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해피투게더] 다음에도 앵콜을 받고 싶다면

구보씨 2008. 11. 1. 14:35

여기저기 흩어졌던 글들을 모으고 있습니다. 사실 끄적거린 수준의 글들을 다시 본다는 게 좀 민망하기는 하지만 이렇게라도 모으지 않으면 그대로 사라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요즘은 코믹연극을 잘 안 보는 편인데요. 오랜만에 보니 기억이 새록새록합니다. 3년 전인데도 그 무대가 생각나는군요. 유쾌하고 따뜻한 작품이었습니다. 


 

4남매를 입양을 보내야했던 아픈 과거가 있는 최갑분 할머니는 평생 짊어졌던 가슴 아픈 과거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고자 삯바느질로 평생 모은 재산을 사회에 기부한다. 마음 한구석에는 언론에 소개된 기부 사연을 통해서 혹시나 자식들을 다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을 품고 있다. 그리고 제목처럼 어느새 잘 커준 아이들과 행복한 상봉을 하는 ‘다 같이 행복한’ 감동극이다. 그리고 극중극 형태로 할머니의 기부 기사에 돈을 노리고 도둑들이 들어오면서 벌어지는 코믹극이다. 감동과 재미를 동시에 주는 연극이라면 일석이조라 할 만하다. 그래서 앵콜을 결정했을 것이다. 

 

“재밌게 봤어?”

“예. 그럼요.”

“뭘, 초반부터 졸더구만. 나도 지루했어.”

 

극장을 빠져나오면서 바로 앞 중년 부부가 대놓고 나눈 대화이다. 이날 공연에는 중년 부부와 일행이지 싶은 중년의 아저씨들이 눈에 띄었다. 나름 입양, 가난, 고생 등 이 연극의 코드와 잘 맞는다 싶었다. (단지 술을 한 잔씩들 걸치고 오셨는지, 연극 중간 중간 계속 끼어들었다. 이게 마당극이면 참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들의 대화에서도 여실히 재미가 없었다는 평이 나오더란 말이다. 이 말인즉, 올댓컬쳐 문화선수단인 덕분에 친구에게 공연을 보여주는 호사를 누린 나와, 공연을 즐긴 친구만 그런 생각을 했던 게 아니었다는 말이다. 


크지 않은 일반 건물의 지상 한 층을 공연장을 꾸민 미라클 씨어터는 웬만한 지하공연장보다 더 작았는데, 무대와 바로 붙은 유일한 객석 입구와 건물 밖 비상구까지 연극무대로 활용하는 아이디어가 꽤 신선하고 좋았다. 또 배우들의 연기도 넘침도 모자람도 없이 좋았고, 대본이나 진행도 무리가 없고 탄탄했다.

 

그런데 왜 재미가 없을까. 입양, 삯바느질, 기부, 친부모와의 만남, 기부금을 노린 도둑, 도둑들과 치매 할머니 사이의 관계, 자원봉사자 등등이 익숙한 코드가 등장하는데, 사실 어느 정도 짐작 가능에 구태의연한 구석이 보인다. 한편 무난하다는 게 좋은 게 좋은 것일 수도 있지만 연극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이런 내용과 전개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다. 다시 말해, 드라마와 영화에서 수없이 본 듯한 큰 줄기가 세쌍둥이와 도둑들 간의 색다른 에피소드로도 상쇄가 되지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덧붙이고 싶은 말은 이런 시각은 어디까지나 ‘내’가 보는 시각이다. <해피 투게더>가 형편없다는 얘기가 아니다.

 

중년 관객의 대화가 기억에 남았던 이유도 ‘이들은 재미있게 봤을 것’이라는 기대와 달랐기 때문이다. 그들이 중년 관객의 대표 격은 물론 아니지만 이 연극이 잡고 있는 타겟층이 애매모호하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더란 말이다. 이런 느낌은 ‘대학로의 스테디셀러’라는 포스터의 홍보문구에서 미리 염려가 되었던 부분인데, 스테디셀러로 팔리는 게, 보통 평이하다는 인상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다들 우중충한 가운데 연말 같지 않은 연말을 보내는 요즘, 웃음과 감동의 두 가지 재미를 준다는 점에서만큼은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면 볼 만한 연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