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마호로바
기간 : 2011/09/01 ~ 2011/09/25
장소 : 연우무대 소극장
원작 : 호라이 류타(Jean Genet)
출연 : 임유영, 신현실, 이정은, 최수현, 김수진, 이소영, 김영진
연출 : 김재엽
주최 : 극단 연우무대
주관 : 극단 드림플레이
일본 기후 대학교 치사토 나가타 박사는 폐경을 맞지 않은 여성을 대상으로 10년 동안 운동이나 식습관이 여성의 폐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한 결과, 매주 8시간에서 10시간 정도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는 여성의 경우 운동을 거의 하지 않는 여성에 비해 조기 폐경을 맞을 확률이 17% 높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운동을 열심히 할 경우 에스트로겐 수치를 낮춰 폐경을 빨리 일으킨다는 주장이다. 조기폐경이 여성에게 미치는 육체적, 심리적 충격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마을에서 대대로 유서 깊은 종손가문 출신이라면 집안 전체가 들썩거리게 마련이다.
호라이 류타 원작 <마호로바>에서 후지키 가문을 책임지는 히로코는 딸만 둘을 낳은 죄로 장녀 미도리에게 ‘국적, 나이, 직업, 키, 몸무게 상관없이 고추만 달려 있으면 오케이’라는 미션을 주고 데릴사위를 영입을 기대하지만 마을 미쯔리 축제 구경을 핑계로 빈손으로 돌아온 마흔 살 노처녀 미도리는 덜컥 조기폐경을 선언하면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다. “초경에서 폐경까지 남자들이 꼭 알아야 할 그녀들의 유쾌한 생리담”이라는 김재엽 연출의 당부에서 꼭 알아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꼭 봐야할 작품으로 손꼽아도 무리가 없는 작품이다. 다만 <마호로바>와 하루 차이를 두고 본 <육혈포 강도>를 보면 “정말 같은 연출이 만든 작품인가?” 싶은 생각이 든다.
호라이 류타 원작 뮤지컬 <트라이앵글>. 연극열전 최초의 뮤지컬로 화제를 모았다.
김재엽 연출은 소소한 일상을 다룬 원작을 무대에 올리는 데에는 중극장이나 소극장에 따른 구분 없이 탁월한 조율을 선보이면서 올해 가장 바쁜 연출가로 손꼽힌다. 故 김소진 동명 소설을 올린 <장석조네 사람들>은 소극장 초연 뒤 남산예술센터 대학로 우수작품 지원으로 중극장 공연으로 새롭게 탄생하면서 정기공연에 이어 올해 세계국립극장페스티벌 국내우수작에 선정되는 등 기세등등한 작품이다. 하지만 여기에 반해, 그가 시의성을 담아 창작하거나 각색해서 올린 작품은 주로 직설로 풀어내거나 풍자를 하는데 그 의도만큼 와 닿지 않는다.
<누가 대한민국 20대를 구원할 것인가?>, <여기 사람이 있다> 등 사회에서 벌어지는 현실을 무대 위에서 다루려는 시도에 박수를 보내지만 그 방식이란 꼭 연극이 아니어도 상관없는 식이다. 다시 말해 구조가 헐겁다는 인상을 받다보니 현실을 겨누는 잣대에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 한국 최초 극단 ‘혁신단’ 창단 100주년을 기념해 올린 2011년 버전 <육혈포강도>가 가상의 미래를 빗대 한국의 사회현실을 풍자하지만 역시 깊게 파고든다는 인상은 아니다. 두 작품을 동시에 올린 무대라고 하나 여러모로 <마호로바>에 비해 완성도가 떨어진다. 무엇보다 배우 캐릭터를 잡고 다듬는 부분에서 창작/각색극과 원작극 사이 편차가 난다. 현재 가장 활발하게 다작을 올리는 연출가로 공력을 나눠야 하는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장석조네 사람들> 경우도 캐릭터가 소설에서 튀어나온 듯이 살아 숨 쉬는데 <마로호바> 역시 원작을 넘볼 만하게-원작을 보지 못했고, 김재엽 연출이 말도 안 통하는 연극을 보면서 반했다고 하지만- 캐릭터가 살아있다. 비좁은 연우무대를 알뜰하게 활용해 일본 나가사키 시골 고향집 거실을 간결하면서도 모자라거나 넘치지 않게 꾸몄다. 유서 깊은 집안의 대저택에서 주로 여성들의 공간인 거실을 중심으로 10대부터 70대까지 후지키 가문 4대에 걸친 여성들이 펼치는 데릴사위들이기 및 대 잇기 프로젝트는 뛰어난 몰입도를 보여주는 여배우들의 열연에 코미디이면서도 과장하지 않고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다.
남성이 쓰고 연출했지만, 무대 위 여섯 명 여배우들이 펼치는 연기는 여러모로 겹치거나 과도하게 캐릭터를 나누면서 흐트러질 염려가 들지만 세심하고 또 미묘한 변주를 통해 인터미션이 있는 2시간이 넘는 작품이 가면 갈수록 지루하지 않고 배역마다 특징이 잘 배어 나온다. 단연 배우들의 자발적인 내공에서 기인한 부분으로 보이는데, 좌식 거실 마루는 극중 연극 무대라고 봐도 좋다. 우리와 달리 데릴사위로 대를 잇는 일본 풍습이나 원폭 영향으로 임신이 되지 않거나, 태어나도 건강한 아이가 아니면 어쩌나 싶은 나가시키 여인들의 특수한 상황이 낯설게 다가올 수 있지만 연극을 보는데 따로 부러 설명을 곁들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생리를 하고 아이를 갖는 과정은 가임 여부를 떠나서 여자라면 자연스럽게 몸으로 받아들이는 부분일 것이다. 신현실이 연기하는 1대 타마에와 김영진이 연기하는 4대 격인 마오가 60년 가까운 나이 차에도 서로 공유하는 부분이 그렇다.
일본 원작 <마호로바> 공연 연습 장면. 미쯔리 축제를 다니는 남정네들 술상을 차리다가 아웅다웅
자칫 유쾌한 이 작품을 남근주의에 따른 고리타분한 시골 가부장 문화가 빚은 해프닝으로 볼 수 있을까. 보는 시선에 따라 다르겠지만 작품 제목 ‘마호로바’(명승지)처럼 엄마와 아이가 함께 걸어가는 모습이야말로 마호로바! 라는 모성애가 배어나오는 작품으로 봐야한다. 불륜이든 하룻밤 불장난이든 후지키 가문 여자들은 못난 남자들에게 휘둘리지 않는다. 둘째 딸 쿄코처럼 이혼해서도 마오 아빠와 잘만 연애하고, 엄한 집안 닦달에도 쿄코의 딸 유리아는 유부남 사이 아이를 갖고 당당하게 책임질 각오를 했다. 가문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두문불출하는 중심인물 어머니 히로코 역시 집안을 이끌면서 정작 꿔다 놓은 보릿자루 남편의 의견 따위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남성들과 아옹다옹 빗대어 핏대를 올리기보다 남성이 도저히 알 수도 없고 따라 잡을 수도 없는 여성이 가진 장점을 임신한 둥근 배처럼, 또는 아마 전통 축제인 만큼 가장 달이 밝은 보름달에 열지 싶은 미쯔리 축제처럼 둥글고 풍성하게 풀어냈다.*
김재엽 연출의 시선을 잡은 일본 원작 <마호로바まほろば> 포스터
사진출처 - 극단 드림플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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