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게공선_제17회 서울변방연극제 공식초청작*폐막작] 배에서 혹은 공장에서 노동의 기억을 떠올리다

구보씨 2015. 7. 22. 11:44

제목 : 게공선

기간 : 2015년 7/22(수)~8/2(일)

장소 : 인디아트홀 공

출연 : 권택기, 김광표, 김석주, 김용희, 김진복, 윤민웅, 이재호, 임주현, 최용진, 최태용

원작 : 고바야시 다키지

연출/각색 : 강량원

제작 : 극단 동, 서울변방연극제



저녁 8시, 어둑어둑해졌나 싶은데 후덥지근한 기운이 가시지 않는다. 철 계단을 따라 공장 2층 칸막이를 달아 얼기설기 개조한 인디아트홀 공으로 들어서니 한 쪽에 단을 쌓아 방석으로 구분한 자리에 다닥다닥 붙어 앉은 관객들이 보인다. 그들 사이에 앉으려니 내 몸에서도 땀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올까 신경이 쓰인다. 그렇지 않아도 공장 마당으로 들어섰을 때 공장 기계가 요란하게 돌아가는 기계 옆으로 불 켜진 공장 입구가 보이고, 그 앞에 야근조인 듯 무표정하게 담배를 피우는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계급투쟁을 다룬 연극이 공연을 하지만 극장 아래층에서 일하는 기계공들은 못 보거나 혹은 관심이 없는 듯이 보였다. 이런 현실이라니.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벽을 타고 극장 안으로 올라왔다.



 

연극 <게 공선(工船)>은 일본 프롤레타리아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코바야시 다키지가 1929년에 쓴 동명 소설로, 극단 동이 각색하고 연출해 올리는 작품이다. 원작은 게 가공선에서 노동자들이 가혹한 노동과 린치에 시달리다 죽은 실제 사건(1925)을 모태로 삼아 노동자들이 처절하게 내몰린 상황을 사실적으로 기술한다. 작가는 “자본주의가 미개지, 식민지에 얼마나 무자비한 형태로 침입하여 원시적 착취를 거듭하고 군대를 경호원으로 삼아 끊임없이 노동자들을 혹사시키는지, 또 얼마나 급격히 자본주의적 작업을 수행하는지.”(작가가 평론가 구라하라에게 보낸 편지 일부) 명확하게 보여주고자 했다.


그때로부터 90년 가까이 흐른 지금, 당시 강제로 일본으로 끌려가 일본 노동자들보다 더 혹독한 대우를 받았던 아픈 역사를 가진 우리이게 이 연극은 어떤 의미로 다가올 것인가. 소설에서도 “‘국도 개척’, ‘철도부설’ 토목공사장의 인부들은 이[虱]보다 더 간단히 맞아 죽었다. (중략) 특히 조선인은 십장들뿐만 아니라 똑같은 동료인 일본인 인부들에게까지도 ‘짓밟히는’가혹한 대우를 받았다”고 기술하고 있다.



 

소설에서 결국 혁명가로 그려지는 일본 노동자들은 우리에게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는 인물들이다. 식민지 해방을 위해 사회주의자들이 미약하게나마 연대를 하였으나 그들 스스로도 힘이 약했고, 또 미온적이기도 하였다. <게 공선>은 제17회 서울변방연극제 폐막작이기도 하나 올해 변방연극제 슬로건 “십오원오십전”과 통하는 듯 미묘한 어색함이 있다.


“십오원오십전”은 1923년 일본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을 희생양으로 삼아, 유언비어를 유포하고 혐오의 대상으로 만들어 집단 학살을 자행할 당시 일본인과 조선인을 발음으로 구별하기 위한 단어였다. 당시 살해당한 조선인이 6천명에 달했으나 당시 일본 사회주의자들은 이에 무관심했고, 이는 그들의 한계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정치적, 역사적 상황에서 보면 2008년 일본 경제 침체기에 젊은이들 사이 <게 공선> 열풍이 불었을 당시와 2015년 한국의 현실을 동일한 선상에서 바라보기 힘들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또한 경제적 상황만 따로 떼 내어 비교하는 방식이 맞는지도 의문이 든다. 

 



극단 동은 이런 고민을 어떻게 풀었을까. 근대 이후 일본과 한국 사이 복잡한 관계나 역사적 앙금을 대입시키거나 ‘원시적 착취’를 일삼던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러시아처럼 사회주의 국가 건설이 가능하다고 믿었던 29살 젊은 작가의 희망과 달리 자본주의가 득세한 지금에 견줘 새로운 해석을 내놓지도 않는다.

 

연극이 시작하면 방금 아래층에서 봤을 성 싶은, 혹은 아까 봤던 기계공인가 싶은 남자 배우 10명이 출구를 들어온다. 허름한 반팔에 반바지를 입은 행색은 연습실에서 모습과 다르지 않다. 몇몇은 등이 땀으로 얼룩졌다. 극장은 배처럼 길게 늘어선 공간이고 선미는 거리의 네온사인이 비치는 유리창이 가로막고 있다. 등퇴장로가 없는 배우들은 좌우 양쪽으로 나뉘어 시멘트 블록 벽에 기대앉는다. 소품도 무엇도 없다. 배우들과 관객 사이 링처럼 보이는 정사각형 고무매트가 전부다.

