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이었어요. 동네 치킨집 앞 간이 테이블에 앉은, 두 명이 앉아도 네 명이 앉은 듯한 배불뚝이 아저씨 둘은, 그러니까 저와 친구는 이런 얘기를 나눴더랬습니다. "나이 먹으니 말야. 몸도 피곤하고, 마음은 공허하고, 의욕은 떨어지고 심지어 식욕도 떨어져서 앉은 지 30분이 지났는데도 치킨이 남아 있어.... 있을 수 없는 일인데. 그지?" "생맥주잔 들 힘도 없어 술도 못 마시겠는데 살은 자꾸 찔까?"... 하나마하한 얘기를 주고 받았습니다.치킨집 사장님을 비롯해 옆 테이블 손님도 그렇고, 소금을 한됫박 뒤집어쓴 배추처럼 축축 늘어졌습니다.
"이게 정녕 6월 날씨란 말인가.. 짜증나는데 휴가 때 훌훌 여행이나 갈까?" 친구는 "티비에서 메르스, 메르스 해대는 거 몰라? 면서 싸돌아다니지 말고, 집에나 일찍 들어가." 라고 잔소리를 했습니다. 나이를 먹으니 확실히 내 구역이 생긴듯 하지만 반경이 무척 좁아지기도 했습니다. 이제는 누가 진수성찬을 차리고 기다린다고 해도 먼거리는 질색입니다. 늘 고만고만한 동네 주변에서 머물지요.
"그러지말고 오랜 만에 친구들끼리만 놀러 가보자." "사장님. 정신 번쩍 들게 식초 더블로 친 골뱅이 앤드 누들 주세요. 살찌니까 설탕은 적게~." 친구한테 엉뚱한 말을 돌아옵니다. 하나마나한 소리라는 의미일 겝니다. "뭘 좀 배울까 싶어. 요즘 사는 게 영 재미가 없어." "쓸데없는 소리 말고, 식은 치킨이나 먹어. 우리 나이에 무슨...."
이때 어딘가에서 따그닥따그닥 말발굽 소리와 함께 중후한 바리톤이 들려옵니다. 자신이 기사 돈키호테라는 망상에 빠진 알론조 할아버지가 부르는 '이룰 수 없는 꿈'입니다. "어어? 돈키호테? 아니 알론조 할아버지?" "그래. 산초. 나설 채비는 끝났으냐?" "예? 뭔 소린지... 그러니까 치킨도 남았고, 골뱅이가 곧 나올 거고..." "쯧쯧. 녀석 여전히 느리고 게으르구나. 알았다. 천천히 가고 있을테니 준비가 되거든 따라오너라." 홀연히 나타난 알론조는 느긋하게 말을 몰더니 골목을 끼고 사라집니다.
"봤어? 돈키호테, 미친 노인이 말 타고..." "말? 뭔 말같잖은 소리야. 더위 먹었어?" '이럴수가! 정말 꿈을 꾸웠을까요? 이룰 수 없는 꿈? 꿀 수 없는 꿈? 생각해보면 어차피 꿈인데, 꾸지 못할 꿈이 없습니다. 노인도 저렇게 꿈을 찾아 돌아다니는데 말입니다. 무리하게 나섰다가 심장마비가 올지도 모르지만...' 이라고 말하고 싶은가 싶지만 엄두가 안납니다. "그러게 졸라 먹었나봐, 더위." 피식 웃습니다. 나이를 응가구멍으로 먹었다고 해도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고, 보는 게 응. 이라고 했도 옹, 이라고 남들이 말하면 옹! 하고 눈치껏 행동할 나이가 됐습니다.
2015년 6월 30일, 상반기가 허무하게 끝납니다. 하반기도 다르지 않은 인생일 겁니다. 그래요. 충분히 압니다. 하지만 화장실에서 나만의 시간을 보내면서 흥얼거릴 노래 하나쯤 있어도 좋지 않나요? 남들 모두 '위아래'나 신곡 '셋킷, 셋킷'거릴 때(씨스타은 영원한 알돈자입니다. (보라는 최고입니다. 언젠가 뮤지컬 무대에 설 날을 고대하면서) 남과 다른 내 자신이 되고 싶지 않나요? '구보씨'라는 필명으로 활동한 지 어언 5년, 최고의 뮤지컬을 꼽으라면 [맨 오브 라만차]요, 최고의 삽입곡을 고르라면 '이룰 수 없는 꿈'입니다. 개나 소나 말이나 돼지나 수컷이라면 다 따라 부르는 '지금 이 순간(뮤지컬 `Jekyll And Hyde`)'은 라디오스타에서 들어는데 이자나 연출이 가장 싫어하는 곳이라지요.
