨어지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정신병자이거나 역시 무리한 설정이라고 생각했다. 가물가물 흐릿한 기억 속 여자가 10개월 만에 건 한 통의 전화, 애를 낳기 직전이라는 천청벽력 같은 통고를 듣고 그는 지금 멀리, 한국으로 치면 서울에서 대전쯤 거리를 가는 중이다.
남자, 로크는 여자에 대한 관심은 솜털만큼도 없지만 아이를 책임지겠다는 의지로 달려가는, 아이가 태어날 때 옆에 있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있다. 여자 입장에서도 남자를 다그치지 않는 게, 어느 정도 다그치다가 그치는 게 이후 관계로 보아 자신에게 유리할 수 있다는 걸 모를까. 적어도 남자가 그렇게 설득할 수 있다. 회사에서 그의 입장, 유럽 최고 높이의 건물을 올리는데 가장 중요한 기초를 다지는 공사 책임자의 위치는 같은 팀으로 일했던 그녀라면 이해할 여지가 많다. 남자가 이날 밤 처한 상황은, 몇 시간 뒷면 수백 대의 콘크리트를 실은 차량들을 관리감독하는 유일한 현장 책임자이다.
(세부적으로 보면 그가 대타로 내세운 부하직원은 신입사원이나 할 만한 실수를 연발한다. 주인공이 아니면 안 될 상황을 만들기 위한 복선이지만, 대기업 시스템 구조 상 한 사람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사장이 로크에게 돌아와달라고 애원하는 상황은 납득하기 어려운 설정이다.)
그의 인생에서 몇 번 오지 않을, 어쩌면 단 한 번의 기회를 포기하고 가는 중이다. 아내는 비록 일에 쫓겨 사는 그를 이해하지 못하고, 바람을 피운 주제에 가족 대신 일을 중시하는 그를 절대 이해하지 못하지만 말이다.
로크는 가끔 백미러를 바라보면서 뒷좌석의 누군가와 말싸움을 벌인다. 뒷 차가 헤드라이트를 비출 때, 히피로 살다 별 볼일 없이 죽은 아버지의 망령을 만난다. 2인극인가 싶지만 등장하지 않는다. 아버지의 하룻밤 유희로 태어난 주인공은 ‘난 당신처럼 살지 않겠다’는 다짐을 연신 해댄다. 이는 그가 무리하게 사랑하지도 않는 여자, 자기 아이가 아닐지도 모를 아이가 태어날 때 옆에 있겠다는 기묘한 트라우마의, 관객에게 납득할 만한 근거를 제시한다. 그러나 이런 설정은 이성적으로 상황을 대처하는 로크라고 보면 반 정도만 납득이 될 뿐이다. 지극히 연극적이다. 오히려 연극이었다면 아버지가 등장했을지도 모르겠다.
유럽 최고의 건물을 짓는 중요한 순간을 팽개친 그는 회사에서 잘리고, 이혼은 물론 집에서 아예 쫓겨났다는 통보를 받은 상황에서 전혀 사랑하지 않는 여자가 연신 ‘자신을 사랑하냐’며 들려붙는 개미지옥 안으로 스스로 달려간다. 고군분투, 로크는 최선을 다한다. 타설을 위해 완벽하게 준비하고 나왔다고 생각한 업무는 예기치 않은 이런저런 문제가 터져 나오지만 전화 통화를 통해-그가 살아온 성실한 인생 이력 덕분에-위기를 넘긴다. (화면 없이 음성으로만 들리는 상황은 궁금증을 유발하기 좋은 장치이다.) 그리고 혼란에 빠진 아내 대신 두 아들을 연신 다독인다. ‘내일 아침이면 모든 게 예전처럼 돌아갈 거야.’
하지만 과거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 방법이 있다면 톨게이트로 빠져서 다시 되돌아가는 방법 뿐이다. 집으로 가서 아내를 다독이고, 새벽에 건설 현장으로 달려가야 한다. 태어나는 아이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양육을 책임지기 위해서라도 출세를 해야한다…. 하지만 핸들은 돌아가지 않는다. 좌우로 돌아갈 듯 관성에 따라 흔들리지만 핸들을 억세게 잡은 손은 그대로이다.
