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2011 봄작가 겨울무대 - 그날들
기간 : 2011년 11월 5일(토) ~ 11월 6일(일)
장소 :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출연 : 양동탁, 김문영, 이수현, 민정희, 황은후
작가 : 김성배
연출 : 전인철
주최/주관 : 한국공연예술센터
‘참패보다 더 씁쓸했던 패장의 변’. 11월 16일자 스포츠 면에 실린 축구 기사 제목이다. 뭔 얘기인가 봤더니 ‘레바논전 참패의 충격이 가시지 않는다. (중략) 한국은 레바논에게 생각지도 못한 1-2 패배를 당했다. 굴욕적 패배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B조 1위 자리를 지켰다’라는 내용이다. 결국은 다행이라고 마무리했지만 칼럼도 아닌 기사에 참패, 굴욕을 서슴지 않는다. 기자가 자기 주관을 들입다 늘어놨다고 불만이라는 건 아니다. 거칠기는 하지만 이해가 간다.
국가대표 감독자리라는 게 천당과 지옥을 양 골대 놓고 축구공처럼 왔다 갔다 하듯이 연애라는 게 그렇다. 언제는 죽자고 사랑한다더니 정말 죽이겠다고 설친다. 축구와 사랑이라, 소설가 박현욱이 쓰고 스크린에 걸린 <아내가 결혼했다>가 공처럼 오고가는 아내의 심정을 잘 풀어낸 작품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축구기자 출신 희곡작가 김성배가 축구에 빗대 쓴 사랑 후일담 <그날들>은 어떨까?
축구경기장 외부 벤치에 앉은 철우와 명희는 떠나간 사랑을 기다린다. 그들이 올 지는 장담할 수 없다. 축구장 입장객들에게 골이 목적이라면 이 둘은 과연 미심쩍은 약속을 한 연인들이 올지 궁금하다. 축구장 안에서 들리는 함성만 듣고도 철우는 어느 편이 골을 넣었는지, 어느 쪽이 반칙을 했는지, 홈팀과 원정팀 사이 그 미묘한 감정선을 파악한다. 축구 때문에 여자와 헤어진 적도 있는 축구광이다. 누구보다 축구를 좋아하는 그가 하릴없이 경기장 밖에서 잡지만 보고 있다. 치킨을 앞에 두고 참는 다이어트 프로그램 도전자처럼 여자에게 서툴렀던 과거에 대한 반성일지도 모르겠다. 명희가 기다리는 남자는 과거 철우와 같은 케이스이다. 경기 시간에 늦은 여자를 두고 먼저 경기를 보는 심사라니, 그래도 그녀는 기다린다….
대본으로 읽었을 때, 의도가 참신하다 싶었다. 역시 작가는 자기가 아는 얘기를 써야 한다는 생각도 더불어 말이다. 그런데 무대로 올린 작품은 좀 밋밋하다. 신예작가의 작품을 잘 꾸며줄 연출로 전인철은 작년 서울시극단에서 올린 ‘서울+기억’ 창작시리즈 <순우삼촌>로 믿음을 줬다만 기대보다는 덜하다. 이번 프로그램 성격 상 무대를 꾸미기 힘든 부분은 이해하지만 세 단으로 이은 벤치가 끝이 부서진 이유를 잘 모르겠고, 무대 뒤쪽 펜스도 마찬가지다. 무대 앞쪽에 공중에 매단 잘린 플라타너스 굵은 줄기는 다소 생뚱맞기도 하지만 줄기가 잘린 나무를 보고 작가의 심정을 대입하는 과정과 희곡에서 녹여서 형상화하는 과정이 달라야 하는데, 너무 의도가 보이는 상징이다. 무대 위에서 속내가 보이는 구성에다 배치는 단점으로 지적할 만한 부분이 더 두드러진다.
대학로예술극장이 소극장이긴 하나, 이 상태에서는 여기보다 작은 연우무대나 혜화동 1번지 무대가 아기자기하게 더 잘 어울릴만하다. 앞으로 어떻게 희곡을 수정하고 연출로 풀어내는지가 관건이지만 지금 수준으로는 무대 뒤 공간을 활용하지 못하는 부분은 아쉽다. 1인 다역 조연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을 희화화해 등장시킨 방식도 다소 극 밀도를 떨어트리는 부분이다. 작품으로 봤을 때 대본상에서 보이지 않았던 전후반 축구 경기 상황과 그들의 이야기를 연결시키는 부분도 다소 의도된 부분이 보이기도 한다. 축구경기와 동일한 러닝타임은 아니지만, 그 사이 들어오는 에피소드에 정작 그 긴 시간동안 둘 사이 대화 외에 다른 동선이 없다는 점도 아쉽다. 흔히 보는 풍경처럼 화장실을 다녀오거나, 음료수를 마시거나 하는 일상부터 누군가를 초조하게 기다리거나 찾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그다지 애타게 기다리지 않는 이유는 오지 않을 상황을 극중 인물이 충분히 예상했다고 봐도 그렇다.)
무엇보다 재밌고 색다른 아이디어가 빛을 발하지 못한 이유는 극중 인물들이 보여주는 연애사가 잘 와 닿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비슷한 처지로 꽃뱀 혹은 유부남에게 속은 사연이나, 철우가 자신을 빗대 플라타너스 나무에 목을 매 자살한(실제로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은) 남자이야기도 마찬가지이다. 축구 한 게임 졌다고 해서, 당장 월드컵 본선 진출이 실패한 상황도 아닌데, 난리법석을 떠는 언론도 너무한다 싶지만, 그 만큼 절절한 이야기를 축구기자 출신 김성배 작가가 좀 더 박진감 넘치게 그려주길 바란다.*
한국 연극의 미래를 이끌어갈 젊은 작가들. 진득함이 엿보이는 김성배 작가(왼쪽에서 두 번째)
사진출처 - 한국공연예술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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