요즘 칭타오 맥주 모델로 주가를 올리고 있는 정상훈 배우가 산초로 출연합니다. 전 '스팸어랏'에서 보고 팬이 되었는데요. 정성화 배우처럼 하루 빨리 돈키호테로 데뷔하길 기대합니다. 참고로 '스팸어랏'도 '맨오브라만차' 제작사인 오디뮤지컬컴퍼니가 들여온 작품입니다. 연출 역시 데이비드 스완으로 같은 분이구요. 이 작품은 당시 대형 뮤지컬 흥행 코드와 달랐음에도 과감하게 들여온 작품이구요. 대극장 버전에서 중극장 버전으로 줄었지만 꼭 봐야할 작품이라고 봅니다.
아무튼 '맨오브라만차'는 오디뮤지컬컴퍼니를 먹여 살리는 묵묵한 장남 같은 작품입니다.. 조승우 배우가 다시 돈키호테로 돌아왔네요! 관록의 류정한 배우도 함께 하구요. 극중 돈키호테가 노인인 바, 나이가 들수록 더 어울리는 역할입니다. 그래서 더 기대가 되기도 하구요. 저는 정성화 배우 버전으로 봤는데요. '이룰 수 없는 꿈'은 언제 들어도 좋고, 역시 나이가 드니 더욱 의미있게 다가옵니다.
[2015.06.30]
제목 : 맨 오브 라만차
부제 : 세계를 감동시킨 세기의 명작
장르 : 뮤지컬
기간 : 2010년 1월 22일 ~ 2010년 2월 15일
장소 : LG아트센터
출연 : 세르반테스, 돈키호테 역 - 류정한, 정성화 / 알돈자 역 - 이혜경, 김선영 / 산초 역 - 이훈진 / 여관주인 역 - 민경언 / 여관여주인 역 - 한지연 / 까라스코 역 - 이계창 / 안토니아 역 - 정명은 / 신부 역 - 이영기 / 가정부 역 - 김현숙 / 이발사 역 - 김호 / 페드로 역 - 배준성 / 안셀모 역 - 김영완 / 페르미나 역 - 김진숙 / 노새끌이 역 - 우원호, 장민, 임재현, 황세준
제작: 오디뮤지컬컴퍼니, CJ엔터테인먼트
아이티에 돈키호테가 달려간다
‘아이티에 희망의 기사 돈키호테가 갑니다.’
며칠 전부터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 오픈 리뷰(www.openreview.co.kr/)에 들어서면 떠오르는 팝업창 문구가 시선을 이끈다. VIP석 1만원, R석 5천원 등 일정 금액 이상을 유니세프한국위원회에 기부하는 조건으로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 관람료를 30% 활인해주는 행사다.
200년 만에 찾아온 7.0 강진과 20여 차례 여진으로 폐허가 된 아이티를 돕는 바지런한 손길에 <맨 오브 라만차>가 함께 한다는 소식은 우선 반가운 일이다. 기획사 마케팅 차원으로 볼 수도 있지만 문화 기부 프로그램은 당연히 성공적인 마케팅의 사례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보통은 공연 내용과 연관 프로그램을 기획하기 마련이다.
올 초, 신시컴퍼니는 <시카고> 티켓 수익금과 자선 경매 행사를 통해 ‘한부모 여성가장 돕기’ 행사를 펼쳤다. 여성의 자립(?)을 다룬 작품 성격과 잘 맞아 떨어지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맨 오브 라만차>는 아이티와 무슨 연관이 있을까. 급작스런 아이티 참사를 두고 작품과 연결 짓는 건, 그 순수한 의도를 의심하는 셈이 되는 걸까. 공연기획사의 문화 관련 나눔 프로그램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니, 어쩌면 흘낏 눈으로 보고 지나갔을지도 모르겠다. 만약 내가 <맨 오브 라만차>를 직접 보고 느끼지 못했더라면 말이다.
