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칼럼 미게재분_Enjoy SAC] 예술의 전당, 10월 발길을 이끄는 작은 전시회 & 주말가족축제

구보씨 2012. 9. 28. 14:35



예술의전당까지 가는 길을 떠올리면 막막하다. 서초IC으로 나가가려는 차들로 붐비는 예술의전당 앞 교차로는 떠올리기만 해도 답답하고, 버스나 지하철로 오는 길도 여러 번 갈아타야 하니 번거롭다. 한다. 명예기자로 예술의전당을 드나들면서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으나 이전부터 든 심리적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동시간대 다른 공연장 공연을 압도하는 해외 초청 공연이 아니어도 발길이 편하게 이어질지 고민이다. 그러나 예술의전당이 추구하는 지향점이 공연 단체의 유명세나 규모에 기댄 대관 공연은 아닐 것이다. 예술의전당을 찾을 때마다 드는 이런 양가감정이 나만의 것일까.

 

공연이 끝난 뒤, 사람들의 발길은 퇴근길처럼 잰 발로 뛰듯 바쁘다. 예술의전당을 나와서 고속도로를 타기 위해 늘어선 차량 대열에 끼거나 막차 시간을 재면서 종종걸음을 치다보면 도시에서 살면서 버릇이 든 조급증이 일고 말아, 방금 무대와 객석 구분이 무의미할 만큼 일렁인 감흥이 쉬이 사그라진다. 그래도 내년 10월부터 예술의전당에 상주하는 국립오페라단, 국립발레단, 현대무용단, 코리안심포니 등과 함께 시즌제 기획 공연을 올리겠다고 선언했으니 앞으로 어떻게 정체성을 세워갈지 기대가 된다.

 

내년 10월이면 기다리기까지 역시 막막하다. 추석 연휴에나 시간내서 가볼까 전시일정을 뒤적이다가 문득 선선한 바람에 고개를 드니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다. 하! 그렇지, 가을이다. 

 

예술의전당이 강남구 대법원 부지(3만 평)를 포기하고 접근성이 떨어지는 서울 외곽 우면산 자락에 국내에서 제일 큰 종합예술시설(7만 평)을 지은 이유가 요사이 도드라진다. 예술의전당 월간소식지 ‘뷰티풀 라이프’ 표지에 실리는 풍경 사진을 보면, 예컨대 작년 11월호 테라스 목조바닥을 물들인 단풍은 어떠한가.

 

 

 

땅값이니 교통 편의성이니 애초 예정지를 두고 혀를 끌끌 차며 아쉬워할 사람도 있겠으나 사방이 도로로 꽉 막혀 기운이 안 통하는 시내 한복판보다는 봄가을로 우면산에서 타고 내려오는 기운이 머무는 지금 자리가 예술가는 예술가대로 기운을 받을 테고, 관객은 관객대로 그 기운을 나눠받을 테다. 그리고 공연장을 찾지 않더라도 우면산을 들러서 예술의전당으로 나들이만 나서서 딱 좋을 시기다.

 

서울만 해도 가을 정취를 산과 더불어 즐길 수 있는 공연장이 예술의전당만은 아니다. 관객 시선에서 보면 국립극장이 있는 서울 한복판 남산 자락에 위치한 국립극장이 친숙하다. 그러나 국립극장에 아카이브 공간이 있기는 하나, 극장 외에 이렇다 할 시설이 없이 나들이 코스로는 좀 심심하다. 예술의전당은 넓기도 하거니와 공연장의 안과 밖이 하나로 조화를 이루는 ‘세계음악분수’가 우선 시선을 이끈다. 덧붙여 얘기하지 않아도 다 알지만 마냥 분수만 보고 있기 뭐하니, 미술관으로 발길을 옮겨보자.

