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2g의 아킬레스건] 뒤늦은 후회, 뒤늦은 주제

구보씨 2011. 5. 25. 11:44

제목 : 2g의 아킬레스건

기간 : 2011/05/25 ~ 2011/06/12

장소 : 대학로 설치극장 정미소

배우 : 권경희, 반주은, 김은경, 박재완, 김효배, 황순영, 임주현, 이후성, 이보민, 민윤영, 장호림, 유인선, 차다연

희곡 : 김원태

연출/재구성 : 박재완

극단 : 루트21



한 가운데를 둥글게 뚫고, 뒤로 45도쯤 기울인 세트가 눈에 들어온다. 주인공 순택이 잠이 들고 꿈 속에서 과거를 찾아 헤맬 때마다 세트에 누인 문이 쇠사슬을 따라 90도 가까이 일어난다. 순택은 잠을 자고 있으나 등을 문 혹은 딱딱한 침대(판자)에 불편하게 기대고 서 있을 뿐이다. 자세도 꾸부정하고 표정도 일그러져 있다. 그의 잠은 잠이 아니다. 순택이 회상하는 과거가 고통스러운 악몽일 수밖에 없는 이유 혹은 그의 삶이 늘 피곤하고 찌든 이유이다.

 

모녀간 화해를 다룬 <엄마를 부탁해>가 책, 연극, 뮤지컬로 화제를 모으는 요즘, 부자간 화해는 멀기만 한 걸까. <엄마를 부탁해>가 신파극이라고 비판을 받는 선상에서 부자간 갈등이 해결되든 안든 화해의 여지를 남기는 식의 전개는 다소 식상하다. <2g의 아킬레스건> 말미에 어린 시절 순택의 사진만 모아 담은 사진첩을 며느리를 통해 전달하는 아버지의 행동도 무뚝뚝한 아버지의 깊은 속정을 잘 드러내지만, 다소 작위적으로 보인다.

 

“화해 못하는 부자지간 때문에 떠나지 못하고 이승을 떠도는 어머니 영혼”이라는 연출 의도도 남편과 아들을 생각하는 어머니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나, 죽어서도 희생을 강요당하는 혹은 감내 하는 어머니의 모습 역시 보기 편치만은 않다. 시장 상인마다 제각각 캐릭터를 능청맞게 구현하면서 재개발을 앞두고 생기는 소소한 갈등이 현실성을 얻지만 그 문제가 아버지와 순택 간의 커다란 갈등 구조 안에서 진행되면서 역시 힘이 빠지고 만다.

 

재개발업자로 돌아와 어린 시절 상처 남은 기억으로 고향을 뒤엎으려는 순택의 의도는 시장을 지키려는 시장주민 대표격인 아버지와의 갈등을 최고조로 올리는 듯 보인다. 개발이 상징하는 바가 아버지/아들 사이 갈등과 겹치는 부분이 없지는 않지만, 이들 부자의 갈등과 상관없이 재개발은 사실 다른 층위에서 이야기되어야 한다. 이들 부자의 갈등 해결구도와 시장 상인들이 처한 상황은 등가가 될 수도 없고, 되지도 않는다. 작가나 연출의 머릿속에서만 해결이 될 뿐이다. 또 속정을 엿보이는 앨범을 주고 난뒤 아버지의 죽음은 자신의 안에서만 해소일 뿐, 순택에게는 씻을 수 없는 죄책감을 주는 격이라 속 편히 떠나는 아버지나 같이 떠나는 어머니의 모습도 다소 전체 얼개가 어긋난다.



 

애초 먹고살기 힘든 가난한 집안을 배경을 두고 아버지가 동네 유지와의 돈을 사이에 둔 관계라는 게 치사할 수밖에 없는 게 갈등의 애초 원인인 바, 사진을 두고 벌인 갈등이 어린 시절에야 야속할 만하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어머니를 통해서든, 상황 이해를 통해서든 어른이 된 순택이 이해하지 못한다는 설정도 설득력이 좀 떨어진다. 작가의 개인사인지, 재구성을 한 연출의 개인사인지는 모르겠으되 관객의 공감을 끌어내려면 좀 더 고민이 있어야 했다.

 

다만 앞서 얘기했듯 무대 미술이 기존 무난한 무대와 달리 색다르고, 그가 자는 자리가 곧 개발로 삭막해진 황폐화된 자리라고 보면 이후 각박해진 삶의 한 원인을 보여준다. 아버지가 영정 사진을 찍는 몇 안남은 사진사이자 아버지가 이동식 리어카 영정사진을 소중히 간직하는 모습에서 마지막 모습인 영정으로 세대 간 연결 고리를 이어가려는 장인으로 모습도 엿볼 수 있다. 이 작품이 관객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이유로, 어쩌면 나와 내 주변 인물들의 개인사에 한정한 문제일 수도 있으나, 극중 아버지처럼 속정이 깊은 아버지의 모습이 사실 그리 흔치 않고 성마른 마초들일뿐 어느 정도 환상에 가깝다는 데에 있다.

 

이 작품의 매력은 복고적인 내용보다는 배우들에 있다. 연기에 보다 비중을 두는 박재완 연출 스타일이랄지 주변부 캐릭터들이 잘 살아 있다. 기승전결을 따르는 대신 악몽처럼 끊어지듯 이어지듯 에피소드로 이어지는 작품에서 연계성을 갖지 않는 이상 조연이나 단역은 캐릭터를 살리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시장 상인들을 보면 한 무리인 듯 해도 나이, 성격, 이해관계에 따라 구분이 가능하다. 2011 서울 연극제 출품작으로 5월 11일부터 작품을 올렸으니 충분히 익숙할만하다고 해도 공연 이력에 비해 조연급 젊은 배우들 연기가 좋다.

 

무뚝뚝하면서도 속정 깊은 아버지로 김효배의 연기는 손가락을 치켜세울 만하고, 정이 많은 어머니 역 권경희의 연기도 날선 부자 사이에서 부드럽게 작품을 안는다. 순택 역 황순영은 연극 <이爾>에서 워낙 광대로 연기나 생김새가 워낙 인상이 깊어서 코미디가 아닌 작품에서 그의 모습이 궁금했는데, 진지한 모습이 잘 어울린다.*


사진출처 - 루트21