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극

[피맛골 연가]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는 작품

구보씨 2011. 8. 23. 15:24

제목 : 피맛골 연가

기간 : 2011/08/23 ~ 2011/09/10

장소 :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출연 : 박은태, 조정은, 양희경, 박성환, 선영, 임현수 외 40여 명

대본 : 배삼식

연출 : 유희성

음악 : 장소영

안무 : 이란영

주최: 서울특별시, 세종문화회관

주관: ㈜엠비씨프로덕션 


 

작년 초연 당시 <피맛골 연가>는 홍보용 지자체 제작 공연이 가진 난점을 드러낸 평작이라는 총평을 들었으나, 뛰어난 OST와 주조연급 앙상블 40여 명이 펼치는 멋진 군무에 짧은 공연 기간을 아쉬워하는 목소리 역시 없지 않았다. 극과 극의 평가로 갈리는 와중에, 강점을 꼽았던 부분에서 올해 제5회 더뮤지컬어워즈에서 음향상, 작사작곡상, 조명상을 수상하면서 다시 주목을 받았고 앙코르 공연을 펼쳤다.

 

‘문화도시 서울의 이미지를 세계에 알리기 위한’ 취지에서 만든 작품은 디자인 서울을 내세우던 오세훈 시장 취향이 딱 맞기는 하나, 8월 26일, 그러니까 오늘 막 그가 시장직을 사퇴하면서 앞으로 재공연이 가능할까 싶기는 하다. 여야를 떠나 누가 서울시장이 되더라도 오세훈식 서울꾸미기 사업이 재개되기란 실현 가능성이 낮다고 보면 더욱 그렇다. 

 

불똥이 예기치 않게 세종문화회관을 튄 꼴인데, <피맛골 연가> 초연 당시 뮤지컬에 정통한 리뷰어 중 한 명은 작품 수준에 앞서 ‘서울시 예산으로 하고 싶은 걸 다 해본 작품‘이라는 곱지 않은 하마평을 내렸던 바, 이제는 작품이 스스로 자생력 갖추지 않으면 앞으로 재공연이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전망을 조심스레 내리게 된다. 



 

초연을 못 보고, 오가는 무성한 얘기들만 듣다가, 앙코르 공연을 봤다. 극중 주인공은 김생은 “백문이 불여일통”이라고 했는데, 역시 보지 않고서 남들 얘기에 고개를 주억주억 그냥 거드는 꼴은 아니지 싶다. 참고로 백문이 불여일통이란 ‘정분난 연인끼리 백번 문대는 것보다 한 번 통하는 게 낫다’는 뜻이다.

 

개인적으로 세종문화회관 3층 A석은 참 사람을 암담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그때도 공교롭게 유희성이 연출한 <모차르트>를 봤는데, 그날 모차르트 역에 4명 캐스팅 가운데 박은태라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처음에는 공연을 보면 알겠지 싶었는데, 오페라글라스를 대여하지 않는 이상 얼굴을 오로지 극장 초입에 있는 캐스팅 보드에서만 확인 가능하니 말이다. 그 이후 빚을 내더라도 적어도 2층까지 내려가야 한다는, S석은 빚을 내서라도 사수한다는 강한 의지를 불태웠던 기억이 있다.

 

결국 다시 A석인데, 뒤로 언덕배기처럼 죽 올라간 B석을 보면 그래도 낫다 싶지만 이건 뭐, 연인 사이를 돈독케 해주는 남녀상열지사가 벌어지거나, 아니면 자리 옮기겠다고 안내원과 벌이는 실랑이가 끊이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전보다 남자 안내원이 꽤 늘었다 싶었는데 다 이유가 있다.) 



 

이 날은 세종문화회관 공익프로그램 ‘천원의 행복’이 함께 하는 자리여서 아이와 함께, 할머니와 함께 온 가족이 눈에 띄었다. 글쎄, 3층 A, B석을 두고 생색내기다 싶긴 하지만 긴 2시간 30분 공연을 내내 재밌게 보는 노년부부나 아이들을 보니 눈을 흘겨볼 일만은 또 아니다. 개인적으로도 이솝우화 ‘여우와 신포도’의 여우처럼 자위하자면, 뮤지컬 <모차르트>를 보면서도 느낀 점인데 조망하는 위치라 무대 전체적인 구성, 동선, 군무, 조명이 한 눈에 파악할 수 있어 좋았다.