기부 나눔 팝업을 보고 희망을 찾아 메마른 고원을 달려가는 슬픈 수염의 기사, 돈키호테의 모습이 떠올랐다면, 흠, 역시 지나친 몰입이다. 정작 뮤지컬에서는 로시난테 대신 나무 말 인형을 타고 흉내만 내는 데 말이다. 라만차 고원을 달리는 돈키호테는 볼 수 없는 데 말이다. 모르겠다, 이 작품이 유독 머리보다 좀 더 아래, 가슴 가까이에 좀 더 와 닿은 이유를. 성경 다음으로 많이 팔린 책이지만 정작 완독한 독자가 드문 원작 소설의 힘이 뿌리인 건 분명하다, 고 내심 생각한다만. 아이티에 희망을 나누는 뮤지컬이라 너무 광범위하다.
인생이 달라진 게 이 작품 만일까?
소설가 김연수는 추천이나 홍보 문구가 실리기 마련인 띠지를 무시하고 그냥 갈피로 사용한다고 한다. 책을 읽기에 앞서 정보 차원을 넘어선 과한 칭찬은 조미료를 잔뜩 친 애피타이저처럼 부담스러워, 나 역시 마찬가지다. <맨 오브 라만차> 팸플릿에는 이 작품으로 2008년 제2회 더뮤지컬어워드 남우주연상을 받은 조승우의 말이 실려 있다. ‘뮤지컬 평론가들이 선정한 8월의 뮤지컬 1위!, 이 뮤지컬을 보고 인생이 달라졌다는 조승우의 고백처럼, 순간이 영원이 될 수도 있음을 증명하는 작품’
인생이 달라졌다? 배우다 보니 뮤지컬을 통해 각별한 생각을 품을 수도 있겠으나, 표현이 좀 과하다. 뛰어난 원작 소설을 배경으로 삼았다지만 총 74장(chapter)이나 되는 방대한 분량을 브로드웨이 뮤지컬로 재탄생하는 과정에서 뼈대만 남긴 데다 캐릭터도 바뀌지 않았나 말이다. 예를 들면, 알돈자가 덩치 큰 평범한 농부의 딸에서 예쁘장한 술집 창녀로, 돈키호테의 허황된 신분 상승 약속에 혹해 따라다니는 산초를, 그냥 ‘좋으니까(I Like Him)’를 부르는 든든한 친구이자 충실한 시종으로 바꾸는 식이다. 한국 완역판 총 1400페이지 벽돌 두께 2권 분량 소설을 2시간 반 남짓한 공연으로 옮겼으니 간략화, 단순화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하지만 살을 베면 원치 않아도 피가 흐르게 마련, “꿈꾸는 이들을 위한 열정과 희망의 메시지, <맨 오브 라만차>”라는 소개는 구체화 사건이 알돈자와의 관계로만 축약되다보니 사랑은 모르겠으되 꿈, 열정 희망 범위가 불분명하다. 역으로 꿈, 희망, 열정을 노래하지 않는 뮤지컬이 있나 싶은 것이다.
그런데, 그게 힘이다
The Impossible Dream (The Quest)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의 대표곡. 작품의 메시지가 가장 잘 집약 되어있는 곡이다. 호소력 짙은 가사와 멜로디가 인상적인 이 곡은 Elvis Presley, Frank Sinatra, 세계 3대 테너 Placido Domingo 등 세계적인 유명 가수들에 의해 수차례 리메이크 되었다. "이게 나의 가는 길이오, 희망조차 없고 또 멀지라도, 멈추지 않고 돌아보지 않고… 오직 나에게 주어진 이 길을 걸으리라." ('The Impossible Dream’' 중) 결코 삶이 만만치 않지만, 어려운 현실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가겠다는 돈키호테의 의지가 드러나는 부분으로, 작품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이 노래를 통해 관객들에게 전달된다.
2010년 <맨 오브 라만차>가 조승우가 본 공연과는 또 다른 공연이겠지만, 막상 보고 나면 적어도 진술(?)의 배경을 짐작해볼 수 있다. 세상의 모든 현실주의자들을 대신해 “왜 이렇게 사니?”라는 묻는 알돈자의 힐책에 돈키호테가 답가로 부르는 ‘이룰 수 없는 꿈(The Impossible Dream)’은 공연을 본 지 한참 지났는데도 입에서 맴돈다. 팝송으로 잘 알려진 곡이라도, 무대에서 직접 전후 개연성을 알고 전문 배우들이 부르는 곡을 오감으로 듣는 느낌이 정말 다르구나 싶다. 귀가 둔한 탓인지, 그 동안 몇 편의 뮤지컬을 보는 내내 전개를 따라가거나 배우들의 성량을 가늠하는 정도에 그쳤던 OST의 힘을, 이 작품에서 제대로 깨달았다.
