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한팩 새개념 공연예술 시리즈 [2011한팩 하이브리드]
미디어 퍼포먼스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기간 : 2011/09/22 ~ 2011/09/25
장소 :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출연 : 김형남, 이윤경, 송보현, 허지은, 안진주, 이현경, 이동하, 최우석, 배민수, 김산호, 배건하
원작 : 루이스 캐럴
예술감독 : 안애순
연출 : 김효진
영상/미디어아트 : 김형수
안무 : 김형남, 김효진
음악 : 표신엽
무대 : 김인철
제작 : YMAP, (재)한국공연예술센터
주최 : (재)한국공연예술센터
제작진이 블록버스터 수준이다. 그 동안 흔치 않아도 종종 완성도 높은 하이브리드 공연이 적지 않게 무대에 올라왔지만, 이번 기회에 종결짓겠다는 듯 작정하고 만든 작품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이 연극 위주 편성에서 무용 전용 극장으로 바뀌면서 연극인들 사이 불만이 적지 않았다고 알고 있다. 요 몇 년 사이 명동예술극장 등 중극장 붐이 일면서 사그라졌지만, 시설이며 설비가 한국 최고 수준인 아르코예술극장이고 보면 불만이 당연한 일이다. 이 작품은 실랑이가 벌어지는 이유를 충분히 보여준 작품이다.
한팩과 YMAP 공동 제작한 ‘미디어 퍼포먼스-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한 <2011 한팩 새 개념 공연 축제> 가운데 가장 주목을 받은 작품이다. 자체 기획 축제에 숟가락을 얹는 격으로 볼 수도 있지만, 관객 입장에서 참가작 가운데 앞에서 이끌면서 기획 자체에 이목을 끈 점은 인정해야 한다. 이번 페스티벌에서 판을 여는 역할을 했으니 앞으로 '새개념 공연예술 작품 활성화'를 과제로 내세운 한팩의 행보를 두고 볼 일이다.
짧은 4일 공연 와중에 놓치지 않고 봤으니 운이 좋다. 그러나 고급호텔 뷔페에서 한 끼 식사 든든히 한듯 포만감이 가득하다가도 곰곰이 생각해보면 "뭘 먹었지?(뭘 봤지?)" 하는 생각에 고개를 갸웃거리게도 된다. 과유불급이라는 표현이 맞나 싶기는 한데, 미디어, 무용, 음악, 연기 가운데 하나가 중심을 잡고 균형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 1865)’는 ‘가벼우면서도 잘 짜인 농담에서부터 동음이의어를 이용한 말장난, 당시 유행하던 노래에 대한 패러디, 시대 상황에 대한 풍자까지 온갖 비유와 상징, 비틀림으로 가득 차 있’(네이버 캐스트 참조)는 작품이다.
영화, 연극, 노래, 만화, 드라마를 통해 수없이 반복해 차용한 익숙한 텍스트지만 정작 원작을 번역본이 아닌 원서로 보라는 얘기가 심심치 않을 정도로 비영어권에서 작품의 결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정신분석학자나 문화이론가들의 글에서 예로 종종 등장하면서 나이가 들수록 점점 만만치 않게 읽히는 동화이다. (원작을 심리학, 철학, 뇌과학, 시간학, 진화론, 교육학, 언어학, 법학, 정신분석학 등으로 풀어낸 책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빅토리아 시대에 쓴 작품 줄거리를 따라잡는 방식은 큰 의미가 없으므로, 원작이 다루는 무의식의 세계는 영상으로 다루기에 매력적이고, 언어를 배제한 무용으로 표현하기에도 나쁘지 않다.
