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10주년 기념 앵콜 공연 <이 爾>
기간 : 2010년 11월 4일 ~ 2010년 12월 5일
장소 :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출연 : 연산 역 / 전수환, 김뢰하, 공길 역 / 정태우, 정원영, 장생 역 / 이승훈, 문정수, 녹수 역 / 하지혜, 홍내관 : 정석용, 이승원, 우인 : 이성근, 유병선, 김영진, 황순영, 김민경, 박지환, 노영균, 김기분, 남정우, 김도한, 공태웅, 김철진, 김애린, 이다아야, 김리나
작․연출 : 김태웅
제작 : 극단 우인
기획 : ㈜오디뮤지컬컴퍼니
광화문
연극 <이 爾>가 올 2월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서 10주년 기념 공연을 마치고, 앵콜 공연으로 부산, 인제, 안양, 화성을 돌아 다시 서울로 입성했다. <이 爾>의 백미 소학지희(笑謔之戱)가 전국 최고 예인들을 고루 모아 궁중에서 펼친 마당이라면, 광대들이 전국을 돌면서 익살과 해학과 풍자로 풀어가는 건 당연한 이치이다.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올린 공연은 제반 여건에 따른 선택이겠지만 작/연출 김태웅의 거듬처럼 “(사료를 보면 광화문은) 중요한 나라 행사나 임금의 행차 때 광대들이 모여서 놀았을 것이다. 아마도 예전 그 자리가 지금 세종문화회관 터”로 잘 어울린다. 올해 경복궁을 복원하였으니 의미를 더 할까 싶으나, 완공일을 급하게 당기려다 부실 공사로 쪼개지는 현판 등을 보면 소학지희를 보듯 실소가 터진다. 그래서 엄숙한 기념행사보다 광대들 한판 놀음이 더 제격으로 보이기도 한다. 아무려나 김태웅은 여기에 더해 우인들을 작품의 “진정한 주인공”이라 치켜세운다. 이 말이 공치사가 아니라는 것쯤 공연을 보면 알고도 남는다.
세종문화회관 건너 광화문시민열린마당에 가면 신문고 자리가 기념터로 아직 남아 있다. 조선 초기 민의전달이라는 제도 취지가 시일이 지나 양반들 상소나 올리는 용도로 쓰였다가, 연산군에 이르러 그나마 폐지되었으니, 북채 잡아볼 일 없는 상것들에게 싸움 구경하듯 했을 양반 가문 북치는 소리를 듣는 재미도 없어졌을 게다. 그 즈음, 둥둥둥둥 부평초 광대들이 대신 울리는 신명나는 북소리는 무명초 백성들의 묵지근한 시름을 잠시나마 달래주었을 것이다.
물론 공길처럼 왕의 품에 안긴 이爾(조선시대 왕의 신하를 높여 부를 때 사용하던 호칭)가 된 광대가 아니라 장생처럼, 그리고 민초들의 속내를 한껏 반영해 왕의 머리 위에서 노는 머릿니로 노는 광대들에게나 해당하는 경우이다. 그렇게 서슬 퍼렀던 시절 왕과 신하들을 조롱하고 풍자를 하였을 테니, 겸사겸사 앵콜 공연이 한낱 풀잎에 맺힌 이슬처럼 사라졌을 광대들의 원혼을 달래는 무대로도 좋다 싶다.
벽사
광화문에서 벌이는 공연이라 마냥 그렇다는 게 아니다. 작품을 열고 닫는 벽사(辟邪) 의식 가운데 마지막 닫는 의식을 보면 죽은 장생이 덩실덩실 춤을 추는 대목이 나온다. 당시 우인들을, 넓게는 당시 폭정에 '지 새끼를 잡아먹고 살았던' 민초들을 기리는 역할로도 제법 나쁘지 않아 보였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이런 해석은 극중 말미 실제 역사적 사건이기도 한 중종반정에 역행을 하는 식이다.
올 초 10주년 기념 공연을 보고나서도 ‘연극에서 장생을 반정에 참여하는 민중의 대표쯤으로 묘사하고 있지만, 연산이 범한 큰어머니이자 박원종의 누이인 월산군부인이 자결하자, 박원종 주도로 일어난 쿠데타인 중종반정에 실제 민중들의 역할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미지수’라고 한 적이 있다. 중중반정 이후 반정공신들의 제몫 챙기기가 여전했고, 되레 중종반정을 계기 삼아 정치이념으로 유교를 한층 강화했다는 점에서 반상의 계급 구도가 더더욱 악화된 셈이다.