 

또 작품이 내세우는 장점과 잘 맞아떨어져서 주인공의 세심한 연기는 잘 몰라도 앙상블의 힘이 넘치는 연기는 충분히 만족하면서 봤다. 얼추 연출이 된 기분이랄까. 또 대형 스크린이 3층 눈높이에 있어서 영어 자막을 아주 편하게 볼 수 있기도 했다. 잘 들리지 않는 대사는 가끔 영어자막을 봐주면서 볼 수 있는데, 자막을 나도 알 만큼 참 쉽게 풀이(?)해서 친절한 작품이라는 인상을 받았다면 점도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피맛골 연가>는 대형 뮤지컬이 고수하는 바, 관습으로 굳은 공연 시간을 볼거리로 채우지만 이야기 구조가 단순한 편이라 지루해질 여지가 없지 않다. 김생과 홍랑의 애절한 사랑이 제목처럼 피맛골에서 벌어지는 연애담은 둘 사이 그 절절함이 깃들 여지를 주지 않고 바쁘게 진행되면서 제대로 와 닿지 않는다. 하지만 박은태, 조정은 콤비가 노래 실력이 좋은 배우들이라 몇 가락 노래에서 전해지는 감정으로 이야기를 보강하는 데 성공한다.



 

유희성 연출은 언론과 인터뷰에서 “행매 역을 보다 강화했고, 1막과 2막 연결에 개연성을 좀 더 실었다”고 했다만 초연을 보지 않아서 모르겠으나, 1막과 다른 2막의 변주는 이미 리뷰와 이야기로 들었다고 해도 역시 쉬이 적응이 되지 않는다. 쥐가 고양이라고 물어보겠다는 셈일까, 뮤지컬 <캣츠>를 잡을 만한 <랫츠Rats>의 향연이라면 또 이해하겠다. 앙상블 연기에서 얼추 <캣츠> 분위기도 나기도 했다만 말이다.

 

쥐떼 등장은 깔끔하고 현대적인 문화 서울 홍보 취지와도 좀처럼 연결이 되지 않고, 몸통이든 꼬리든 얼룩무늬 쥐가 내가 익히 보던 그 시커무리죽죽한 쥐들인가 싶기도 하다. 또 지금이야 드물지만 쥐들은 서민들의 애완이 아닌 애물이 아닌가 말이다. (쥐들의 화합을 두고 정치적 해석을 한다면 역시 너무 멀리나간 셈일까.) 배삼식 작가가 동물 우화에 일가견이 있다고 하니 그런 영향도 없잖아 있을 것이다.




세종문화회관 3층에서 본다는 전제 아래 유희성 연출, 박은태 주연의 <모차르트>와 <피맛골 연가>를 비교하자면 구성은 어떨지 모르지만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면서 자잘한 실수가 자꾸만 눈에 띄었던 <모차르트> 군무나 빠른 무대 전환에 비해 한결 여유 있게 진행되는 <피맛골 연가>가 보기 편하다. 

 

아무튼 풍비박산이 난 집안을 일으켜 세우겠다는 홍생이나 서출 김생이나 인간과 베어질 뻔한 살구나무나 천대받는 미물이나 피맛골이 대로가 아닌 좁은 골목길이듯 나름 소외된 이들의 시각에서 풀어낸 이야기라는 일관성은 있어 보인다. 대대적인 보완을 기대했던 데에 반해서는 아쉽지만 작품이 내세우는 무대, 의상, 안무, 연주, 노래가 좋은 작품이다. 한국적 정서를 무대나 음악이나 풍물패로 잘 살렸으나, 일제 강점기 배경은 모던보이 모던걸이 미국식 뮤지컬에 익숙한 캐릭터이긴 하다만 좀 꺼림칙하다. 쉬우면서도 시적인 가사와 잘 어울리는 작곡으로 극장을 나오면서 흥얼거리는 관객들을 종종 봤다.*




사진출처 - 세종문화회관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