 

예술의전당 전시 행사는 지난 6월부터 9월까지 3개월에 걸친 ‘2012 루브르박물관전’이 떠오르지만 그 사이 디자인미술관, V갤러리 등 주변 미술관에서 관람료가 매겨지지 않았거나 저렴한 작은 전시회가 줄을 이어 열린다. 전시 기간이 짧은 개인전 혹은 회원전 등 대관 전시는 예술의전당 홈페이지가 아니면 정보를 얻기 힘들고 수준을 가늠할 수 없지만, 예술의전당 대관 기준에 어느 정도 신뢰를 가져도 좋다.

 


 

요 사이 배우 구혜선이 백혈병 환우를 돕기 위해 갤러리7에서 개인전(9.18~09.23, 무료)을 열었다. 누구의 작품이라도 천천히 둘러볼 예정이라 배우로 유명세나, 미술가로 낮은 기대치에 연연하지 않아도 그만이다. 예쁘장하고 선한 얼굴과 다방면에 재주가 있다는 정도 외에 그녀를 알지 못했다가 ‘내면의 또 다른 자아를 드러냈다’는 전시에서 떠도는 가십을 걷어낸 체로 그녀를 만나는 좋은 우연을 만난 셈이다. 구혜선이 떠난 갤러리7에는 이미지와 텍스트 사이 경계를 허무는 화가 안봉균 전(09.26~10.09, 무료)이 열린다. 안봉균 전은 우연이 주는 즐거움보다 필연으로 만나고 싶을 만큼 보고 싶은 전시회이다. 제법 시일을 두고 전시를 하니 나들이 혹은 공연을 빌어 시간을 두고 미리 찾아가 만나볼 예정이다.

 

 

안봉균_Research on Memory_캔버스에 유채, 아크릴채색_91×117cm_2010 

 

구혜선 전이나 안봉균 전처럼 개인전을 찾아 가자면 예술의전당보다 종로구 인사동 갤러리 골목에서 보다 다양한 작가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허나 제46회 한국미술협회 정기회원전(09.19~09.26, 일반 2천원/ 청소년 1천원)처럼 1000여 점을 전시하는 대규모 작품전은 한가람미술관처럼 규모를 갖춘 미술관에서 만날 수 있다. 서양화, 한국화, 판화, 조각, 수채화를 분야별 주제를 정해 구획을 나눈 전시회라고 하니 우연히 들렀다면 꽤 행운을 만난 셈이다.

 

무엇보다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은 ‘세계 유일의 서예전용 전시장’이라는 소개처럼 독보적인 공간이다. 그런 만큼 10월 일정을 보면 2012서예문화축전(10.01~10.07), 제51회 갈물한글서회전(10.08~10.15), 송하 백영일전(10.16~10.26), 제20회 대한민국서예전람회(10.27~11.02)가 하루도 빠짐없이 촘촘하게 발을 엮듯 이어진다. 역시 무료공연이거나, 미정이지만 저렴한 편이다.

 

8월 내내 40도 가까운 폭염에 지치는 데다 정부 에너지정책에 따라 예술의전당이 온도를 28도를 유지하면서 실내도 미지근했다. 9월에는 연이은 대형 태풍 셋이 올라오면서 공연장 밖으로 나들이를 즐길 여지가 없었다. 매년 그렇지만 봄가을이 짧아지는 추세라 지금이 아니면 선선한 가을은 쉬이 겨울로 넘어간다.

 

마침 신세계스퀘어 야외무대에서 8월부터 시작한 2012주말가족축제 시즌2 마지막 남은 공연이 가을 축제인 양 ‘The Picnic Concert’(10.06토, 무료), ‘이원복 교수와 함께하는 토크콘서트’(2012.10.13토, 무료)가 열린다. 이 즈음이면 대부분 기획 전시도 끝나는 바, 말 그대로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아도 편한 신발을 신고 가볍게 예술의전당에서 나들이 일정을 잡아도 좋을 때이다. 1년에 딱 지금 10월 중순까지, 지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