장생은 작가의 상상력이라 역사와 비교해 옳고 그릇을 따질 수는 없지만, 정황으로 봐도 연극에 무리하게 적용한 듯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애초 역사란 게 강자의 전리품 성격이 짙다 보니, 우리가 사료로 알고 있는 중종반정은 쿠테타에 성공한 공신들의 몫이라 치면, 연극적 상상력을 동원해서 재구성하는 게 납득이 가지 않는 건 아니다. 연산이 폭군이고 아니고를 떠나 승자나 패자의 논리에서 천민 출신 광대 장생이 등장할 여지가 바늘귀만큼도 없기도 하다.
장생은 극중 우인들 가운데 최고 광대이자 반골로 등장한다. 다시 말해 민초들의 대변자이자, 그들의 염원이 낳은 미륵불이다. 그렇다면 마지막 벽사 의식을 연산 폐위에 대한 환호로 볼 게 아니다. 죽은 장생이 다시 등장하는 이유도 면면히 정신으로 살아남아 후일, 인내천(人乃天) 동학 정신으로 뿜어 나오는 이상이자 이념에 피와 살을 붙인 인물로 볼 수 있다. 올 2월에 본 공연 당시와 다르게 우인들이 이명박 정부가 민심을 거스르고 밀어붙이는 4대강 사업을 두고 재담을 벌이는 대목 역시 심증을 더한다. 그래서 연극을 닫는 벽사의식은 지금 현실에서 벌어지는 부당함에 물처럼 틀에 굳지 않고 유연해야 한다는 의도로 보인다.
굿판이란 늘 현실을 반영하여야 하는데 이 점이 바로 한때 정서를 담은 영화가 따라올 수 없는 연극의 파괴력인 동시에 10주년을 맞이하여 과거에 머물지 않고 늘 바뀌는 작품으로, 또 앞으로가 기대되는 지점이다. <이 爾>가 극을 열고 닫는 방식으로 벽사의식을 취하고 있고, 확실치 않으나 제문(祭文)을 적은 듯 보이는 무대 바닥 위에서 노는 방식이 역사적 상징으로 방점을 찍었다 해도 그렇다.
소학지희
북, 장구, 꽹과리, 피리 소리에 으쓱으쓱 어깨춤이 절로 난다. 극 전체에서 간소한 소품 몇 가지가 쓰는 이유도 우인들 놀음판을 위해 넓고 트인 무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빈 무대라 해도 연산, 공길, 장녹수 등이 실존 인물이자 영화로 힘을 더해 파괴력을 갖춘 캐릭터들이고 10주년 무대까지 오면서 벼린 중심 배우들이 썩 좋은 연기를 펼치면서 채우는 맛이 있지만, 역시 연극 전체 틀은 놀음판이라야 제격이다.
우인들만 등장해 펼치는 질펀한 놀음판은 연산, 공길, 장녹수 사이 드라마 갈등과 맞물리는 지점이 없다. 다시 말해 극 구성으로 보면 우인들의 놀음판을 이렇게 큰 판에서 갖가지 재주를 선보이면서 벌일 이유가 없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벽사로 푼) 제의, (우인들의) 놀이는 연극의 기본적인 기원이자 속성으로 연극적 완성도를 위함으로 보이는 한편, 작가의 머릿속에서 나온 장생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의도이기도 하다.
연극이 영화보다 5년을 앞섰으나 영화로 이 작품을 기억하는 이들은 연극을 두고 영화에 비해 장생이 역할이 작다고들 한다. 위에서 말했듯이 장생은 우인들의 놀음이 최고조에 달한 상징적 인물이다. 딱히 궁궐을 떠난 장생이 나서지 않아도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갖추지만 역으로, 아니 연극이 먼저이니 순리대로 보면 현장성을 상실한 채로 편집으로 가다듬은 영화에서는 놀음판으로 연극처럼 장생이 상징하는 바를 뚜렷하게 표현하는 데 장르적 한계가 있다. 그러니 장생을 공길을 놓고 연산과 대립하는 인물로 부각시켜 비중을 늘릴 수밖에 없다.