150년 전, 산업혁명과 자유무역으로 세계 최강대국으로 나선 영국 빅토리아 시대 거대 자본에 힘입은 중산층이 대두되면서 봉건주의가 무너지는 대신 자본을 앞세운 중산 계급이 대두되었던 시대, 양반을 돈으로 사듯 스노비즘(snobbism, 속물주의)이 판치는 젠틀맨(Gentleman) 가문의 한 소녀의 꿈 속 무의식을 변주한 21세기식 동화로 이번 작품 완성도는 높은 편이다. 다만 영상으로 보여주는 폭발적인 이미지의 향연이 제대로 해소되지 못할 경우, 무의식은 하이드 씨가 벌인 비극처럼 실제 상황으로 구현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현대인이 품은 불안한 내면을 밖으로 드러내는 데에 성공했다는 의미인 동시에 폭발 직전의 상황 묘사처럼 보인다는 의미이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작가를 소아성애자로 진단하는데, 실제로도 루이스 캐럴이 실제 ‘앨리스’라는 소녀를 모델로 두고 동화를 썼다고 한다. 로버트 스티븐슨이 쓴 중편소설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이상한 사건’도 1886년 작으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두고 있다. 그 당시 식민지 쟁탈의 결과로 얻은 무궁무진한 박물관식 약탈과 급격한 사회 격변은 분명 ‘이상한 나라’의 ‘이상한 사건’이었을 것이다. 토머스 드 퀸시의 ‘어느 영국인 아편쟁이의 고백’에서 보듯이 당시 아편은 가정상비약이었다. 아편전쟁이 일어난 원인이 보여주듯 당시 영국사회에 만연한 아편 중독이 두 작품에 영향을 끼쳤다(고 확신한다).
아편이 했던 역할을 영화, TV, 게임 등 영상물이 대체한 지 오래, 3D, 4D로 이어지는 환상이 실재와 구분을 허물려는 시도가 점차 현실이 되고 있다. 그럼에도 약에 취하지 않고 멀쩡한 상태에서 앨리스의 행보를 따라가기에는 쉽지 않다. 화려한, 현란한, 눈부신 등 몇몇 꾸밈말을 빼면 선입견이 없는 아이들이 아닌 이상 이성으로 작품을 즐기기에도 무리다. 그럼에도 다양한 변주가 일어나는 앨리스의 무의식의 세계를 구현한 작품으로 초반 파사드 무대부터 껍질을 벗기듯이 안으로 점점 들어가는 무대 연출은 원작 이해도가 높으면서도 해석을 따라가는 방식에서 벗어나 보기 드문 형식을 취하면서 관객들에게 구현할 수 있는 무의식의 세계를 잘 끌어내 선사한다.
정교한 영상과 무용수 사이 합이 살짝살짝 어긋나면서 무의식과 의식 사이 경계가 흐트러지는 점은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가상이 채울 수 없는 긴장감이랄지, 무의식과 낮은 싱크로율은 동일한 무용수들이 파사드 무대와 점차 15도 경사 무대의 뒷벽을 열면서 원근감으로 ‘앨리스 증후군(Alice syndrome, 이미지의 변용을 일으키는 증후군)’을 간접 발생시키면서 점차 높인다. 허구와 실재 사이의 기묘한 조합은, 앞서 비유한 뷔페로 이야기하면 차갑고 뜨거운 음식을 한 접시에 놓고 먹는 묘한 재미를 준다.
하지만 YMAP의 영상은 어디선가 본 듯하고, 툇마루 무용단의 무용 역시 원작과 접점을 제대로 이뤘는지 확신이 가지 않는다. 남녀 무용수 모두 앨리스로 등장하는데, 인간이 가진 양성(兩性)성을 드러내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무용에서 그 차이를 보여주지만 그 역할이 구분되지 않는 이상, 남자 무용수가 등장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아버지와 아들의 등장은 잠시 눈의 피로를 덜고 숨을 고르는 시간이었으나, 아버지의 출연은 원작을 소개하는 수준이라 빼도 좋을 부연으로 보이고, 아역 배우가 어린 탓에 아이가 상상하는 세계로 보기에는 무리라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좀 더 밀도를 높여서 무대 바닥을 벽처럼 구사해 영상을 투사하는 만큼 기회가 된다면 2층 객석에서 조망하듯 보면 색다른 재미가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는 공상과학소설 같은 일이 실제로 가능하다는 기사(‘뇌 신호 영상으로 타인의 생각을 읽는다’ 2011/9/27 KBS)가 떴다. 2011년 9월과 10월에 걸쳐 예술과 과학의 만남을 주제로 열리는 ‘피카소&아인슈타인3.0’ 전시회도 그렇지만 과학과 예술이 그 걸음을 같이 한다는 생각이 든다. ‘미디어 퍼포먼스-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단순히 미디어 예술 개념을 넘어서서 기술의 진화를 바탕으로 초보적인 수준에 머무는 의식 세계 구현이 아닌 무의식 세계 구현을 예술로 보여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사진출처 - 한국공연예술센터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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