“그 꿈 이룰 수 없어도, 싸움 이길 수 없어도 정의를 위해 싸우리라, 사랑을 믿고 따르리라”라는, 단순하고 밑도 끝도 없는, 손발 오그라드는 말 그대로 미친 광인이 대책 없이 부른 노래를 마치 내 얘기인양 흥얼거리고 있다니! 젠장! 이게 연기, 미술, 음악의 복합장르인 뮤지컬의 힘, 세뇌와 선동이라는 건가?
꿈, 망설이다가 깨어나곤 했던
살다 보니 구구단도 깜박깜박할 때가 있는데, 얼씨구, 살다 보니 주변 상황을 죄 ‘계산적’으로 판단하는 내 자신을 본다. 직장은 당근, 친구, 가족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초등학교 1학년에 구구단을 떼는 게 과정이듯 인간이라고 생겨먹은 게 그렇다고, 당연하다고들 하는데 또 역시 살다 보니 마냥 그러는 게 영 아닌 것 같다. 귀농 사이트를 ‘즐겨찾기’ 하고, 실시간 올라오는 여행기 블러그에 ‘서로 이웃’을 신청하지만, 당최 원숭이가 입구가 좁은 항아리 속으로 바나나를 움켜쥐고는 손이 빠지지 않는다고 꽥꽥거리는 꼴이다.
명랑하게도 항아리를 깨버리라는 ‘이룰 수 없는 꿈’을 노래하는 돈키호테는 미치광이다. 미쳐도 다행히 시종을 부닐 정도는 재산이 있다고 무시하고 싶어도, 삼국지의 노익장 황충과 별반 다르지 않은 돈키호테의 오체투지를 보노라면 여흥 차원을 넘어섰단 말이다. 뭐, 고육지책을 쓴 화충도 제정신일까 싶지만 적어도 삼국통일이라는 현실적 목표가 있었다. 돈키호테의 망상은 요즘 사회가 노래(?)하는 상상력과 의미도 좀 다르다. 미래 발전의 최고 동력 상상력 운운 하지만 기사 제도가 없어진 지가 언제인데, 기사타령을 하고 괴물 타령을 하냔 말이다. 과거로의 퇴보, 광화문 앞에서 상투 틀어 갓 쓰고 칼 차고 다니는 격이 아닌가. 보기에 따라서는 중증 코스프레 오타쿠 할배, 혹은 게임에 미친 PC방 최고참 죽돌이 형님이다.
오타쿠에서 구세주로, 시대 변화
세르반테스는 <돈키호테>를 “유행하고 있는 기사(騎士)이야기의 인기를 타도하기 위해” 썼다고 밝혔다. 하지만 후대에 이르면서 “16세기 스페인의 부조리한 사회 구조와 지배 계급의 행태를 마음껏 풍자하고 조소”한 작품으로 평가 받는다. 세르반테스의 의도가 어쨌건, 판타지(기사) 소설 오타쿠 돈키호테의 무모함은 후손에게 꿈과 희망을 향한 도전의 상징이 되었다. 시대가 바뀌면 해석도 달라지는 걸까. 그보다는 미치지 않으면 꿈을 꿀 엄두도 못내는, 혹은 내지 말라고 (무의식적이라도) 누르는 독한 현실이 돈키호테의 끝 간 데 없는 망상과 동격이루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보는 게 맞지 않나 싶다. 우리가 현실이 실재가 아닐 수 있다는 가치 전복을 다룬 영화 ‘매트릭스’에 열광하면서 인문학적, 철학적 해설을 덧붙이는 이유 역시 돈키호테에 매료되는 지점과 맞닿아 있다.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는 화자인 세르반테스를 실제 무대로 끌어올려서, 변론 형식을 빌려 에스파나 16세기 종교 권력을 빗댄 매트릭스 깨부수기에 나선다. (여기서 매트릭스 깨부수기란 우리가 이미 매트릭스 3부작을 통해 결과를 알 듯, 16세기 이후 17세기가 탈 중심의 르네상스가 본격화되기 시작했다는 결말을 ‘이미 안다’는 전제 하에 하는 말이다.) 실제로 세르반테스가 <맨 오브 라만차>처럼 개혁적인 인물인가는 분명치 않다. <맨 오브 라만차>는 <돈키호테> 오마주일 수는 있겠으나 원작과는 또 다른 <돈키호테> 패러디이다. 소설 <돈키호테> 역시 당시 기사 소설들의 패러디였듯 말이다.