연극에서도 장생과 공길 사이 남색 관계를 짐작할 수 있는 장면과 언급하는 대목이 잠깐 나오지만, 공길은 과거 장생과 추억을 되새기는 영화와 달리 매우 정치적인 인물로 묘사된다. 영화와 연극 사이 공길에 대한 다른 해석은 극 전체에 대한 다른 시점, 다른 해석을 낳는다. 영화를 봤어도 연극을 봐야하는 가장 큰 이유이다. 그런 이유로 연극 해석 밑바탕으로 소학지희를 단순한 웃음거리, 볼거리만으로 볼 건 분명 아니다.
무대는 앞에 열린 마당을 두고, 왕권을 상징하는 거대한 창호지 문으로 가린 방을 뒤에 둔 형국이다. 문 앞 마당에서 연산은 광대들과 같이 어울리며 한 무리로 섞인다면 문 뒤에서 문이 스르르 열리면서 나타나는 연산은 얼굴이 셋인 아수라처럼 굳은 얼굴로 정색을 하며 등장한다. 연산의 시각에서 열린 마당은 가릴 게 없는 무의식이 그대로 드러낸 무대라면 문 뒤로 검은 배경을 두어 밀실에서 벌어지는 가려진 밀실은 어머니를 죽인 이들의 밀실, 즉 억압의 족쇄이자, 더불어 그들과 다르지 않는 탐욕스런 자신을 발견하는 정체성 혼란의 아수라장이다.
객석에서 보면 방에서 벌어지는 상황은 닫힌 창호지 문에 비치는 그림자극으로 표현된다. 장녹수가 출산하는 장면은 왕권이 승계하면서 그녀의 욕망이 태어나는, 비로소 밖으로 드러나는 순간을 상징한다. 마찬가지로 중종반정이 일어나자 장녹수의 손발이었던 홍내관이 왕자를 낳은 장녹수의 배에 깊이 칼을 꽂는 장면도 그림자극으로 처리된다. 배에서 나온 욕망이 다시 칼이 되어 돌아가는 형국이다. 그림자의 속성이 허상이라고 볼 때 닫힌 문 앞쪽 열린 마당에 나와 오열을 하는 연산, 공길에게 뒤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한낱 허망한 꿈같은 일이다.
애초 연극 내내 연산이 앉은 있는 용상은 입관하고 난 뒤 운구를 위해 끈으로 묶어놓은 관처럼 보인다. 원귀를 달래는 벽사의식과 연관성을 찾아볼 수도 있는 대목이자, 어머니 폐비 윤씨에 대한 트라우마에서 내내 벗어나지 못하는 연산을 드러내는 상징물이다. 죽음 위에 올라탄 채로 같이 무덤에 묻힐 권력이 꿈이 아닐 리 없다.
배역
연극에서 장녹수와 공길이 대립하는 지점은 영화처럼 애증을 강조한 삼각관계가 아니다. 사료에 의하면 연산 폐위 당시 장녹수는 후궁으로 최고 위치인 정1품 빈(嬪)이 아니었다. 정3품 소용(昭容) 정도에 그친 장녹수 입장에서 정4품 대봉으로, 제목 그대로 정치적 의미를 담은 왕의 이爾인 공길은 정치적 최대의 난적일 수밖에 없다. 역으로 공길이 금부에서 독립하여 희락원을 따로 두고 우인들을 조련해 형조판서 윤지상의 탐욕을 고발하는 대목도 장생의 의도와 달리 정적인 장녹수의 측근을 제거하려는 의도이다.
장녹수가 공길을 향해 '스스로 큰 욕을 먹어야 할 수 있는' 복수극은 왕손을 낳은 입장에서 광대 따위에게 벌이기에는 우도할계(牛刀割鷄)로 보이지만 그녀도 노비출신에다 가무에 능해 연산의 눈에 든 인물이다. 미천한 공길이 자신의 분신인양 자신의 뒤를 밟아 올라오니 정치적 숙적인 동시에 두려웠을 게 당연하다. 또한 장녹수가 태생적 한계에 의해 정치적 배경이 불안한 지위나, 후대 속설과 달리 장희빈에 필적하는 요부가 아니었다는 점도 그녀의 위치가 불안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보탠다. 역사적 사실은 허구와 교묘하게 만나고 꼬여서 연극에서 보여주는 장녹수의 불안과 질투에 기름을 붓는다.