 



그중 한 명(김석주 배우)이 일어나 말도 없이 무대에 서서 잡역부로 일을 시작한다. 이곳은 캄차카 해역 어디쯤 게 가공선 하쿠코오마루 호 갑판이 된다. 혼자 15분이 넘도록 마임으로 구현하는 뱃일은 보는 내내 괴로운 엄청난 강도의 노동이다. 설정은 작은 유리조각 같은 칼바람이 살갗에 박히는 북해 연안인데, 매트 위로 땀이 한두 방울씩 뚝 뚜욱 떨어진다. 엄청난 집중력에 두 가지 역설이 어색하지 않다. 한 명이 스윽 끼어 오롯이 둘이서 20분이 넘도록 기계적인 의성어 비슷한 외침에 맞춰 합을 이룬다.


이윽고 암전 없이 장면이 바뀌지만 이후 연극은 첫 장의 연장선상에 있을 뿐이다. 배우들이 무대에 서서 동일하고 동작을 반복할수록 매트 위에 땀이 떨어진다. 땀을 발로 문대고 또 그 위로 땀이 흘러 번들번들해지니 소설에서 묘사하는 대로 게 비린내가 하도 진해서 피부에 달라붙어 끈적대는 ‘똥통’(잠자리) 속 한 덩어리 무리가 된다.



 

객석 옆 벽면으로 흰 페인트를 새로 칠했으나 앙카를 박은 흔적으로 우둘투둘한 벽은 파도가 부딪힐 때마다 녹이 떨어져 나가는 고물선 하쿠코오마루 호의 ‘똥통’처럼 보인다. 이후 배우들은 소설에서 그렇듯 역할 구분 없이 수부, 어부, 잡역부가 된다. 여럿이 나란히 서서 잡은 게를 망치로 부수고, 게살을 깡통에 담고 찍어 눌러 통조림을 만드는 과정은 소설이 묘사하지 않는 장면이지만 경건한 무언가가 있다. 배우는 연기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가면 옷을 벗어 땀을 짜내고 뒤집어 입는다. 배우들이 스스로 노동자임을 증명하기라도 하려는 듯 몰입하는 내내, 이곳이 오랫동안 노동현장이었던 흔적, 인디아트홀 공 안에 잦아들었던 영등포 기계공장으로 노동의 기억들이 다시 자각을 하고 깨어나는 듯 했다.   




연극은 원작을 따라가는 대신 노동자들의 현실을 재연하는 데에 중점을 두었다. 배우는 연기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가면 옷을 벗어 땀을 짜내고 뒤집어 입는다. 그들이 나누는 대사는 배를 타기 전 토목공사 현장이나 광산에서 겪은 일들을 이야기할 때이다. 단순 명료한 이야기 구조이나 작가의 의도를 완벽하게 구현한 것은 아니다. 

 

“거긴…… 지옥이야…….” 배가 출항하기 전 하코다테 해안에서 사내 둘이 나누는 소설 첫 줄 대사에서 말하는 지옥은 게 공선을 의미하는 동시에 게 공선을 타기 위해 모인 하층민들이 정착하지 못하고 뜨내기로 떠돌면서 겪은 국도 개척공사, 관개공사, 철도부설, 축항매립, 개간, 청어잡이 시절의 그곳을 의미하기도 한다. 작가는 게 공선이 해군이 감시를 해 도망칠 곳 없는 노동자가 죽어나가는 거대한 관으로 보지만 한편으로 러시아 캄차카 해안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과정에서 러시아인을 만나고, 단순명료하지만 권리의식을 갖춘 노동자로 각성하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봤다.



 

하지만 연극은 게 공선으로 돌아온 이들을 중심으로 태업을 벌이다가 국민 편이라고 믿었던 해병대에 주동자들이 체포되어 고문을 받다가 죽으면서 끝나는 만큼 작가의 의도와 사뭇 다르다. 소설은 조직과 투쟁을 배운 어부, 잡역부들이 뭍으로 돌아와 경찰서를 나오면서 여기저기 노동현장으로 잠입해 들어간다고 기술했다.

 

연극이 취하는 방식은 ‘전위의 관점과 주제의 적극성이 너무 강해 작가의 의도가 도식적으로 드러나거나 인물이 유형에 빠진 부분’이 보이는 등 소설의 한계를 걷어냈다. 대신에 ‘거품을 일으키며 비등하는 젊음의 넘치는 정열과 에너지로 채워 그때까지 일본문학에서 전무한, 혁명문학의 기념비적인 작품’이라는 평가를 이어받은 셈이다. 강량원 연출이 바라는 바, 2015년 노동자로 현실이 녹녹치 않음으로 보여주고자 했을 수도 있고, 작가가 바라는 ‘위대한 경험을 짊어지고 현장으로 돌아가는 역할’을 관객의 몫으로 돌렸을 수도 있다.


 

“우리에게는 우리 말고는 내 편이 없다!” 철이 지난 듯 단순명료하지만 명확한 구호로 연대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게 새삼스럽지 않다. 그러나 잇속이나 재담이나 요령이 아닌 오로지 몸짓으로 가만히 앉은 관객들을 거친 파도 위로 내몰아 길고 긴 항해를 해내는 뚝심에 내내 움찔움찔했던 손을 들어 박수를 보낸다.*


덧붙이는 하나마나한 얘기. 밤 10시, 극장을 나서니 1층 공장 불빛이 환하다. 커튼콜을 한 배우들이 수건을 목에 걸치고 한 자리씩 맡아 기계를 돌리는 상상을 하게 된다. 세상은 바뀌지 않겠지만 극장을 들어설 때 든 이질감이 한결 덜하다. 영등포 기계상가 골목을 끼고 나오니 분식집 앞으로 돗자리를 깔고 할머니가 나와 앉았다. 여전히 덥다. 후덥지근한 날씨는 열대야로 이어진다.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다만 연극을 보면서 ‘노동’으로 연대감을 느낄 수 있구나, 생각해본 지도 오랜만이다.




사진출처 - 서울변방연극제, 극단 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