지하 감옥, 매트릭스의 공간
무대는 지하 거대한 동굴 감옥. 무대 높은 왼쪽 벽 승개교(lift bridge)가 내려오지 않는 한, 바깥세상과 완전히 단절된 공간이다. 죄인들은 이른바, 자칭 도지사를 중심으로 일종의 계율과 법칙에 따른 동굴 사회를 이루고 있다. 바깥세계를 흉내 냈지만 동굴 사회는 ‘하루가 될지 혹은 영원이 될지’ 모를 재판에 종속된 사회이다. 흉내 내기에 더해 연속성을 장담 못하는 불완전한 가상 세계이다. 매트릭스처럼.
이곳에 승개교가 내려오고, 세르반테스가 끌려 내려온다. (문이 열리고 빛이 들어오며 하방으로 추방당하는 방식은 각성한 매트릭스 주인공 네오NEO = NEW가 그렇듯이 익숙한 구세주 신화 차용이다.) 무명작가 세르반테스는 호구지책으로 세금 징수원으로 일하다가 세납을 거부한 교회에 의해 신성 모독 혐의로 끌려온 상황이다. 공익(세금)과 사익(교회 재산), 횡(시민 사회)과 종(계급 사회), 인본과 신성의 대립은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갈등의 축약이다.
시대정신, 시대 저항
뮤지컬에서는 죄수들을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지는 않지만 당시 감옥은 범죄자들을 가두어 처벌하는 곳을 넘어서 사회 부적응 세력인 정신병자, 동성애자, 장애인, 신성모독자, 마녀를 ‘격리’시키는 공간이었다. 격리란 프랑스 철학자 미셀 푸코가 말했듯이 전복을 두려워하는 기득권의 나약함이자 아킬레스건이다. 극 중 동굴 감옥은 왕권, 신권 등 당시 관습 권력에 복종하지 않는 불온한 세력, 정치 사회적 인화성 폭발물이 질료 상태로 존재하는 공간이다. 정보가 차단된 공간에서 당시 작가라면 최고의 지식인 계층에 속하는 근대적 인간 세르반테스는 일종의 정치사회적 화학 반응을 일으켜 도화선을 당길 수 있는 인물이다.
구세주 출현, 이후 사고의 전환, 확장, 이후 기득권 전복 방식은 그간 각종 문화 예술 장르에서 수만 번쯤 차용된 방식이다. 하지만 <맨 오브 라만차> 클리셰가 된 반복을 단순하게 답습하지는 않는다. <맨 오브 라만차>에서 세르반테스는 근대를 넘어선 인물로 묘사된다. 다시 말해 ‘계몽'을 선도하는 선지자가 아닌 함께 어우러지는 ‘놀이와 유희’의 인간 호모 루덴스(homo ludens)인 것이다. 각 시대마다 헤게모니, 이데올로기는 형태와 내용을 달리하면서 가치 전복이 꼬리를 물고 가치 전복을 끌고 들어왔다. 그때마다 민중은 깃발에 휘둘려 장기 말로 전략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놀이는 집단 사고가 아니라 각각의 각성을 전제로 삼는다. 호혜와 평등의 놀이는 실제로 자본주의 시대 대안으로 작은 공동체 운동의 가장 핵심 원칙이다. (공연을 볼 때 어딘가에서 코고는 소리가 들리듯, 재미란 지극히 주관적인 감상인 동시에 집단화가 불가능한 개별 선택을 전제로 한다.)
극중극 속에 극중극
작가이자 배우인 세르반테스는 연극에 동굴 죄수들을 배우로 참여시킨다. 물론 강제는 아니다. 죄인들의 비공식 감옥 재판의 변론 형식으로 이루어지는 바, 당장 공식 재판을 받기 전에 동굴에서 죽어나갈 판이다. 의외로 재판장 격인 도지사는 세르반테스의 변론을 받아들이는 등 꽤 그럴듯하다. 지하 동굴의 공정한 재판 형식은 당시 부조리한 지상의 사법체계에 대한 조롱이다. 한편으로 동굴 재판은 자발적 ‘놀이’이자 ‘연극’으로, 새로운 신입 출현은 새로운 놀이거리 등장으로, 재판 자체가 놓칠 수 없는 흥미진진한 유희이다. 그래서 죄수들이 ‘재판 놀이’로 배우 역할에 익숙하다면, <돈키호테> 배우들로의 전환이 무리한 설정이지만은 않다.
