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엘리모시너리ELEEM0SYNARY] 3대에 걸친 갈등과 화해의 에코우

구보씨 2010. 1. 20. 13:16

가끔 예전 작품 리뷰를 뒤적이다보면 재밌는 경험을 하기도 합니다. 2009년과 2010년 <엘리모시너리>를 올린 이동선 연출을  2012년[데모크라시DEMOCRACY_한예종] 무대와 객석의 멋진 전복 http://blog.daum.net/gruru/1898 에서 주목을 했더란 말입니다. 한예종이야 기존 예술가들도 다시 공부를 하기 위해 가기도 하는 전문기관입니다. 


<데모크라시>를 볼 때만 하더라도 "학생이 어떻게 이런 작품을 만들까?"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으니까요. <데모크라시>는 마침 요즘 공연을 무대에 올렸습니다. 분단 독일 당시 정치가 빌리브란트를 다룬 내용이 다소 무겁게 다가올 수도 있지만 기회가 된다면 보셔도 후회 없는 작품입니다. 요즘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기도 하구요. [2013.05.31]

 



제목 : 엘리모시너리

부제 : 하늘로 날아오른 세 모녀 이야기

기간 : 2010년 1월 20일 ~ 2010년 1월 31일

장소 :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출연 : 도로시아 역 / 이정은, 아르테미스 역 / 김수진, 에코우 역 / 김신혜

작가 : 리 블레싱

연출 : 이동선

주최 : 아르코 예술극장

주관/제작 : 몽씨어터



E-L-E-E-M-0-S-Y-N-A-R-Y. 엘리모시너리. 라틴어에서 나온 말로 ‘다른 사람에게 자비나 선행을 베푸는 일’을 뜻하는 말이다. 주인공 에코우 말처럼 왠지 입에서 부드럽게 굴러가는 사탕 같기도, 또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발음하는 듯하다. (천천히 엘리모서너리를 발음하고 사랑합니다 발음해보면 그렇다.)

 

그러나 “사랑합니다”처럼 충만한 단어가 오래된 파피루스에 적힌 고어(古語)처럼 나에게서 사라졌거나, 마음이 아닌 혀로만 내뱉어 버릇한 지 오래, 엘러모시너리는, 짧은 영어 실력 때문이겠으나 생애 첫 단어처럼 들린다. 엄마 아티도 한 때는 할머니 도로시아를 사랑했고, 딸인 에코우를 사랑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넓은 미국 땅에서도 엄마와 딸의 존재가 무거워 유럽으로 떠나곤 했다. 엄마가 떠난 빈자리는 할머니에게도 손녀에게도 너무나 크다. 삼위일체처럼 이들 삼대는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공부가 너무 하고 싶었던 할머니 도로시아는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아버지의 강요에 못 이겨 원치 않는 결혼을 한다. 그리고 아이들을 다 키우면 다시 공부를 하게해주마, 남편의 약속을 믿었지만, 결국 남편의 얘기는 지나가는 말이었을 뿐이다.

 

도로시아는 인간도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날 수 있다거나, 죽은 사람들을 보고 대화를 나눈다는 식으로 세상과 동떨어진, 세상이 이해하지 못할 방식으로 살다보니 “엉뚱하고 이상한 아줌마” 쯤으로 소문이 난다. 도로시아는 딸 아티에게 자상한 어머니이긴 하지만, 보고 읽고 들은 모든 걸 잊지 않는 천재 아티에게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펼칠 수 있도록 이끈다. 하지만 딸이라기보다 자신의 분신, 혹은 자신의 삶을 이해하는 하나뿐인 친구로 대했던 게 화근이었다.

 


 

아티는 숨 막히는 엄마 곁을 떠나 자기만의 세상으로 나아간다. 엄마가 실험을 한답시고 자신에게 덧씌웠던 가짜 날개가 아니라, 억지로 올라갔던 전신주 꼭대기가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날개를 달고 자신이 원하는 어디라도 가려고 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엄마에 대한 히스테리컬한 반응이었고, 미필적 고의로 엄마에 대한 복수극인 셈이다. (딸 아티가 결혼하는 남자는 나이 지긋한 교수이다. 그녀가 찾았던 상은 일일이 간섭하는 엄마가 아니라 너그러이 지켜보는 아빠라는 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제대로 된 딸이 아니라는 건, 엄마에게 엄마 역할을 배우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티는 딸 에코우의 존재가 부담스럽다. 자칫 자신이 그토록 저주했던 어머니의 삶을 답습할까 싶기도 하고, 엄마 역할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기도 하다. 그녀는 오로지 일에만 매달리면서 딸이자 엄마의 역할을 부정한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도로시아가 죽을 때까지 아티를 화해를 하지 못한다. 아티는 더욱 당황스럽다. 딸 에코우를 맡아주었던 도로시아가 죽었으니, 앞길이 암담하다. 그래서 같이 사는 대신 오빠에게 딸을 맡긴다. 이대로 삼대의 연결고리는 영원히 끝나는 것일까. 하지만 도로시아가 아티에게 주려고 했던 것은 오로지 사랑이었고, 그 표현이 남들과 달랐다는 걸, 아티는 자신의 딸 에코우를 통해 하나하나씩 깨닫는다. 할머니와 내내 같이 살았던 어린 에코우는 그 이름처럼 할머니가 진정 아티를 향한 진한 사랑을 메아리(echo)가 되어 전하려고 한다.


미국 작가 리 블레싱(Blessing)의 <엘리모시너리>는 3대에 걸쳐서 서로 특별한 모녀의 이야기를 빗대어 서로 이해하지 못한 채로, 아예 이해하려는 노력마저 포기하고 단절된 채로 되어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삶을 우화처럼 풀어냈다.



 

오로지 등장인물 세 명만으로도 무대가 풍성할 수 있었던 데에는 좋은 희곡과 넘치지 않으면서도 상징적인 무대와 소품과 객석 한쪽에 홀로 앉아 외롭게 홀로 연주를 하지만 배우들과 적절하게 호흡을 하면서 극에 넘치지 않도록 참여하는 음악, 적절하게 쓰이는 영상, 뛰어난 연기를 들 수 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하자면 시대와 지역을 관통하는 진한 고리일 것이다. 가족의 중심인 엄마이자 딸인 그녀들의 이야기는 어떤 파장으로 다가오더라도 가볍지 않다.*

 


해외 공연 사진

 

사진출처 - 몽씨어터club.cyworld.com/mongtheat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