어느 순간, 답답하고 이해가 가지 않은 그의 태도, 그의 고집에 관객은 점차 몰입에 빠지고 만다. 이윽고 이 모든 상황이 낯선 여자로부터 시작되었음을 떠올리게 된다. 그녀는 그저 외로운 여자이고, 아이를 혼자 키우려고 했으나 마음이 가녀렸을 뿐이다. 몸을 쉬이 굴리는 여자도 아니고, 영화 속 표현에 빌자면 축축하고 불쌍한 여자이다.
그러나 관객은 제정신이 아닌 채로 전화를 거는 정신이 심약하고 불안정한 그녀 혹은 아이가 죽길 무의식적으로 바라고 있다. 마침아이 목에 탯줄이 감겼다는 전화를 듣고, 주인공은 액셀을 밟지만 관객은 그대로 아이가 죽으면 이 모든 게 원래대로, 몇 시간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무의식적으로 동조한다.
예정대로라면 그는 지금쯤 집에서는 온 가족이 모여 축구경기(배경이 영국이니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다)를 보고 있어야 했다. 아내는 방금 구운 소세지와 차갑게 식힌 맥주를 웃으면서 들고올 것이다. 두 아들은 드디어 엄마가 응원팀 유니폼을 입었다고 신이 나서 놀린다. 회사에서 그는 젊고 성실하고 유능한 간부로 상사, 부하직원, 교통 통제 등 관련 공무원에 이르기까지 인정을 받았다. 유럽 최고(最高)의 건물을 짓는 데, 기초를 닦는 일만 마치고 나면 앞으로 성공가도가 열렸을 것이다. 그가 지금 달리고 있는 끝없는 고속도로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는 결국 환하고 쭉쭉 뻗은 고속도로에서 내려와 좁은 국도, 지저분한 골목에 불이 꺼진 가게가 몇 채 있는, 어디로 가야할 지 막막한 골목길로 사라진다. 이 영화가 스릴러로 불릴 수 있다면 현실에서 동조해 성공과 행복을 추구하는 길 위에서 사소한 실수쯤 얼마든지 무시하는 현대인들의 심리를 무섭도록 파헤친 데에 있다.
그가 회사의 위기를 하나하나 극복해낼수록-지구를 구하는 엄청난 영웅은 아니지만-현실에서 처한 상황에서 그러하듯이 사회에서 성공하고 안락한 가정을 유지하길, 해피엔딩이 되길 바란다. 그리고 그 해피엔딩이 태어날 아이의 죽음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사실에 놀라 소름이 돋고 만다. 따지고 보면 로크가 방주를 짓는 노아가 아닌 이상, 그러니까 혼자 짓는 게 아닌 이상 건물은 누군가에 의해 올라갈 것이다. 영화에서 새 생명의 탄생은 축복해야할 일이지만, 우리는 이제 불행이 저주가 시작된 순간이라고 실망을 한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내 자신은 어떠한가, 아기를 죽길 바라는 데 기꺼이 한 표를 던질 의향이 있는 나는 누구인가, 누가 나를 이런 괴물로 만들었을까. 이 영화는 내가 봐왔던 어떤 영화와도 다르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내가 로크와 비슷한 또래의 직장인이 아니었다면 다르게 생각했을지, 내 자신에게 궁금하다. 괴물이 되지 않도록 괴물과 싸우거나 경계를 해왔다고 생각했으나, 어느새 괴물에 가까운 내 일부를 보고만 셈이다.
영화가 끝난 뒤 심영섭 평론가와의 대화 역시 생각할 여지를 확장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자리였다. 난, 이 영화를 아이러니하게도 한국 최고의 건물을 올리는, 올리는 와중에 안타까운 사고로 노동자들이 죽고 다친 건물을 올리는 기업의 극장에서 봤다. 그 동안 그 사고들은 마우스 스크롤에 걸리는 뉴스 헤드라인이었을 뿐, 관심사가 아니었다. 극장 안과 밖 스릴과 공포는 도대체 어디가 더 살벌한가.
알다가도 모르겠다.*
사진출처 - 네이버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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