<이 爾>가 <왕의 남자>와 비슷한 듯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올 수밖에 없는 대목이고, 영화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 역시 장녹수에 대해 팜므파탈로만 다뤄진 부분이다. 22억을 투자한 대중상품인 영화가 원작의 정치적 의도를 비껴간 이유이자 제목을 동성애 코드로 풀어낸 이유하다. 영화 상영이후 공길을 정치적 인물로 해석한 중성 이미지의 오만석이 아닌 교태를 한껏 강조한 꽃미남 이준기 이미지로 공길이 남고 말았다.
배우
올 초 오만석, 김호영에 이어 정태우, 정원영이 공길 역으로 나섰다. 내가 본 캐스팅으로 정원영은 잘생긴 외모가 영화배우 이준기와 이미지가 비슷해 영화를 먼저 본 관객에게는 익숙하게 받아들일 만하다. 밖으로 드러나는 테크니컬 연기에 익숙한 뮤지컬 배우 경력으로 보면 연산으로 10년차 배우인 김뢰하가 펼치는 메소드 연기를 받아치기에 무리가 있을 수도 있는데, 어느 정도 받쳐준다. 다만 역할 해석 차이일 수 있는데, 내가 본 정치적 인물로 공길을 보면, 카리스마나 숨은 정치적 야욕이 아직 제대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확실히 예쁘다.)
이번 공연에서 가장 눈에 띤 배우는 장생 역의 문정수다. 장생은 김뢰하와 더불어 10년째 작품을 책임진 이승훈이 실물로 다져놓은 인물로 익숙하다. 봉산탈춤 이수, 태껸 수벽치기 기능 보유자인 이승훈은, 역시 김뢰하와 더불어 2001년 동아연극상 연기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제껏 장생이니 올 초에 봤을 때가 그랬고 장생의 표본이라 할 만하다.
2009년 공연 이후 우인/남원부사 역으로 참여한 문정수는 올 2월 공연만 해도 우인 중 1명이었다. 특출한 연기로 인상이 남은 이재훈과 함께 놀음판을 이끄는 역할을 했지만 단연 장생 역으로 첫 장생이라 믿기지 않게 오라를 뿜는다. 1인극 품바(18대)이자 남사당놀이, 봉산탈춤 전수자로 우인 최고에 걸맞은 실력과 경력을 갖춘 데에 있다. 장생이 우인 중의 우인으로 꼽히는 인물이고 보면 단연 우인에서 장생으로 가는 극중 상황이 실제 배역에서 그대로 연결되는 셈이다. 일회성 공연이 아닌 10년 공연으로 탄탄한 작품이라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문정수가 맡았던 우인 역할에 새롭게 가세한 황순영은 연극 <이 爾>를 위해 태어난 인물이다. 익살과 재치로 관객들의 웃음을 몰고 다닌다.
새로운 배우들을 만나는 기쁨으로 극장을 찾았다가 한결 부드러워진 공연을 보고 다소 감흥이 덜했다고 봤으나 생각지 않게 또 다른 의미를 안고 돌아오게 되었다. 창작극으로 10주년작은 흔치 않다. 더욱이 흥행만 앞세우지 않은 연극다운 연극으로 앞으로도 <이爾>의 매해 공연을 기대한다. 서울 공연이 끝나면 12월 중순 경 제주도에서 또 한 판 놀음판을 벌인다. 전국을 돌며 소학지희의 재미를 듬뿍 쏟고 오길 바란다.
팸플릿을 두고 굳이 공연과 연관 지을 필요는 없지만 사족으로 한마디 하겠다. 2월 공연 당시 팸플릿 내용과 구성을 거의 그대로 따온 점이나 오타 수정 스티커는 그러려니 할 수 있지만 우인 소개 인쇄가 너무 엉망이다. 2월 공연 팸플릿도 우인들만 사진이 흑백이라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싶었는데, 이번 팸플릿에서는 흑백에다 그나마도 마스터 인쇄를 했는지 사진이 뭉개져서 알아보기 힘들다. 사소한 부분이지만 앞 쪽에서 “진정한 주인공”이라고 치켜세운 연출의 말이 좀 무색하다.*
사진출처 - 오픈 리뷰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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