그래서 <맨 오브 라만차>는 극중 재판극의 변론극 <돈키호테>를 포함한 삼중 구조이다. 극중의 극중극인 <돈키호테>에는 알돈자를 폭행하고 윤간하는 파렴치한 악당 노새몰이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 장면은 알돈자가 돈키호테의 변함없는 사랑으로 둘시네아로 거듭나는 과정으로 죄수들은 배역을 충실했을 뿐이다. 악인도 없고, 선인도 없는 극중극 교훈극 형식은 자칫 관객의 몰입을 방해하는 요소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맨 오브 라만차>는 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를, 단순히 작가와 주인공 관계를 넘어, 세상 편견이라는 비슷한 역경과 싸우는 과정을 실재(극)와 가상(극중극)이 동시에 발생하고 동격으로 배치하면서 삼중 구조는 하나의 이야기로 순환한다.
오직 한 사람의 믿음으로
돈키호테는 거울 기사를 통해 자신이 슬픈 수염의 기사가 아닌 보잘것없는 늙은이 알론조라는 걸 깨닫는다. 허황된 꿈에서 깨어나 현실을 직시한다, 여기까지가 극에서 세르반테스가 지은 소설 <돈키호테>이다. 하지만 동굴 죄수들은 용납하지 못한다. 이대로 멈춘다면 유죄, 세르반테스를 종용해서 이후 이야기를 끌어낸다. 꿈을 잃어버린 알론조, 죽음을 앞둔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늙은이 앞에 알돈자가 찾아온다. 그녀는 처음으로 자신이 둘시네아라고 돈키호테 앞에서 고백한다. 의심과 믿음의 경계는 현실과 꿈의 경계이자, 동시에 안주와 미래의 경계이다. 오직 한 사람, 돈키호테 외에는 모두가 그녀를 비웃었지만 그녀는 이제 둘시네아이고, 둘시네아는 알론조를 다시 돈키호테로 이끈다.
소설 <돈키호테>의 새로운 결말, 동굴 버전은 놀이라는 방식, 다 같이 참여하는 연극을 통해 일방적이지 않은 서로 보완하고 보충하고 북돋는 관계를 의미한다. 이제 돈키호테가 힘을 냈으니, 그리고 재판 연습을 충분히 했으니,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처럼 힘을 낼 차례이다. 현실에서 비록 허황되게 보일지 몰라도 “그중에서도 가장 미친 짓은 현실에 안주하고 꿈을 포기하는 것”이다.
극이 실제와 만났으니
"사실 처음 제의받은 배역은 돈키호테가 아니라 그를 따라다니는 '산초'였어요. 하지만 돈키호테만큼은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노래 부를 때의 음역 대부터 캐릭터까지 저와 딱 맞았거든요. 결국 '산초'역을 거절하고 주인공 오디션을 봐 통과했습니다."
배우 정성화가 2007년, 처음 돈키호테 역을 맡을 당시 인터뷰 기사다. 이후 정성화는 ‘2007년 <맨 오브 라만차>의 가장 큰 수확은 정성화의 재발견’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개그맨 출신이라는 편견으로 제대로 평가 받지 못 했던 정성화는 <맨오브라만차>로 인해 개그맨이자 뮤지컬배우로’ 자리를 확고하게 잡을 수 있었다. 세르반테스와 돈키호테의 극중 합일치에 더해 실제 배우와 배역과의 합일치가 이루어진 공연으로 “이 뮤지컬을 보고 인생이 달라졌다”는 조승우의 말을 객석에서 생생하게 보고 있으려니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재간이 없다. 정성화의 산초도 기대하지 못할 바가 아니지만, 정성화가 무명 개그맨에서 뮤지컬 스타로 거듭나는 과정에서 산초 이훈진의 발견은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온 격이다.
<맨 오브 라만차>는 내가 본 뮤지컬들 가운데 단연 최고의 작품이다. 당신이 올해 들어 벌써 지나버린 1월 한 달을 아까워하며 한탄하고 있다면, 꿈을 꿀 용기와 위안을 주는 작품이다. 아이티를 위해서라도 추천한다.*
사진출처 - 맨 오브 라만차 홈페이지, 멜론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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