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자유의 원룸_연극창작환경 개선 지원사업
기간 : 2015년 8월 11일(화) - 8월 16일(일)
장소 : 극장 봄
출연 : 이신실, 마광현, 서재영, 이도경, 원채리
연출 : 정세영, 이재민
그래픽디자인 : 김유나, 이재혁
제작 : JAT Project
네이버에서 연극 ‘자유의 원룸’을 검색하니 부동산 정보만 뜬다. 살짝 당황스럽지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해봐야 테도 안 나는 비슷비슷한 홍보 따위 생략하고 간다는 배짱에서 나온 자신감이랄까. 그 흔한 공연 연계 사이트에도 정보가 없다. 이런 연극은 궁금해서 봐야 한다.
극장 봄은 대학로에서 버스로 한 정거장 거리인 한성대입구역 작은 건물 지하에 있고 이번에 처음 가봤다. 건물 지하를 개조한 소극장이 그렇듯 매표소가 없고 간이테이블이 나와 있다. 길을 건너면 성북천이 흐르고 주변에 작은 공원이 있다. 공원에는 동네 사람들이 나와서 더위를 피하고 있다. 뭔가 빠르고 급한 시간과 느리고 여유로운 시간이 교차하는 듯한 묘한 분위기다.
모든 인간이 가장 평등하게 갖고 있는 시간. 하지만 현대인들은 말한다. '시간이 없다'
검색을 해서 겨우 찾은 자유의 원룸 소개글이다. 원룸은 먹고 자고 노는 일상이 한 공간에서 가능한 편리한 구조이다. 부동산이 기이하게 비싼 한국에서 원룸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삼지만, 마음을 바꾸면 원룸은 제법 자유로운 공간이다. (정말 그러한가?) 흰색 벽으로 칠한 무대는 딱 원룸 크기이다. 실용적이고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이 꾸몄다.
하지만 병실 분위기가 감도는 폐쇄적인 공간은 예민하거나 섬세한 성격의 누군가를 위한 공간처럼 보인다. 주인공이 들어오고, 곧 선풍기가 돌고, 전기주전자가 부글부글 끓는다. 사람 사는 곳처럼 바뀌나 싶은데, 왠지 어색한 인테리어, 몇 안 되는 소품을 여기저기 옮겨가며 재배치한다. 의자가 벽에 걸리고 그 위에 사진이 올라가는 식이다.
중얼거리는 대사나, 작은 사진은 객석에서 잘 보이지 않지만 가벼운 강박증이 있는 듯한 (현대인들이 그렇지만) 주인공의 성격에 대한 정보를 어느 정도 알려준다. (사진은 배트맨 동호회에서 찍은 사진이다.) 주인공이 퇴근을 하는 시간에 맞춰 택배상자가 연이어 도착한다. 엇비슷한 크기의 택배 상자는 외부로부터 우연을 가장한 틈입을 허용하지 않고 일정한 형식을 고집하려는 주인공이 심리를 보여준다. 주인공이 끌고 나오는 쌓아놓은 택배상자 조합은 현대인의 애처로운 인간관계에 대한 풍자이자, 속이 빈 박스가 모여 거대한 군락을 이룬 형태라는 점에서 사념덩어리처럼 보이기도 하다.
1인극인가 싶다가 원룸에서 배트맨 동호회가 열리면서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바뀐다. 무표정한 배트맨 가면을 쓴 인터넷카페 동호인 4명이 등장하는데, 카페 별명으로 불린다. 익명성을 보장하는 배트맨 동호회는 일정거리 이상 접근을 달갑게 여지지 않는 현대인의 관계망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배트맨이라는 상징이 그렇지만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선에서 그들 관계는 꽤 유쾌해 보인다.
가면을 쓴 그들은 구면인데도 어색하지만 초면인 회원과도 잘 어울린다. 서로 조심스러우면서도 어렵지만 배트맨으로 엮인 관계는 구호 등 변별성을 가지고 있고, 나름 끈끈하기도 하다. 그들이 하는 놀이는 친한 친구사이에서나 할 법한 놀이인데, 영락없는 코스프레처럼 보인다. 무엇보다 원룸은 영상을 투사하니 극장이 되고, 잔디 카펫을 깔자 야유회 장소가 되기도 한다. 모임에 앞서 배트맨 동호회스러운 먹거리로 3대 영양소를 담은 알약 상자를 준비하는 이 역시 택배로 해결한다. 나갈 필요 없이 안에서 모든 게 해결되는 셈이다.
동호회 회원들이 가고 남은 자리, 장난감 헬리콥터를 띄운다. 동네 공원 대신이라고 해도 될까 싶지만 새장 안에 갇힌 새처럼 좁고 낮은 방을 날아다니는 장난감은 아슬아슬하다. 부러 그랬든 제작비가 부족해 그랬든 극장도 그렇고, 무대도 그렇고, 홍보도 그렇고 전반에 걸쳐 군더더기 없이 미니멀한 작품은 욕심을 부리지 않는 소품이지만 독특한 분위기가 있으면서 굳이 부러 기승전결 이야기 구조가 아니고, 가르치려 들지 않으면서도 밀도가 높은 편이다.
부담 없이 보기에도 좋고, A4 한 장을 접은 프로그램에서 적은 글처럼 ‘현대인의 사간이 어떻게 지나가는지’ 재치 있게 보여준다. 일상을 섬세하게 포착한다는 점에서 일본 작가이자 연출가 히라타 오리자의 작품이 생각난다. 히라타 오리자의 작품을 처음 봤을 때도 느꼈지만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현대인의 빈 여백을 다루는 방식이 새롭지는 않다. 하지만 극중 동호회 회원들인양 왠지 어색한 듯 훈훈해 보이는 20대 혹은 30대 젊은 배우, 스태프 들 모습이 왠지 대학로에서 봤던 그들의 분위기와 뭔지 모르게 다르다. 어쩌면 이런게 아우라? 스타일? 갑자기 부각이 되지 않더라도 자체로 독특한 작업물로 좋은 자극이 되어주길 바란다. 기억에 오래 남을 작품이다.*
사진출처 - JAT Proj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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