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억하는 모든 것들이 사랑으로 남은 영화 [마법사들]

구보씨 2010. 1. 17. 11:52


 

마법사들(2005)_디지털 리마스터링 버전


뮤지컬 <마법사 밴드>을 봤다. 3월부터 원작 영화와 같은 제목 <마법사들>로 이름을 바꿔 공연이 올라간다. 이 뮤지컬이 영화 <마법사들>을 원작으로 삼은 작품인줄 알았더라면 진즉에 봤을 것이다. 우연히 송일곤 감독의 인터뷰 기사를 읽으면서, 원작이 그의 영화라는 걸 알았다. 영화를 보기 전이었다. 송일곤 감독의 영화는 예의주시하지 않으면 어느새 극장에서 사라지곤 했다. <마법사들>을 놓치고는 내내 아쉬워했다.


멋진 라이브 공연을 선사한 뮤지컬도 꽤 재미있었지만 기대만큼은 아니었다. 그리고 한 달 쯤 지나 영화를 볼 기회가 생겼다. 공연이 쉬는 월요일 저녁이었고, 전에 <넌센스>를 봤던, 그리고 지금도 공연 중인 소극장에 스크린이 걸렸다. 더욱이 영화가 끝나고 송일곤 감독을 직접 볼 수 있다고 했다. 극장 대기실 근처에 송일곤 감독이 관객처럼 서 있었다.


송일곤 감독의 <깃 Feathers in the Wind, 2005년>을 보고 난 우도를 다시는 가지 않기로 했다. 내가 아는 우도는 <깃>의 배경인 우도와는 전혀 달랐으므로 난 그냥 <깃>의 바람소리와 탱고로, 그러니까 귀로 우도를 기억하기로 했다. 오래전 그 기억을 귀를 쫑긋하고 더듬으면서, 새로운 기억을 덧칠할 <마법사들> 봤다. 92명의 관객(직접 세어봤다는 배우 장현성의 말에 따르면)이 96분 동안 쉬지 않고 원 싱글 테이크로 찍은 영화를 봤다. 매주 월요일에는 저녁 8시, 송일곤 감독과 배우 장현성, 이승미가 무대 앞으로 나왔다. 4년 전 영화지만 찾아온 소수의 관객을 위한 멋진 배려였다.


연극 공연장에서 <마법사들>은 연극과 영화의 중간쯤에 놓여 있었다. 송일곤 감독의 말처럼 감독의 시선을 따라 공간을 보다 자유롭게 오갔다. 한 번도 끊지 않고도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멋지게 오갔다. 연극적인 장치가 어울리지 않을까 싶었는데,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 무엇보다 내공이 있는 배우들의 연기가 뒷받침이 되지 않았다면 힘들었을 작품이다.


12월 31일 자정, 자살로 세상을 떠난 '지은'을 위한 삼년상 마지막 모임에서 새로운 시작을 결심하는 ‘마법사’ 밴드의 이야기다. 후고 디아즈(Hugo Diaz) 멋진 하모니까 연주가 돋보이는 탱고 음악 ‘Amurado’, ‘Palomita blanca’에서는 송일곤 감독의 예민한 감각이 돋보인다. 송일곤 감독은 내가 기억하기에 가장 소리에 민감한 감독이다.


<깃>의 탱고에, 그의 다큐멘터리 영화 <시간의 춤 Dance Of Time, 2009> 역시 쿠바를 배경으로 한 영화이다. 남아메리카를 향한 동경에 이유가 없다고 감독은 말했다. 그의 핏속에 흐르는 남미 정서는 영화와 완벽하게 하나가 된다. 후고 디아즈의 음악을 알게 된 정도로도 이 영화를 볼 이유가 충분하다. 난 내내 후고 디아즈의 음악을 들으면서 살고 있다.


노래를 전혀 부르지 않지만 고난이도 춤이 돋보이는 넌버벌 뮤지컬 <컨택트>를 통해 뮤지컬 배우로도 거듭난 명수 역의 장현성이나 재성 역의 정웅인은 워낙 유명하지만, 이날 같이한 자은 역의 이승미나 하영 역의 강경헌을 새롭게 발견한 계기(이제야!)였다. 


영화는 대학로 창조아트홀(www.changjo1.co.kr)에서 매주 목, 금, 토 저녁 10시마다 상영한다. 입장료 5천원에, 멋지게도 오픈 런이다. 송일곤 감독의 영화는 편안하다. 편안한 밤을 위해 언제라도 다시 찾을 수 있다니, 그저 행복하다. 기억하는 모든 것들은 사랑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